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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사랑을 외면한 드가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것이건 간에.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사랑을 주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지만,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은 사람 자체를 믿지 못해 사랑을 베풀지 못한다. 인상파 화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s)는 여인들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겨 ‘여인들의 화가’로 불리지만, 그는 사랑을 혐오했다.


여성과 섹스 그리고 결혼에 대해 드가의 태도는 그의 성격 중 가장 혼란스러운 부분이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계급의 여성을 좋아했지만, 성적으로 가까이하는 것을 무척 꺼렸다. 대부분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몇 명의 애인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드가는 금욕주의자·독신주의자로여인들이 자신의 곁에 있는 것조차 싫어했다. 드가는 “바라볼 사람이라곤 오직 자신밖에 없고, 생각할 사람도 나 자신뿐이다. 정말 굉장한 에고이스트지”라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또한 드가는 어떤 여자의 유혹에도 자극을 받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애교가 많아 화가들이 모델로 기용했던 유명한 쉬잔 발라동조차 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고 한다. 마네는 드가를 보고 “여자를 사랑할 수도,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친구”라고 할 정도였다.

 

이처럼 드가가 사랑에 대해서 조심스럽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것은 열세 살에 겪은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순수한 사랑이 사라지는 상실감과 분노와 그리고 죄의식과 비참함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여자에게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를 그린 작품, <알레르 드가>

어머니가 죽자 드가는 아버지에게 집착했다. 인상주의 화가 중 드물게 부르주아 출신이었던 드가의 아버지는 그림과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은행을 물려받아 재력이 있었던 드가의 아버지는 그의 재능을 보고 화가의 길에 들어설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의 지원은 결국 드가가 컬렉터나 비평가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의도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준다.


드가가 아버지를 그린 작품이 <알레르 드가>다. 이 작품은 여든일곱 살의  드가 아버지 초상화다. 줄무늬가 있는 베이지색 안락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는 신사가 황금색 손잡이가 달린 지팡이를 꼭 잡고 있다. 높은 칼라의 셔츠, 검은색 넥타이, 흰색 조끼와 검은색 외투 차림은 그가 부르주아 출신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정리가 안 된 백발은 그가 대머리임을 가려주고 있으며 나이에 비해 붉은 혈색은 건강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굳게 다문 입술은 강인한 성격을 드러낸다. 드가는 아버지가 죽고 난 후 우울증을 겪을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육체적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소년에게 도전하는 스파르타 소녀>
드가는 퉁명스럽고, 독설가라고 알려졌지만 부드러운 마음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섹스를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드가의 그런 모습을 보고 한편에서는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드가는 동성연애자에게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드가의 육체적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나 있는 작품이 <소년에게 도전하는 스파르타 소녀>다. 탁 트인 공간에 소녀들은 앞가슴을 드러낸 채 옆이 트인 작은 스커트를 입고 다섯 명의 소년들에게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고 있다. 소녀들은 전진하고 있고, 소년들은 뒤로 물러서 있는 것은 전통적인 성역할이 뒤바뀌었음을 나타낸다.

 

또한 소년과 소녀가 반대편에 그려진 것은 성의 대결을 의미한다. 적극적인 여자와 수동적인 남자로 성의 대결을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드가의 정신세계가 나타나 있다. 즉, 드가는 여성에 비해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남자를 통해 자신이 여성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화면 중앙 검은 옷을 입은 지도자가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들에게 설교하고 있다. 엄마가 안고 있는 아이들은 앞으로 산에 버려지거나 전쟁터에서 죽을 스파르타의 미래를 상징한다. 스파르타 젊은이를 그대로 재현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에서 드가는 역사화에 걸맞은 ‘이상화된 인간’보다는 ‘현실의 소년·소녀’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객관적 사실을 그리도록 하던 당시 살롱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어 비난을 받기도 했었다. 그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고대 스파르타 운동경기를 기술한 플루타르코스의 저술 중 한 구절을 참조했다. 드가는 이 작품을 대중과 살롱 취향에 부합하는 열망 때문에 제작했지만, 1879년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하고 평생 작업실에 보관했다.

 

목욕하는 여인을 그린 작품, <욕조>
드가는 조용한 화실보다 북적대는 사람들 속에서 그림을 즐겨 그렸다. 드가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세탁부·웨이트리스 등의 직업을 가진 여성들은 당시 매춘을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었고, 드가도 카페나 식당에 가는 것처럼 공창에 자주 들러그녀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드가는 그녀들을 동물 다루듯이 다루었다. 그는 모델들에게 충격적인 포즈를 요구하기도 했는데 그가 즐겨 그렸던 소재가 목욕하는 여성들의 누드나 화장실에 걸터앉아 있는 여자들이었다. 드가가 목욕하는 여인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880년쯤부터다. 앵그르의 누드화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드가는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여성의 이상적인 미에서 벗어나 그만의 독창적인 누드화로 발전시킨다.


드가가 목욕하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 <욕조>다. 이 작품은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였던 8회 전시회에서 보여주었던 동일한 주제로 출품한 10여 점 작 품 중 하나다. 몸을 씻고, 물기를 닦고, 머리를 빗는 일상의 모습들을 묘사했다. 이때에도 드가는 여성의 미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 작품처럼 목덜미를 씻고 있는 여인의 불편해 보이는 포즈에 집중했다. 그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킬 의도나 고의적으로 신체를 왜곡시키지도 않았다. 에드가 드가는 여인에 대한 환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여인들의 추악한 모습을 남긴 것은 아니다. 그는 발레리나·세탁부·가수 등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여인들의 모습에 매료되어 그림으로 그 순간을 남겼다. 그래서 드가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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