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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무구유언] ‘물 만난 물고기’ 만드는 교육이 필요하다

학생 수 급감 속 17개 지방교육청 예산 역대 최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내국세의 20.79% 자동으로 배정

공무원 수 늘고 교육청 비대, 학생 실력은 뒷걸음질

유, 초·중등 교육계 함구, 敎無國 오명 벗을 고민 절실

 

1960~70년대 우리의 교육 생태계는 척박했다. 교실에는 냉난방 시설이 없었다. 아이들은 더위에 축축 처지고 추위에 온몸을 떨었다. 점심시간,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아이들은 수돗물로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어쩌다 급식으로 제공되는 딱딱한 빵, 아이들에겐 꿀맛이었다. 비 내리는 날, 운동장은 질퍽질퍽했고 교실 천장에선 물이 새기도 했다. 교실은 비좁았다. 한 반이 60명을 넘었다. 위생이 좋을 리 없었다. 교사들은 버거워했다. “박봉의 고달픈 밥벌이”라는 자조가 나왔다. 그래도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아이들은 스승의 그림자는 밟아선 안 된다는 존경심을 갖고 열심히 배웠다. 

 

그 시절,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대단했다. 부모들은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선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정부는 가난한 나라에서 믿을 건 교육밖에 없다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제(교육교부금제)를 도입했다. 내국세 중 11.8%를 떼서 교육청에 자동 배정하는 제도였다. “아무리 나라 살림이 궁해도 교육만큼은 국가가 최우선으로 책임진다”는 취지였다. 1972년의 일이었다. 그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제는 50년이 지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50년 동안 대한민국 인재를 키우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것이다. 그 사이 세계 10대 경제국으로 발돋움하며 경제 규모가 커져 교육청 곳간은 튼실해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교부율이 0.49% 포인트 올라가면서 현재의 20.79%까지 확대됐다. 그 결과 2017년도 본예산 기준 42조9000억원이던 교육교부금이 5년 만에 1.5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그런 정책 덕분에 우리의 유,초·중등 교육환경은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교실에는 냉난방 시설이 완비됐고, 모든 학생들이 따뜻한 점심밥을 무상으로 먹고, 학급당 학생 수도 선진국 수준으로 적어졌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교사들은 네이션 빌더(nation builder)”라고 칭송할 정도로 교사의 사회적 평가나 처우도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 미국과 유럽 못지않은 수준이 된 것이다. 교육교부금의 역할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닌 것이다.    

 

