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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결혼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로댕

연인들이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결혼이다. 또 결혼은 불완전한 사랑을 완전하게 바꾸어주는 사회적 제도이다. 하지만 결혼에는 책임이 따른다. 사랑은 자유롭지만 결혼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사랑에 구속되는 것을 싫어했던 예술가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이다. 20세기 현대 조각의 창조자라고 평가받고 있는 로댕은 그의 천재성만큼이나 여성 편력이 대단했다. 로댕의 사랑을 받았던 많은 여인들 중 대표적인 여인이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이다.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은 예술가로서의 삶이 같았기에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기도 했지만 경쟁자로 또 창의력에 대한 의심 때문에 서로에게 극복할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 관계다.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은 처음 스승과 제자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다.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여인이 되자 로댕에게 결혼을 요구한다. 하지만 로댕은 항상 약속만 할 뿐이었지 결코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로댕은 카미유 클로델을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결혼으로 인해 얽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로댕이 카미유 클로델을 모델로 제작한 작품이 <팡세>다. 레이스로 된 머릿수건을 쓴 카미유 클로델의 시선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 머릿수건은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 성직자나 소녀들이 쓰는 머리장식으로 카미유 클로델의 순수함을 강조한다.


머리장식의 그림자 때문에 카미유 클로델의 이마가 환하게 빛나고 있지만 눈은 크게 뜨고 결코 외부 세계와는 시선을 맞추고 있지 않다. 로댕은 이 작품에서 예술적 고민에 휩싸여 있는 그녀를 나타내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향하게 했다.


로댕의 이 작품은 <지옥의 문> 작품 제작 당시 신화를 빌리지 않고 순순하게 카미유 클로델을 모델로 했다. 결국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싶어 헤어진다. 그녀는 로댕의 제자라는 선입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나 내면에서는 자신의 예술성을 로댕이 이용한다고 생각했다. 카미유 클로델의 강박관념은 정신착란 증세로 나타난다.


로댕의 여인들, 카미유 클로델과 로즈 뵈레

카미유 클로델은 극복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평생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해야만 했다. 영광을 안고 살았던 로댕의 삶과 너무나 비교되는 삶이다. 카미유 클로델이 영감을 준 사랑이라면 로댕에게 현실의 편안함을 제공했던 여인이 로즈 뵈레(Rose Beuret)다. 로댕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인이 로즈 뵈레다. 그녀는 남편을 ‘로댕 선생님’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재능도 미모도 가지지 못했던 스무 살의 재봉사 로즈 뵈레와 로댕은 조각가와 모델의 관계에서 시작됐다.

로즈 뵈레와 처음 만났을 때 로댕은 성공한 조각가는 아니었다. 세상을 향해 발돋움하는 천재 조각가였을 뿐이다. 두 사람은 로댕의 작업실에서 동거에 들어간다.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로댕은 로즈 뵈레가 준 돈으로 마굿간을 세를 얻어 작업실로 쓰고 있었다. 로댕은 평생 여섯 차례 이상 작업실을 옮겼지만 로즈 뵈레가 마련해 준 첫번째 작업실을 잊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마굿간 작업실에서 그녀는 살림을 맡은 안주인으로서 어려운 경제
를 책임지면서 또 로댕의 예술적 영감이 필요할 때마다 그에게 자신의 벗은 몸을 보여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다. 자유로운 사랑을 추구했던 로댕은 화실에서 모델들과 거리낌없이 성관계를 즐겼고 그를 위해 로즈 뵈레는 모델들의 누드 포즈를 돕기도 했다.

 

그녀는 로댕의 아들까지 낳았지만 그에게 받은 것은 멸시와 학대, 그리고 모욕이다. 아들을 자기 호적에 올리지 않았던 로댕은 그녀에게 항상 낯선 사람처럼 행동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옆에 있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생각하는 사람>과 단테의 신곡

로즈 뵈레를 모델로 한 작품이 <로즈 뵈레>다. 로즈 뵈레는 두 눈을 감고있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마치 잠이 든 것처럼 평온하다. 밤이 늦어 모델이 없었을 때 로즈 뵈레는 로댕에게 헌신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의 감은 눈과 평온한 얼굴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랜 세월 동안 로즈 뵈레의 가슴속에 묻혀 있던 사랑에 대한 보답은 그녀가 죽기 얼마 전 결혼식을 함으로써 이뤄진다. 늙은 연인들의 결혼식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로댕을 위해 친구들이 로즈 뵈레와 결혼하기를 강력하게 권해서 였다. 로즈 뵈레가 죽기 2주일 전에 53년 동안 로댕을 위해 희생해 온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을 한 것이다. 로댕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지 않았다면 그는 로즈 뵈레와 결혼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과 뛰어난 미모 그리고 강한 성격으로 로댕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를 소유하지 못하고 질투와 이기심 때문에 자기만의 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카미유 클레델과 로댕의 사랑이라고는 받아 보지도 못하고 그가 필요할 때 외에는 그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으며 그의 그림자로 살아야 했던 여인 로즈 뵈레. 로댕은 항상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해 두 여인을 불행한 삶을 살게 했다.

 

로댕에게 국제적으로 명성을 안겨 준 작품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의 조각품 <지옥문>의 일부로, 단테가 지옥을 보면서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로댕은 1880년 신축되는 장식 박물관의 대규모 핵심 작업을 맡았다. 단테를 좋아했던 로댕은 그의 작품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장식 박물관 입구를 지옥의 문으로 하기도 한다. 로댕은 <지옥문> 작업을 진행하면서 단테의 신곡을 재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정을 표현하고자 끊임없이 수정하며 인물 조각을 끼워 넣었다. 로댕이 20여 년 동안 매달렸던 작품 <지옥문>에서 보여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물상들은 조각가로서의 그의 삶을 기록한 일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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