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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친구들에게 저도 3반에 있다고 알리고 싶었어요!

 

매년 12월은 동아리 활동과 축제 준비로 정신없이 보내는 시기이다. 우리 학교에서도 12월 말에 있을 동아리 발표 준비로 학생들에게 참가 신청을 받고 참가 자격 여부를 점검하는 1, 2차 예심을 실시하였다. 행사 준비는 매우 순조롭게 흘러갔다. 3학년 밴드부, 2, 3학년 댄스부, 3학년 마술, 각 학년 개인별 노래, 악기 연주 등 다양한 1, 2부를 구성하여 가정통신문까지 학부모님들에게 전달되었다.

 

축제 3일 전 방과 후 한 여학생이 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저… 선생님께 할 말 있어서 왔어요…”
“그래? 무슨 얘긴데?”
내 질문에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저도 노래 부르면 안 될까요? 허락해주시면 정말 열심히 부를 수 있어요!!” 예심이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물었다.
“이번 축제 때 부르겠다는 말이야?” 그 여학생은 “네”하고 대답을 했다. 이미 1, 2차에 걸쳐 예심을 통과한 학생들만 참가하는 축제라 곤란할 것 같다고 단호하게 얘기하고 학생을 돌려보냈다.

 

다음 날 아침 전날 찾아왔던 여학생 담임선생님께서 전화가 왔다. 통화 내용은 이러했다.
그 여학생의 이름은 3학년 이다희 학생으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를 자주 결석하였고 급기야 3학년이 되어서는 장기결석으로 졸업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학교 부적응 학생이자 학교에서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 학생인데 뜻밖에도 어제저녁에 담임선생님께 축제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도와달라는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추가로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다희가 우울증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직접 자르는 행위를 자주 했고 그로 인해 머리가 엉망이 되어 현재 가발을 쓰고 있는 상태라고 알려주었다.

 

다희네 반 담임선생님과 전화를 끊고 머리가 매우 복잡해졌다. 철저히 지켜왔던 원칙과 규정을 따라야 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융통성 있는 학생지도가 맞는 건지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다희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제안했다. 너의 노래를 들어 보겠다고 그러니 등교를 하라고… 다희는 점심시간쯤 학교에 등교했고 방과 후에 노래를 테스트했다.
많이 긴장했는지 매우 떨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쉽게도 자신의 실력을 나에게 전혀 보여주지 못하였다.

 

나는 다희의 노래를 듣고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제안했다.
“많이 떨렸지? 실력을 다 못 보여준 것 같은데?” 다희는 눈물을 흘렸다. 자신도 실수를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다희야! 왜 이렇게까지 노래를 부르고 싶은 거야?”
난 점점 다희의 속마음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졸업이잖아요? 친구들에게… 저도 3반에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요.”

 

다희를 귀가시키고 담임선생님에게 다희의 집안 사정을 자세히 듣게 되었다. 부모님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혼하셨고 그때부터 할머니가 돌봐주셨으며 최근에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다희를 돌보기 힘들다는… 다희는 중학교에 올라와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며 최근에는 자신의 머리를 가위로 자르는 자해를 했다는 얘기까지…

 

그날 저녁 다희에게 전화했다. 선생님의 제안을 받아주면 공연 오프닝에 노래를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노래 곡목은 종전에 불렀던 슬픈 노래가 아니라 활기차고 희망적인 노래를 선정하고 예선을 하지 않고 어떻게 이 자리에서 노래하게 되었는지 왜 꼭 노래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노래 시작 전에 말하기를 제안했다. 다희는 다음날 아침 밝은 모습으로 사무실에 나타나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축제의 날이 다가왔다. 학교 강당에는 많은 학생이 이른 시간부터 앞자리 쟁탈전을 벌이면서 축제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재잘대는 아이들의 소리 사이로 사회자의 시작 멘트가 울려 퍼졌고 사회자는 첫 오프닝 출연자를 소개하였다.
“첫 번째 노래를 선보일 학생은 3학년 3반 이다희 학생입니다. 힘찬 박수 부탁합니다.”

