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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어느 삼수생의 눈물

 

겨울 초입의 오후 햇살은 따뜻함 보다는 생각 보따리를 풀게 하는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다. 햇살에 이끌려 올라본 연구실 뒤편의 산등성이에서 낙엽 밑에 겹겹이 쌓여 있는 추억을 발견한다.
 

1992년의 일이니 20년이 훌쩍 지났다. 낙엽 속에서 재수생과 삼수생이 피 터지도록 싸웠던 결투 장면이 담겨있는 한 장의 추억 사진을 발견한다. 참 오래된 일인데 이게 생각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1997년 겨울, 연구실로 한 중년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경수 엄마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이 나질 않아 그냥 건성으로 ‘아! 네’하고 대답하고는 듣고만 있었다. 학부모는 초·중·고등학교에서만 사용하는 단어로 알고 있었는데 우리 학과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이다. 경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셔서 꼭 교수님을 만나 상의 할 일이 있다고 했다. 그 학생이 누군지를 알 것 같다.
 

우리 학교에서도 한 시간은 운전해야 하는 거리를 달려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사진에서 보는 것 보다는 훨씬 젊으시네요’ 아이구! 어떤 사진을 보셨기에.
 

경수  밑의 여동생은 무용과를 다녀 자기 역할을 할 것 같은데 경수는 믿음이 가질 않는다고 한다. 자식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걸 재빨리 직감할 수 있는 말이다. 그 다음 말이 정말 무서운 말이다. 아버지가 치과 의사를 했으니 재산이 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경수한테는 한 푼도 줄 수가 없다고 한다. 아무리 상의를 하자고 했지만 처음 보는 자리에서 이런 말까지 해야 하나. 잘 못 온 것 같은 생각이 불현 듯 뇌리를 스치니 자리가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런데 경수는 1992년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방위병(현재의 공익요원)입대를 위해 휴학 후 복학을 하지 않고 자퇴를 한 학생이다. 들리는 소문에는 치대 입학을 위해 또 학원 공부를 한다고 했다. 강한 의지인가 무모한 짓인가를 생각했던 기억이 잠시 나기에 지금의 근황을 물어 볼 수밖에 없었다. 논다고 한다.
 

그래서 재입학을 좀 주선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한다. 재입학은 학과의 정원에서 결원이 있을 때 입학금을 다시 납부하고 잔여 학기를 공부할 수 있는 제도이기에 학교 행정 본부와 상의 한 후 연락을 하겠다는 답을 하고는 그 자리를 피해 왔다. 그 당시 내가 학부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원이 있기만 하면 재입학을 주선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삼수까지 한 학생이 3년을 쉬고 다시 학교로 오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사람 대접을 못 받을 것이라는 고정 관념의 틀에서 자유로운 부모는 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해가 가능한 부탁임에는 틀림없다.
 

재입학이 결정되고 경수 어머니가 화려한 차림으로 학교로 방문했다. 어떻게든 대학은 나와야하니 잘 지도해주기를 부탁하면서 또 집안일로 말문을 연다. 경수 삼촌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부터 시작한다. 경수 아버지 아래로 삼촌들이 3명 있는데 모두가 자신과의 결혼을 반대해 지금까지도 서로간의 불화가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말이 참 길다. 수업 시간이 다 돼 가도 말문을 막을 수가 없다. 또 자신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는데도 서울대학을 나온 남편과 결혼해 잘 살고 있다는 자랑으로 시작해 자기 아버지의 6.25전쟁 참여사, 할아버지의 태평양전쟁 참여사 등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야! 이러다가는 조선 시대, 고려 시대까지 갈 것 같다. 그런데 이 얘기를 왜 하는지 갈피를 못 잡을 정도다. 수업 시간이라고 학생들이 찾아 왔건만 말을 그칠 것 같지 않다. ‘그래 조금 있다 수업에 들어갈게. 오늘 마지막 수업이니 기다려라.’ 
 

‘ 아! 네 간단히 말하자면’으로 다시 시작한다. 경수 앞으로 유산이 가면 관리 능력도 없을 뿐 아니라 방탕할 수 있기 때문에 재산 분할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말을 내가 들을 필요도 없으며 법적인 문제는 나는 잘 모르는 일이라 빨리 마치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경수에게 재산을 줄 수 없다는 자기주장만 연거푸 늘어놓는다. 경수란 놈의 가정생활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하는 말들이다. 힘들었겠다. 그러니 92년 여름에 대학생이라는 놈들이 피가 터지도록 싸웠던 기억이 다시 날 수 밖에…. 빠른 72년생의 삼수생, 늦은 72년생의 재수생. 이 때 빠른 몇 년 생 하는 말을 처음 들었다. 
 

가슴속에 응어리가 있었으니 행동이 과격할 수밖에. 거기다가 경수 어머니 말에 의하면 아버지 병원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자기가 설득해 삼수까지 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휴학 후 또 사수, 오수, 육수까지 시켰는데도 결국은 우리 학교로 돌아 올 수밖에 없다면서 아들이 잘 했으면 이 학교로 다시 올 필요가 있었냐는 자조적인 말을 한다. 허 참! 이제는 우리 학교의 수준까지 거론한다. 
 

이건 대리 만족을 위한 자식을 혹사 시킨 일이다. 교육은 가정교육, 학교 교육, 사회 교육이 삼위일체 돼야한다는 평소의 내 생각이 옳았음을 느낀다.
 

