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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 지리산 종석대의 종소리

절기가 대설로 접어들고, 저는 첫눈을 기다립니다. 청명하고 맑은 겨울 바람이 산을 지나오면 싸아한 박하향 날듯 개운하고 기분좋은 느낌이 듭니다.  하얀 눈이 쌓인 들판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우리들은 저절로 세상의 풍경이 되고  잡은 손의  온기만으로도 저절로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창궐하여도 학년말 마무리를 하는 교무실은 정말 바쁩니다. 고등학교 진학 원서를 쓰는 3학년 담임선생님 옆에서 저는 2학년 학기말고사를 출제합니다. 피로한 눈을 들어 학교 앞산을 바라봅니다. 학교와 마주한 앞산은 ‘이불목산’이라고 불립니다. 학교 옆을 휘감고 흐르는 남강이 범람하여 이곳이 모두 물에 잠겨버렸을 때 산봉우리가 이불만큼 남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겨울산과 마주하고 있으니 지리산의 넓고 큰 품이 그립습니다. 저는 힘들 때면 씩씩하고 멋진 산줄기와 마주하고 왔습니다. 칭얼거림과 푸념도 말없이 들어주고, 심술보가 늘어난 제 얼굴도 ‘괜찮다’하고 웃어 줄 것 같습니다.

 

지리산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신이 지리산을 동일시하는 작가의 책을 읽었습니다.

백남오 작가는 지리산의 수필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리산 종석대의 종소리』는 지리산 산행 수필집의 마지막 권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이런 그의 글에는 산을 사랑하는 사람의 향기가 그의 삶과 어우러져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아흔 아홉 골

그 아득하고 그리운 능선과 봉우리들

짐승처럼 헤매고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자서>, 부분

 

가끔씩 휘몰아치는 겨울바람이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기도 한다. 대성계곡의 물소리는 쏴쏴 지칠 줄도 모르고 밤새 소리 지르며 흘러내린다. 그 위로 휘영청 둥근달이 소리 없이 영롱한 빛을 흩뿌려 내리고 있다. 을미년이 역사 속으로 조금씩 묻히고 있는 지리산의 겨울밤이다. 내년에도 이런 아름다운 시간을 기약할 수 있을까. <지리산 대성동의 겨울밤> 부분

 

저의 지리산 사랑은 대학시절로 돌아갑니다. 동아리에서 여름 엠티를 어디로 가면 좋겠느냐는 말에 “지리산요!”라고 제가 외쳤습니다. 하동 칠불사에서 형제봉, 세석고원, 천왕봉으로 종주를 하였습니다. 죽을 것 같은 칠월의 지리산이었습니다. 더위 속에 장맛비는 오다 가다를 반복하였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능선을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형제봉 길섶에서 산개구리의 말간 눈을 마주치며 걸어서 세석고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텐트를 치고 밥을 지어 먹었습니다. 그 밤은 길고 춥고 무서웠습니다.

 

비 그친 세석의 아침, 지리산은 젊고 푸른 얼굴을 보여 주었습니다. 꿈틀거리는 산줄기는 포효하는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영혼의 산맥이 되어버린 그 산이 보고 싶습니다. 블루 코로나로 지쳐있을 때, 지리산의 향기를 주는 책 『지리산 종석대의 종소리』를 읽습니다. 그러면 지리산 촛대봉 아래 시루봉 능선의 중간쯤 ‘청학연못’의 신비로운 물소리가 귓가에 들려올 듯합니다.

 

겨울이 깊어갑니다. 서로에게 따뜻한 웃음을 건네는 행복한 날 되십시오.

 

『지리산 종석대의 종소리』, 백남오지음, 서정시학,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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