 

사회자의 소개 멘트 후 다희는 무대에 걸어 나왔다. 학생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누구야?”
“예심에선 못 보던 앤데?”
“다희?”
“쟤가 노래를 한다고?” 등 이런 말들로 술렁대기 시작했다.
무대 중앙에 서서 한참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던 다희는 천천히 머리를 들며 자신이 쓰고 있던 가발을 벗어 버렸다. 이 모습을 본 학생들은 고함을 지르며 “대~~박”,“뭐야”,“미친 거 아냐?” 등 많은 야유의 말들을 쏟아냈다.

 

다희는 마이크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 번 치더니 인사 멘트를 했다. “저는 학교 오기가 정말 싫었습니다. 모두 저들 욕하는 것 같고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꽁꽁 감싸고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죽을 것 같이 힘들지만, 용기를 내어 여러분들 앞에 나왔습니다.”

 

학생들의 야유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다희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저도 3학년 3반 학급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억되고 싶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이런 용기라도 내지 않는다면 저는 영원히 저 자신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 숨어지내고 싶지 않아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저를 응원해주세요!”

 

다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희의 말을 경청했던 학생들은 숨죽이며 노래를 들었다.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단 한 사람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학생들은,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라는 가사에서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합창하기 시작했고 다희가 2절을 부르는 내내 서로를 응시하며 다희와 함께 합창했다. 선생님들과 몇몇 여학생들은 눈물을 흘렸고 남학생 몇몇은 주먹을 치켜올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다희가 인사를 하고 무대를 급히 빠져나갈 때 한 아이가 소리쳤다. “다희야 사랑해!”,“다희야 힘내!!”. 어떤 꾸러기 학생은 “나랑 사귀자”까지 외치며 다희를 응원하고 다독여주었다.

 

축제는 끝이 났다. 그리고 다희는 졸업 후 교정을 떠났다. 그 이후 다희는 남친이 생겼다는 후문도 있고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적응을 매우 잘하고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학교에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착오를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연습 삼아 현재 학생들에게 적용했던 방식이 학생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황들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인가 보다.

 

그래서 원칙과 규칙을 예전에 했던 방식 그대로 적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장소가 학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마음이 아프고 닫힌 아이들을 위해 규정된 틀과 방식들을 과감히 탈피하는 탄력적이고 융통적으로 대하는 방법도 필요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본다.
지금 우리의 교실에 존재해 있지만 존재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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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교단수기 공모 - 동상 수상 소감

축제 해프닝 덕에 교사로서의 가치관을 정립...

 

 “원칙대로 합시다!” 이 말은 내가 교직 사회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는 말이다. 그 당시 많은 업무와 공문 덕(?)에 교사로서 무엇이 우선인지 생각지 못하고 하루하루 의무방어를 하듯 학교생활을 했던 것 같다.
학생부장이란 직책으로 그리고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학생들의 의견엔 크게 귀 기울이지 않았고 학생들의 고민거리가 접수되면 특정 상용구를 사용하듯 형식적인 답변을 보내고 아이들에겐 최고의 해결사라고 스스로 자부했던 것 같다.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채로 말이다.
다희 학생이 깨우쳐준 축제 해프닝 덕에 나는 교사로서의 가치관과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생활지도는 과거 학생들에게 적용했던 많은 판례와 원칙들을 현재 있는 모든 학생에게 균일하게 적용하는 법규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희 학생과 같이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에게는 기존의 방식과 원칙을 균일하게 적용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즉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을 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에 다가가는 연습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다희 학생을 통해 알게 되었다.

교사는 형식과 원칙만을 고집하여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가 아니라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을 전해주는 행복 전도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집불통 학생부장을 다소 부족한 행복 전도사로 변신할 수 있게 기회를 준 다희 학생에게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한다.

교육 가치관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로 학생들을 의무감과 형식으로 대했던 그 시절 그리고 그 경험이 나에게는 많은 반성과 후회로 남지만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참 스승으로서의 자세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시간이 되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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