대화가 아니고 일방적인 연설을 듣고 있자니 울컥하는 감정이 북받친다. 결국 수업을 두 시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겨울로 들어가니 벌써 밤이 어두워진다. 내 마음도 어둡다.
 

수업을 하는 둥 마는 둥 마치고 교실을 나오는데 졸업반 학생 하나가 쪼르르 따라 온다. 
 

“교수님! 방금 그 분 경수 엄마죠?”
“어! 니가 아나? 가자, 맥주나 한잔하자.”
“우리는 경수 형 집에 가면 엄마 눈치 본다고 제대로 앉아 있지 못해요. 집은 어리어리한데 한번 가본 친구들은 안 가요.”
“왜?” “삼수까지 하고 그 학교 밖에 못 갔다면서 자기 말을 듣지 않아서 그렇데요.”
‘........’
 

이제부터 겨울이 시작된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학교는 산 쪽에 있어 평지보다는 더 추운데 올 겨울은 벌써 부터 더 추워진다.
 

새 학기가 시작돼 신입생들로 푸른 생기가 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찬바람이 창문 끝에 매달려있어 창문을 열어 놓기가 망설여지는 계절이다.
 

경수가 찾아 왔다. 스물 일곱의 나이가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을 달고 왔다. 웃고는 있지만 웃음이 그다지 밝지 않다. 경수 엄마의 부탁이 아니라도 굳이 만났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다.

 

“ 2학년 1학기부터 시작하면 2001년 여름이 되어야 졸업할 건데 그 때 니 나이가 서른이다.”
“잘 압니다.”
“이왕 왔으니 이제는 도망 갈 생각 말고 마무리를 하자. 나와 같이. 자! 가자 오랜만에 만났으니 맥주나 한잔하자.”
 

맥줏집에서의 시간이 제법 지났다. 돈이 필요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한다. 불현듯  경수 어머니 생각이 났다. 경제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데 대한 반항심이 작용 한 것 같다. 한 참 아르바이트 얘기를 하더니 눈물을 뚝뚝 흘린다.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시간은 흐른다. 경수가 4학년이 되어 곧 졸업을 앞두고 있어 졸업 후 뭘 할 거냐고 했더니 아무런 계획이 없단다.

 

“너는 수학을 잘하니 공부를 더해 보면 어떻겠나? 꼭 지금의 환경공학이 아니라도 좋지 않나?”
“돈 없이는 안 되잖습니까?”
“국내에 있지 말고 떠나라.”
 

이번에는 내가 경수 어머니를 만나자고 했다. 펄펄 뛰는 경수 엄마를 설득해서 미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서로 보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미국으로 가기 전 날 경수가 연구실로 찾아 왔다. 1년 치 학비와 생활비만 지원 받는 조건으로 떠난단다 . 자기 몫을 주장 할 만도 한데 사정이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미국의 대학에 교수로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석사 과정 학생에게 지원 할 수 있는 게 뭔지를 알아 봤다. 교수의 연구 보조로 얼마 간의 지원이 가능하다는 말을 전하니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돈을 더 많이 주면 삼촌들이 다 빼앗아 간다고 한 자기 어머니 말을 하며 또 눈물을 뚝뚝 흘린다. 돈은 있는데 쓸 수가 없는 현실과 자기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함께 묻어 있는 눈물이다.
 

2년의 시간이 지나고 경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생물 공학 전공으로 석사를 마치고 결혼을 위해 잠시 한국으로 들어온단다. 결혼식장에서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경수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 이렇게 모자간의 앙금이 깊나 싶어 공포감마저 날 정도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잠시 경수를 보았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려고 애는 쓰지만 눈물이 스치고 지나간다. 이놈의 눈물을 세 번째 본다.
 

‘공부하는 사람이 가슴에 응어리를 담고 있으면 집중이 잘 안 된다. 바쁘게 살면서 생각나지 않도록 해봐라.’ ‘사람이 말이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부정적인 결과에만 이용하는데 그건 잘 되지 않은 일에 대한 핑계일 뿐이다.’
 

참 시간이 빠르다. 내가  연구 파견으로  호주 대학에 있을 때 경수가 박사를 마치고 뉴질랜드로 직장을 잡아 간다는 연락이 왔다. 한번 들러 가라고 했다. 아들과 함께 세 명이 우리 집으로 왔다. 그 사이 공부하면서 있었던 무용담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늘어놓는다. 처가의 도움도 많이 받은 것 같다. 본래 모습인 밝은 얼굴을 본다. 이제는 눈물을 보이지 않겠지.
 

따스한 햇살 덕분에 오랜 시간 낙엽 속에 묻혀있던 추억의 사진을 펼쳐본다. 언젠가는 또 다른, 좀 더 밝은 추억 사진을 발견하고 싶다. 

 

[2018 교단수기 공모 은상 수상작-수상 소감] 제자에게 보내는 당선 소감

 

새해 처음으로 연구실 창문을 열어 놓고 뒷산이 만든 울타리를 바라본다. 아늑한 기분이 느껴지니 좋은 새해가 되려나 보다. 교단 수기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하게 됐다. 수기의 제목이 ‘어느 삼수생의 눈물’인데 남의 눈물이 나의 기쁨으로 바뀐 것 같아 수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에게는 좀 미안하기도 하고 이걸 보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대학은 교수와 학생이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나의 기억 속에는 학생들과의 많은 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좋은 기억은 추억이라 표현하지만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은 악몽이라 하지 않는가. 모쪼록, 수기에 담긴 사연이 추억으로만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당선 소감을 수기의 주인공에게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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