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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김민수의 세상 읽기 ②] 태산(泰山)

“태산(泰山)이 놉다 하되 하늘 아래 뫼히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理) 업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흘 놉다 하나니.”

 

조선 중기 문신(文臣) 양사언(梁士彦, 1517~1584)이 지은 평시조이다. 잘 알려진 위의 시조에는 열심히 노력하면 할 수 있는데 핑계를 대며 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어떤 일이든 차근차근 꾸준히 해나가면 결국 성취해 낼 수 있을 것인데, 왜 사람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일까? 우선 성취에 대한 자기 믿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경우 자기 앞에 주어진 현실적 상황이나 조건이 커 보이고 더 어렵게 여겨질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외부 환경보다 자기 내면에 있는 능력이 더 크다는 자기 신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힘들어 주저앉아 포기하고 싶기도 하지만, 결국 힘든 과정을 이겨낼 수 있는 자신의 내면적 힘이 있음을 깨닫는 순간 그 어떤 환경보다도 자신의 능력이 크다는 신뢰를 확인할 수 있다. 끊임없이 올라가면 자신의 능력의 크기가 태산보다 더 크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된다.

 

크고 많음을 비유하는 말로써 태산에 관한 속담도 많이 있다. ‘할 일이 태산 같다.’, ‘갈수록 태산이다.’는 말은 부정적 뉘앙스의 말도 있지만, ‘티끌 모아 태산’도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외부 환경이 태산같이 많지만, 그러한 태산을 넘으면 내가 ‘태산’이 된다. ‘태산을 넘으면 평지를 본다’는 말도 있다. 결국 태산에 오르면 힘든 모든 과정은 평지처럼 보일 것이다.
 
양사언이 시조에 담은 태산(泰山, Tài Shān)은 지금도 중국 산둥성(山東省) 태안(泰安) 지방의 광활한 평원 위에 우뚝 솟아 있다. 그런데, 이 산의 높이는 1,532m로 우리의 생각만큼 아주 높은 산은 아니다. 백두산의 높이가 2,744m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태산에 가장 높은 산의 의미를 부여했을까? ‘오악독존(五岳獨尊)’. 태산을 일컫는 대표적인 말이다.

 

중국에는 오악(五岳)이라 불리는 5대 명산이 있다. 태산은 동쪽에 있어 동악(東岳)에 해당한다. 서악(西岳)으로는 화산(華山), 남악(南岳)은 형산(衡山), 북악(北岳)은 항산(恒山)이고, 중악(中岳)에는 숭산(嵩山)이 있다. 태산은 이 오악 중에서도 화산, 항산 다음으로 세 번째로 순서로 높은 산이다.

 

그럼에도 태산을 일컬어 ‘오악독존’이라는 일컫는다.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태산은 크고 긴 산맥에 속하지 않고, 광활한 평야의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있어 그 앞에 선 사람을 압도하는 형세를 지녔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태산에는 아주 오래도록 이어져 온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 곳곳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원전 219년 진나라 시황제(始皇帝)는 태산에 올라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봉선의식(封禪儀式)을 거행했다. 시황제 이후 대표적으로 한나라 무제(武帝), 청의 건륭제(乾隆帝) 등이 태산에 올라가 천하가 평정되었음을 정식으로 하늘에 알리고, 천하의 태평함에 감사하는 봉선의식을 거행하였다. 태산에 올라 봉선의식을 지내야만 진정한 제왕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덕이 하늘에 닿고 백성이 그 덕에 감화되고, 백성의 삶이 풍요로울 때 진정한 제왕은 태산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진정한 제왕은 태산에 올랐다고 한다.

 

물론 오늘날의 시대 우리는 그 옛날 제왕처럼 태산에 행차할 수는 없다. 제왕은 아니지만 각자 자신 삶의 주인이다.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될 때 우리는 태산에 오를 수 있고, 그렇게 될 수 있기 위해 우리는 지금 태산에 올라가고 있다.

 

중국 산동성에 있는 태산이 실제로는 가장 높은 산이 아니듯이, 태산은 꼭 최고의 높은 산의 봉우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 각자가 삶의 과정에서 오르고 또 오르고 있는, 그러면서 결국에는 올라가게 된다는 신념이 담긴 목표가 곧 ‘태산’이다. 그 태산은 하늘 아래 뫼이다. 그 태산을 넘으면 내가 곧 ‘태산’이 된다. 태산 보다 더 숭고(崇高)한 ‘태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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