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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교직 새내기의 봄!
초겨울의 첫눈이 내린 어느 날 예천여중으로 발령을 받았다. 딸아이가 가성콜레라에서 회복도 제대로 되지 않을 때였으니 발령 소식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았다. 이렇게 시작한 나의 교직 생활이 이제 33년으로 접어들었다.
초겨울인데도 북부지방이라서 그런지 엄청 추웠다. 설레는 마음으로 부임 인사를 마치고 바로 교실 수업에 임했다. 당시에는 이런 중간발령이 많아서 준비 기간이 전혀 없는 경우가  있었다. 갑자기 발령을 받아 뚜렷한 교육목표를 세우지 못한 채 그저 학생을 잘 가르치는 것이 훌륭한 교사라고 여기며 보냈다.

1년 2개월의 근무를 끝내고 고향인 경주 가까운 영천여고로 오게 되었다. 인문계고등학교라서 그런지 하루의 일과는 늘 분주하였다. 아침 자율학습 지도와 보충수업 그리고 야간자율학습 지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던 수업시수 등으로 정신없이 보냈지만, 살림집을 영천지역에 마련해서 심적으로는 훨씬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영천여고는 그 당시 영천 주변 먼 곳 학생들이 시내에 자취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연탄불이 꺼져 찬방에서 아침도 못 먹고 등교하는 일이 많다는 얘길 듣고 마침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방이 네 개가 되어 그중 하나를 학생들의 공부방으로 내주게 되었다.

냉장고 가득 밑반찬을 해두고 학생들이 언제든 내어 먹을 수 있도록 해두고 필요시에 자유롭게 공부방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물론 대상은 3학년 학생들이었다. 처음엔 좀 어려워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차츰 공부방을 이용하는 단골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이름들! 미혁, 정란, 지선. 정란이는 서울서 공무원을 하고 미혁이는 간호사 지선이는 남편 사업을 도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지 벌써 스무 해가 되어간다. 교직의 봄은 소중한 추억을 남겨둔 채 여름을 맞이하였다.

 

성숙해 가는 여름!
30대 중반 교직 생활 6년째를 접어들면서 칠곡고로 임지를 옮겼다. 이시기는 교직 생활이 성숙해가는 여름이라 명명하고 싶다. 2학년 학생들의 담임을 맡았다. 인문계 고등학교인데도 공부에 크게 열중하는 학생들이 없어서 생활지도면에 많은 애로 사항이 있었다.

그 당시 ‘생동감 넘치는 학교’라는 교육 활동이 한 창일 때였다. 그 담당 업무를 맡아 방과 후에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학교는 늘 생동감이 넘쳤고 학급 운영도 별 무리 없이 운영되는 듯하였으나. 크고 작은 일들이 학급에서 일어났다. 쉬는 시간을 활용해 상담하고 점심시간마다 실장과 운동장을 함께 걸으며 학급의 애로사항을 의논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려 노력한 결과 큰 사고와 사건 없이 한 해를 보냈다.

훗날 실장인 청자를 만났는데 삶에서 참으로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바쁘지만 틈틈이 학생들과 만나 나눈 시간은 그들에게 밀알이 됨을 새삼 느낀다.
칠곡고 생활을 뒤로 한 채 모교인 경주여중에 발령을 받았다. 첫해 2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우리 반에 가정환경이 남다른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특히 미희는 재혼한 아버지가 못 마땅해 가출을 일삼는 아이였다. 며칠 동안 학교에 오지 않아 이리저리 수소문하고 있던 차에 음악 선생님이 시내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데 한껏 화장하고 모양새를 낸 그 미희 비슷한 사람을 봤다고 말했다.

그날따라 비가 억수같이 내렸지만 확인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허둥지둥 수업 시간을 교체하고 찻집에 들어갔더니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는 가느린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우리 미희였다.

반복된 이러한 생활을 하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입히자 교장 선생님께서 자퇴를 권유하셨다. 큰 노력을 기울였지만 끝내 이 아이를 교육의 장 밖으로 나가게 하는 데 일조를 하게 되었다. 나의 교직 생활에서 가장 아픈 상흔이다.

우리 반 학생 가운데 희선이라는 재입학생이 있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희선이는 중학생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을 드나들며  무단결석을 빈번히 하였다.

그 당시 사복경찰처럼 이곳저곳을 찾아 헤맨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어린아이를 태운 채 시내 여관 앞에서 학생을 기다리며 차 안에서 새벽을 맞이한 적도 있었다. 되풀이되는 잘못된 생활 속에서 학생과 나 그리고 엄마가 세 사람이 부둥켜안고 엉엉 울던 때도 있었다.

다행히 그 학생은 무사히 졸업하게 되었고 그날 집에 배달된 발신처 없는 큰 상자는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커다란 상자를 열었더니 ‘선생님 덕분에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있는 물건들은 제가 선생님께 고마움을 느낄 때마다 정성스레 모은 물건들입니다. 값어치는 없지만 제 마음입니다. 희선 엄마 드림’이라고 쓰인 쪽지 편지와 멸치, 미역, 찐 쌀 등 건조된 음식물이 담긴 조그마한 봉지가 여러 개 있었다. 내겐 참으로 과분한 선물이었다.

