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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 내 어머니의 책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절절한 애도의 글

겨울 절기 소설(小雪) 즈음입니다. 위쪽엔 눈이 내렸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경상도 지역에서는 아직 눈보다는 서리가 아침나절 산과 들을 뒤덮고 있습니다.

 

서리 내린 초겨울 풍경은 참 아름답습니다. 수로를 따라 심어둔 푸른 잎의 김장배추, 논바닥에 널려있는 볏짚, 화살나무 붉은 잎사귀 둘레, 타작이 끝나 수북하게 쌓인 깻단 사이, 붉고 작은 끝물고추와 같은 것들을 감싸며 하얀 서리는 곱게 곱게 내려 있습니다. 차고 맑은 기운이 강마을을 감싸고 있는 아침입니다.

 

이런 날에도 건호네 할머니께서 일찍 밭으로 나와 마늘을 둘러보시기에 인사를 드렸습니다. 손자들이 모두 우리학교엘 다녀 그들의 안부를 여쭈어보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머리에 곱게 서리가 내린 할머니 모습과 하얀 들판 풍경이 겹쳐 보입니다. 닮은 시절입니다.

 

요즘 우리 문학계에는 애도(哀悼)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애도의 마음이 절절하게 드러난 책을 읽었습니다. 알베르 코엔의 『내 어머니의 책』은 화자가 느끼는 어머니의 부재를 서사화함으로써 자신이 느끼는 절대적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죽음은 ‘단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슬픔뿐만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수준에서 근본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가 2차 대전 중 마르세유에서 세상을 떠나고, 멀리 런던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듣게 된 아들은 가누지 못할 상실의 슬픔,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회한을 적어 나갑니다. 그리스에서 태어나 낯선 프랑스로 이민 온 한 유대계 가족은 가난과 언어, 혈통으로 인해 이중 삼중의 사회적 고립을 경험합니다. 어머니의 삶은 오로지 남편과 자식의 뒷바라지에 전념하고 그것에 만족합니다.

 

아들의 생일날 집을 떠난 아들을 위해 생일상을 차리는 어머니의 모습과 그와 반대로 연애로 일로 바빠 편지에 대한 답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들의 무책임함을 이야기합니다. 아들은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여성’이 더 이상 곁에 없음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걷잡을 수 없는 상실감에 젖습니다. ‘어리석은 무심함’으로 어머니가 죽은 뒤에야 후회하는 자신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작가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마침내, 바다 바람의 습기로 낡아빠진 카지노 맞은 편 '해변' 정류장에 도착한 우리는 점잔을 빼면서, 설레이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녹색 테이블 앞의 철제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오카스쿠르트'라는 조그만 스낵식당의 웨이터에게 소심한 표정으로 맥주 한 병과 접시와 포크를 갖다 달라고 부탁한 다음, 그의 호감을 사기 위해 푸른 올리브 몇 개를 주문했다. 웨이터가 물러가자, 즉 곤란한 순간이 지나가자, 그녀와 나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만족한 미소를 교환했다. 그리고 그녀는 보자기에 싼 먹을 것을 꺼내 나에게 내밀면서 혹시 다른 손님들이 우리를 보고 있지는 않는지 약간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는데, 그것은 근동지방의 일품요리인 시금치를 곁들인 완자, 치즈파이, 어란젓, 코렝트 건포도 빵, 그리고 여러 가지 맛있는 것들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건네준 약간 빳빳하게 풀을 먹인 냅킨은 전날 밤 정성스럽게 다림질해서 준비해둔 것이었는데, 그녀가 "루치아 디 라메르무르"를 콧노래로 부르면서 다림질할 때 느꼈던 그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은 내일 아들과 함께 바닷가로 놀러간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PP. 51~53

 

뒷마당 벽오동나무의 커다란 갈색 잎이 버석버석 소리를 내면서 겨울초입을 알립니다. 가을은 저만치 떠나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고 막 도착한 겨울이 갈색머플러로 장식한 체크무늬 코트를 입고 장갑 낀 손으로 악수를 청합니다. 날씨가 더 추워진다고 합니다. 따뜻한 차림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내 어머니의 책』, 알베르 코엔 지음, 조광희 번역, 현대문학,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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