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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슈1]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를 짓는 낡은 방법 

교실과 복도로 만들어진 학교의 모습은 1차 산업혁명 시대 영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학교공간의 구조가 당시 첨단생산체계인 컨베이어시스템을 모델로 하고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경제적이고 유지·관리·통제가 편하도록 고안된 장치인 컨베이어벨트는 노동자의 반복적인 단순작업을 통해 표준화된 생산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테일러주의에 충실한 성과중심의 대량생산 공장체계다. 


이러한 공장 모델이 사람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학교에 적용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많은 학생을 표준화된 교육과정 속에서 단위화된 시·공간으로 나누어 균일하게 교육해야 하는 당시 학교의 목적과 맞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관리·통제·규율·표준화·성과중심주의 등의 가치관이 그대로 교육공간인 물리적 구조를 통해 학생들의 행태와 생활방식을 형성시켜 왔음을 의미한다. 학교와 더불어 근대를 대표하는 병원과 교도소 그리고 군대 막사 등의 건물들도 같은 모양을 지니고 있다.

 

 

결국 학교를 포함해 이 시설들은 공통적으로 많은 사람을 모아서 일정한 인원으로 나누어 수용하고, 규율과 권위로 통제하며, 동시에 관리하기 좋은 공간구조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시설들은 표준화된 도면으로 규격화되어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찍어내듯 만들 수 있는데다 대체로 공간구조가 비슷하고 건물을 구축하는 방법과 자재 내역이 같아 시설 유지관리에도 수월하니 최고의 발명품이 아닐 수 없었다.

 

규격화된 학교 … 성과와 관리의 산물
근대는 ‘기획의 세대’였다. 생산방법의 표준화로 일정 수준의 상품 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기획을 통해 일정한 목표량을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일정을 세웠으며, 이를 통제 진행하는 일정관리와 생산관리가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이 근대기획의 성과추진방식이다. 근대학교의 보급은 앞서 말한 표준화된 공간구조뿐 아니라 이를 보급하고 시설을 확대하는 방법도 근대기획의 방식을 따랐음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소품종 대량생산의 200년 전 생산체계 모델이 전혀 다른 생산과 평등한 사회구조를 지닌 지금에 적합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지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혁신기업들은 완전히 새로운 작업환경을 설계하고 짓고 있는 것처럼 미래를 지향하는 학교도 새로운 교육환경의 학교건물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할 또 하나의 문제는 근대적 성과달성방식의 고착이다. ‘기획-실행-성과평가’로 구성된 근대기획의 실행 방법은 효율적인 추진체계로 성과를 거둔 성공한 경험이 되어 변화된 사회와 공간 속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혁신기업에서조차 성과중심 관리자와의 갈등이 비극을 부르는 경우처럼 생산방식은 바뀌어도 이를 진행하는 담당자의 근대적 사업방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교육비전과 내용이 바뀌어도 학교건물은 바뀌지 않았듯 사업의 내용이 바뀌어도 이를 집행하는 방식을 답습, 오히려 형식이 내용을 무색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교육부는 2019년 ‘학교공간혁신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기획가로 참여한 필자는 사용자 참여 설계방법을 중심에 두고, 학교의 학생·교사·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과거 ‘열린교실사업’의 경우에서처럼 아무리 선진적 형태의 공간이라도 이를 사용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경험과 준비 없이는 실패한다는 교훈을 반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를 실행하는 사업방법으로 학교에서의 교육적 상상을 공간적인 상상으로 바꾸어 나가는데 협력할 ‘학교공간 촉진자’라고 이름한 공간전문가들을 선발하여 사용자 참여과정을 학교공동체와 함께 진행하도록 구상했다.

 

학교가 교육지원청 시설담당이나 건축사들을 직접 만나게 되는 데 따른 부담을 줄이면서 보다 바람직한 학교공간을 구성하는 일종의 ‘전문가 거버넌스 방식’으로 바꾸어 진행한 것이다. 사업과정이 시설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은 학교를 상상하고 만드는 것을 경험하고, 교사들은 더 적극적인 교육방법의 새로운 시도에 집중하며,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학교가 가능한 물리적 환경으로 협의하며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 들어 교육부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이라는 학교시설 관련 사업을 새로이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19년부터 실시된 학교공간혁신사업을 ‘40년 이상 된 노후학교’의 시설개축이 시급함을 반영하여 1,400여 학교를 대상으로 미래 지향적인 학교공간으로 개축 리모델링하는 확대(?)된 학교 단위 시설사업이다. 그런데 벌써 사업의 대상이며 주인인 학교공동체와의 참여 설계과정이 사라지고 기존의 시설사업으로 되돌아가는 등 사업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최근 몇몇 지역교육청에서 사업기간에 쫓겨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전기획 용역을 7~8개 학교, 또는 지역 전체를 한꺼번에 묶어서 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미래학교구상의 핵심인 참여 설계과정과 학교-공간 마스터플랜을 사업집행의 속도와 편의에 따라 기존 시설사업 진행의 틀에 욱여넣어 ‘사전기획’이라는 대략 3개월 정도의 단기간 연구용역형식으로 축소한 결과가 결국 이렇게 학교의 미래를 덤핑으로 시장에 내놓는 것과 같은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고 생각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참여설계과정을 15일에 마치라는 협의가 있었다니 참여설계를 통한 우리 학교의 변화를 기대했던 많은 학교구성원들의 진지한 노력을 무시한 사업 진행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 안에 있는 ‘사전기획’ 내용은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학교의 참여설계과정을 단지 시설공사를 위한 기획설계의 일부로만 보는 기존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학교공간을 다루는 일은 교육과정을 근간으로 학교 학습공간을 포함한 종합적인 학교의 마스터플랜과정이며, 학생들의 중요한 배움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짧은 기간 동안 ‘학교공간혁신사업’이 나름의 호응을 얻고 확대된 배경에는 지금까지의 학교시설사업과 달리 학교구성원의 참여와 이를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신중한 방법적 접근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를 축소해 형식적인 과정으로 시설사업 틀 안에 다시 가두려는 것이다. 