다음 해 또 2학년을 맡게 되었다. 지난해 겪은 고통을 거울삼아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고 연간 생활지도 계획을 수립했다. 그 당시는 단체 급식이 되지 않을 때다. 주요 내용은 매주 수요일 비빔밥 만들기, 단체 물놀이, 경로잔치, 봉사활동 등을 계획하고 하나하나 실천해 나갔다. 일주일 일회 비빔밥을 만들어 먹기는 협동심을 길렀고, 기장해수욕장 단체 물놀이는 학급 단결력과 사회성을 기르는 데 일조를 했다. 경주 성건동 경로잔치와 한마음의 집, 천우자애원 봉사활동은 베푸는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특히 한마음의 집에서 장애우들과 함께한 소켓 조립은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 시간이었다. 그 당시 온라인 학급카페를 운영했었는데 봉사활동이 끝난 후 학생들이 올린 글 중에 ‘선생님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하늘을 날듯이 가볍고 행복합니다.’는 말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큰 모험들이었다. 학급 학생들 전체를 움직이면서 학교장 결재를 얻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결재를 득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무지한 까닭으로 돌리고 싶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학생들과 함께한 활동들은 참으로 보람차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 어디에선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 믿으며 그때의 활동들이 그들에게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길 기대해 본다.

 

영글어 가는 교직의 가을!
경주공업고등학교에 부임하여 교무부장업무를 맡게 되었다.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경력이 낮은 선생님과 새로 부임한 선생님들의 멘토 역할을 했었다. 그동안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얻은 것들은 선생님들의 개인 생활사 상담을 비롯한 수업활동과 생활지도 등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이 시기를 성숙해가는 교직의 가을이라 명명한다. 나이를 자랑하며 학교 홍보 활동을 나갔을 때 협조해주신 여러 선생님 덕분에 경주공고에 부임한 3년 동안 신입생 모집을 비롯한 여러 업무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된 것도 교직 생활의 보람으로 남는다.

고향인 경주 9년 생활을 뒤로하고 포항흥해공고에 부임했다. 학교를 옮기면서 나는 망설임 없이 담임을 희망했다. 교직의 꽃은 담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에 담임을 맡는다니까 주위 분들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전기에너지 2학년 2반 담임을 맡았는데 평소 특성화고등학교의 목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능인 육성이라고 여겨서 학급 학생들에게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고자 노력하였다. 자격증 1차 필기합격 한 학생에게는 1만 원, 실기 합격하면 2만 원을 격려금을 주었다.

나의 작은 정성에 학생들은 큰 보답을 해주었다. 2015년 5월 15일 평소와 다름없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교실 전면은 오색 풍선으로 장식되어 있고 칠판에는 깨알 같은 메시지가 가득 적힌 전지 두 장이 붙여져 있었다. 교실 한편에는 약간의 다과도 준비되어있었다. 실장이 나와서 ‘어머니 건배해요!’라고 하면서 잔을 채워 주었다. ‘우리 아들들 파이팅!’이라고 건배사를 한 그날 이후 반 아이 중에는 SNS에 어머니라는 호칭을 쓰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겨울 방학식 1주일을 남겨두고 학급 내 학교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으로 한 명의 학생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두 명은 졸업했다. 처음 겪은 이 사건은 한순간에 무능한 교사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넘겨본 파일 속의 모범공무원상과 인성 관련 상장 등 수많은 상장과 표창들도 이 사건 앞에서는 한낱 종잇조각으로 보일 뿐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지만 동료 교사들의 따뜻한 눈빛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봄!
이제 정년을 3년도 채 안 되게 남겨두고 있다. ‘잘 가르치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다.’라는 생각으로 설익은 교직의 봄을 보냈고 학생들과 함께 어우르며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며 교직의 여름을 보냈다.

교직의 가을에는 특성화고등학교에 몸담으며 중견 교사로서 미력이나마 선생님들께 도움을 주고자 노력한 멘토 역할과 늦깍이 담임을 맡아 현 교육의 주소를 경험했다.

교육 현장은 학생 인권을 외치면서 교권은 상대적으로 거의 바닥 수준이다.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이 충돌하면 교사는 늘 교사들의 인권을 포기한다. 그들은 나의 사랑스러운 제자이기 때문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마라.’는 옛말은 어디에서든 볼 수가 없다.

지금의 교단은 수업시수가 줄어들고 학급의 학생 수가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서 외부에서 보기에는 교사들이 많이 수월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의 교단은 그렇지가 않다. 나의 교직 봄과 여름은 그래도 사제 간의 정은 두터웠다. 교사는 내 자식처럼 생각하며 훈육을 해도 부모님들은 교사를 믿고 맡겨주었던 시절이었다.

내가 맞이한 교직의 가을은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교직의 가을에 논어에 나오는 글귀가 생각이 난다.

‘君君 臣臣 父父 子子’급변하는 현시대에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기에 앞서 스스로‘君君 臣臣 父父 子子’하는 정신으로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가 각자의 영역에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교직의 가을이다.
지금도 교직의 계절은 진행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봄! 깨어있는 교사에게는 어느 때도 동면의 겨울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밖 교정에 수줍은 새색시처럼 붉은 볼을 내밀며 ‘선생님 존경합니다.’며 속삭이는 또 다른 희망찬 교직의 봄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도  부단 없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