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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김민수의 세상 읽기 ⑧] 하학(下學)과 성성자(惺惺子)

“손으로는 물뿌리고 비질하는 방법도 알지 못하면서 입으로는 하늘의 이치를 담론한다(手不知酒掃之節 而口談天理).”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의 말이다. 실천 중심의 학문 정신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 말은 남명 선생이 1564년 9월 당대 학문의 종장으로 추앙받던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에게 보낸 편지글의 한 구절이다.

 

구절의 의미는 이렇다. 일상에서 해야 할 것을 손수 실천하지도 못하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에 목메는 당대 학문 세태에 대한 비판이다. 남명은 당시 이런 학문으로 이름을 얻고, 세상을 속이는 데 학문을 이용하는 학자들이 성행하는 학문 풍조를 도명(盜名)과 기인(欺人)이라는 말로 비판한다.

 

남명은 퇴계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런 세태를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위의 말을 전했다. 남명의 말을 오늘날 우리 또한 귀담아들어야 한다. 남의 허물에는 서릿발처럼 매서우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말이다. 남명은 당시의 초급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소학(小學)』을 중요하게 배우고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다. 제 손으로 물뿌리고 비질하는 등 일상에서의 실천을 중시하는 내용이 『소학』에 있다.

 

이러한 남명의 학문 사상의 핵심을 ‘하학(下學)’ 중시의 실천 학문이라 한다. ‘하학’이란 오늘날의 말로 하면,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실용 중심의 학문이다. 상학(上學)과 대비되는 말로 하학이라 하면 낮고 하찮은 학문이라 폄훼할 터이지만, 남명은 그러한 경향을 정면 반박하면서 하학이야 말로 중요한 학문이라고 보는 관점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관점과 태도에서 구담천리(口談天理)하며 거대담론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하학적 관점과 태도로 학문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이다.

 

‘산은 지리산이요, 처사는 남명이다’는 말이 있다. 평생 처사(處士)로 머무르며 학자의 지조를 지키고 실천 학문에 몰두한 선비로서의 남명을 추앙하는 말이다. 경남 산청의 산골,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보이고 덕천강이 흐르는 곳인 덕산에 가면, 남명 선생이 61세에 정착하여 후학을 양성한 산천재(山天齋)가 있다. 일종의 학당이다.

 

이곳에서 남명에게 수학하여 실천 중심의 학문 전통을 세운 제자들이 동강 김우옹, 내암 정인홍, 망우당 곽재우 등이다. 이들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싸웠고, 실천 중심의 북학파를 형성하였다.

 

산천재 바로 옆에 최근 남명학진흥재단이 설립한 한국선비문화연구원이 있다. 필자는 지난해 가을 이곳에서 개최된 학술발표대회 참가차 방문한 적이 있다. 중앙 건물에 교훈처럼 새겨진 글귀가 눈에 띄었다.

 

“학문은 실천을 통하여 비로소 그 빛을 발한다.” 남명 사후 그의 학문을 기리는 덕천서원의 학문 정신과 같은 것이다. 학술발표대회가 끝나고 주최 학회로부터 기념품을 하나 받았다. 그것은 남명 선생이 늘 허리에 차고 다니던 성성자(惺惺子)였다.

 

성성자는 두 개의 소리 나는 작은 방울이다. 남명 선생은 이 방울들을 끈으로 꿰어서 허리에 늘 차고 다녔다. 선생이 이렇게 한 이유는, 항상 실천에 힘쓰는 학문 정신에 깨어 있으며, 몸소 행동에 옮기고 살피기 위함이다.

 

방울 소리를 들으며 혹시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 늘 경계하고 주변을 살핀다. 실천은 자기 주변의 삶에서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성성자를 지붕 높이의 높은 처마에 달아둔 것이 아니라 허리춤에 늘 차고 다녔다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학문을 실천하고자 하는 남명 선생의 의지가 담겨 있다.

 

우리 시대 교육의 실천 정신과 배움의 학습 태도 역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늘 우리의 주변에 있다. 강의실에서, 학생과 교수의 만남에서, 대화와 활동에서, 구체적인 문제를 놓고 탐구하는 과정에 있다.

 

하학을 구체적으로 실천함으로써 그 학문은 밝은 빛을 발한다. 남명 선생의 하학 중시 학문과 성성자는 오늘날 실천하는 실용 중심의 학문 및 교육의 구체적인 길과 그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의 태도를 잘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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