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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 채털리 부인의 연인

관념과 탐욕에 사로잡힌 비인간성에 대한 거부

생명이 움트는 눈부신 시간입니다. 검고 어두운 나뭇가지에서 보드랍고 연한 새잎을 내미는 것은 자기 속에 있는 다른 생명을 드러냄이 아닐까요. 잔치처럼 펼쳐지는 꽃들은 식물들이 보여주는 생명의 향연입니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라고 합니다. 봄은 그들이 온몸으로 드러내는 생존의 처절한 투쟁이고 궁극적 목적입니다. 자기를 닮은 존재를 남기기 위해 저토록 황홀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비와 벌을 불러들입니다. 저들과 같이 우리도 근원적으로 누군가와 부드럽고 따뜻한 접촉하길 원합니다.

 

D. 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외설 시비로 당시 문단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기도 한 작품입니다. 주로 이 책의 내용을 불륜이나 성적인 묘사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꼼꼼하게 읽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봄이 주는 생명력을 느끼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책으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었습니다. 두 주인공 코니와 멜러즈가 비극적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긍정적 합일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영국의 아름다운 숲과 더불어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회자인구(膾炙人口)하는 성적인 묘사는 현대의 소설보다 고전적이고 관념적이어서 이 책의 표현은 오래되고 아름다운 명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였습니다.

 

D.H. 로렌스는 등장하는 각 남녀의 갈등과 몸과 정신과 관계라는 점에서 어떤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주체적인 상류층 여인 코니와 전쟁에서 다리를 잃고 육체와 정신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냉소적인 귀족 클리퍼드와의 관계, 멜러즈와 그의 아내와 관계 등을 통해 여러 군상이 드러납니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녀관계는 코니와 멜러즈의 관계로 나타납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성행위’라는 말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부드러운 애정과 공감, 살아있는 접촉이 인간관계의 출발점이 된다고 합니다. 성적 쾌락이 아니라 부럽고 따뜻한 육체적 접촉 완성을 통해 몸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생각과 통찰력을 드러납니다. 그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기계적 관념성과 물질적 탐욕에 사로잡힌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비인간성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거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마을의 봄꽃이 눈부시게 피어  유혹합니다. 산기슭 진달래 진홍의 꽃잎 그 사이로 더 짙은 색의 점은 사랑스럽고 가늘고 우아하게 휘어진 수술을 보고 있으면 숨이 막힙니다. 붉어진 얼굴로 우왕좌왕 허둥지둥하며 봄을 맞이합니다. 부디 가슴 한 곳이 뜨거워지는 봄날 되시기 바랍니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 D. H. 로렌스 지음, 이인규 옮김, 민음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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