 

왜 그토록 학교공간은 바뀌지 않았는가 
교육부는 ‘미래’라는 의미를 사업의 수식어로 이해하고, 기획된 사업의 기간 내 완수라는 성과만을 바라보는 오래된 사업관리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마치 설거지의 편의를 위해 새로운 레시피를 제한하는 격이니 왜 그토록 학교공간이 바뀌지 않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래학교를 위한 공간·시설사업은 기간과 진행과정까지 유연하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말 그대로 새로운 계약(newdeal)이 필요한데 교육부 사업이 학교구성원의 바람보다 완고한 예산집행과 감사 등 옛 계약에 눈치를 더 보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 그러므로 법은 이러한 문제를 제도적으로 보완하여 새로운 사업을 안정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최근 국회에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등 미래형 학교전환을 돕는 교육시설 등의 안전 및 유지 관리 등에 대한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그 내용은 오히려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미래학교를 위한 개정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과거의 시설사업과정은 그대로 두고 그나마 의미 없는 참여과정으로 축소시킨 ‘사전기획’을 법제화하면서 이를 특정 기관에 위탁하여 적정성 검토 및 감독을 위임하는 독점권한을 주려고 하고 있다. 당연히 학교공간사업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하고, 이를 학교교육의 미래를 구축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기에 기존의 시설사업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과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유지와 관리라는 시설의 관점에 충실한 기관이자 규제와 책임, 대응과 통제라는 틀을 유지하려는 기관이 사전기획의 질을 제고하고 미래를 견인한다는 건 난센스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그릴 학교공간을 학생들과 교사 그리고 지역이 참여하여 신중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진정한 사업과정이 되도록 사업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아울러 미래를 함께 구상할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과정을 존중하는 새로운 제도적인 틀이 필요하다. 미래학교는 공간적 실천을 통해 지금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몇 가지 제언을 붙인다.

 


교육 수요자가 만들어 가는 학교공간
첫째, 학교공간을 기존 시설사업의 진행방식으로 무리하게 진행해서는 안된다. 사업의 기간과 예산의 감독이 아니라 현장에 같이 힘을 보탤 유연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방식, 그리고 감독할 또 다른 기관이 아니라 현장과 함께하는 지원기관이 필요하다.


둘째, 사업의 기본 구상단계부터 시설사업에 맞추어 짜인 사업구조를 시급히 재검토하여야 한다. 특히 사용자 참여를 통한 학교공간 변화의 힘든 과정을 같이 할 수 있는 학교공간 촉진자의 역할과 전문가 거버넌스 과정을 무시하고 과거 시설관련 용역의 일부인 소위 ‘사전기획’ 과정을 만들어 단기간(올해는 사업기간의 역산으로 산출된 3개월 남짓)안에 학교의 교육-공간 마스터플랜과 참여설계 그리고 미래학교의 밑그림까지를 그리라는 무리한 사업구조를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의 모든 가치가 박제화되거나 형식화되는 결과를 만들 뿐이다. 


셋째, 각 학교에서 새로운 학교공간에 대한 역량과 교육과정을 반영하는 공간을 구상하고, 경험을 확대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영역 단위사업’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 학교 전체에 대한 갑작스러운 개축 리모델링 사업은 그 규모나 사업 진행 등의 복잡성으로 경험이 없는 학교공동체가 참여를 꺼리게 된다. 학교공동체를 예전의 수동적인 사용자로 머물게 하려고 기획한 것이 아니라면 단계적인 사업을 같이 포함시켜야 한다. 작은 규모와 경험이 주체적인 공간사용자들의 역량을 증진할 수 있고 이러한 경험이 쌓여 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선 올해는 많은 사업을 미래학교라는 잣대로 무리하게 끌고 가기보다 시설의 노후도 및 보수 시급성과 학교공동체의 미래학교 공간에 대한 문제의식과 역량을 고려하여 ‘노후시설 개축 중점사업’과 ‘미래학교 공간혁신중심사업’으로 구분하여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오히려 학교공동체의 미래학교에 대한 의지와 공동체의 역량에 적합한 미래학교 공간을 위한 지원을 집중할 수 있고 바람직한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용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결정할 권리를 갖지 못하면 그 건물을 짓는 목적 자체를 잃게 되는 그런 과정이라는 점을 무겁게 여겨야 한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이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옛 사업구조에 고착되어 진행한다면 새로운 학교사업의 목적을 잃게 하는 것이고 사용자의 주인됨을 빼앗아 과거 학교를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에게 다시 강요하는 우를 범하게 될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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