교육교부금 올해 최초로 60조원 돌파, 가성비 논란 거세 

유,초·중등 교육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교육교부금제는 최근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다.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팬데믹, 학령인구 감소, 디지털 교육 확산의 격랑 속에서 씀씀이에 대한 ‘가성비’ 논란이 거세다. “격변기에 가장 나쁜 일은 과거 방식을 갖고 대응하는 것(피터 드러커)”인데, 교육 패러다임 전환기에 과거와 같은 획일적 예산 자동 배정이 합당하냐는 것이다. 이런 논란은 내년에 17개 시·도교육청에 내려주는 교육교부금이 사상 처음으로 60조원을 훌쩍 넘길 전망이 나온 데서 비롯됐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교육교부금은 총 64조3000억원이다. 이는 올해 53조2000억원보다 20.9%(11조1000억원)나 늘어난 액수다. 교육교부금이 60조원을 넘어선 것도 처음이지만, 증가폭 또한 1996년 26.3% 이후 최대 규모다. 이처럼 내년 예산안에서 교육교부금이 급증한 것은 정부가 내국세 등 세수가 호조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내년에 291조3000억원의 내국세(국세 중 관세를 제외한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가 걷힐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저 출산 여파로 학령인구(6~21세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10년 995만 명에 달하던 학령인구는 2017년 846만1000명, 2021년 764만 명으로 줄어들었고 2022년에는 743만8000명으로 더 감소할 전망이다(통계청). 내년에만 학령인구가 20만 명 더 줄어든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시·도 교육청에 계속 돈벼락을 내려주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다. 더욱이 전체 공무원 숫자가 13% 늘어나는 동안 시·도 교육청 공무원 수는 38%나 증가했다. 학생은 줄어드는데 교육청 공무원 수는 거꾸로 늘어난 것이다. 그렇게 하고도 시·도 교육청이 못다 쓰고 쌓아둔 기금만 2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내년에 예산을 더 지원해주는 것은 논란이 있어 보인다. 더군다나 정부의 예산 배정 방식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올 7월 2차 추경예산편성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 지원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시·도 교육청에 전체 추경(35조원)의 18%에 달하는 6조3000억원을 배정했다. 교육청에 돈벼락을 내려준 것이다. 그러자 충북교육청은 재난지원금 성격의 ‘교육회복지원금’ 예산 169억8500만원을 편성하고 모든 학생에게 1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전남교육청은 학생 1인당 재난지원금 15만원씩을 지원하기로 했고, 인천교육청은 교육회복지원금 346억원을 추경에 반영했다. 현금 살포 아닌가. 내년 6월 1일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선거용 돈 뿌리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지방교부금에 대한 효율성 논란이 일자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곽상도 의원(국민의힘)은 9월 5일 지방교육청의 교부금 중 일부를 고등교육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 법안을 발의했다. 남아도는 교육교부금의 일부를 대학에 줘 국가재정을 효율적으로 집행하자는 취지다. 곽 의원은 “문재인 정부 들어 소득세·법인세 등 각종 세금을 올리다 보니 정부의 세수가 늘어나고, 이런 세금이 교육예산으로 자동 배정돼 교육청에 돈벼락처럼 떨어지는 구조가 됐다”고 주장했다. 곽 의원은 또 “교육당국이 ‘그린스마트스쿨’ 같은 17조3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예산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도 없이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학생 수는 급감하고 교육청 예산은 급증하는 기형적 구조를 수술해 전체 예산의 0.9%에 불과한 고등교육에 지원하자는 것이다. 


교육청 돈은 넘치는데 학생 실력 추락, 누구 책임인가
미국 실리콘밸리의 싱귤래리티대학의 설립자인 피터 디아만디스는 “기하급수 기술(exponential technology)로 풍요와 번영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하급수 기술은 1개가 2개가 되는 느린 기술이 아니다. 5G처럼 2개가 4개, 4개가 8개로 되는 고속 기술이다. 5G 시장을 주도하지 못하면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의 교육도 마찬가지다. 에듀테크를 활용한 학생 맞춤형 교육, 학생 수준별 심화교육,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위한 교사의 노력이 공교육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벌 인재 양성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한해 30만 명도 태어나지 않은 초저출산 국가에서 예산 운영의 효율성을 더 따져봐야 하는 까닭이다. 

 

곽상도 의원이 주장하는 교육교부금제 개편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여야가 따로 없고, 유,초·중등 교육계와 고등교육계가 따로 없다. 우리 모두의,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자 미래인 까닭이다. 여기서 교육부가 2020년 10월 발표한 ‘코로나 이후 미래교육 10대 정책과제 시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 등 교육환경 변화와 코로나 19 대응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육현장의 변화를 정책에 반영해 미래교육으로 도약하자는 취지다. 10대 정책과제는 ①미래형 교육과정 마련 ②새로운 교원제도 논의 추진 ③학생이 주인이 되는 미래형 학교 조성 ④학생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안전망 구축 ⑤협업‧공유를 통한 대학‧지역의 성장 지원 ⑥미래사회 핵심 인재 양성 지원 ⑦고등 직업 교육의 내실화 ⑧전 국민의 전 생애 학습권 보장 ⑨디지털 전환에 대응한 교육 기반 마련 ⑩미래형 교육 협력 거버넌스 개편 등이다.  

 

교육부의 10대 정책과제 방향은 바람직하다. 세계적인 전염병 유행과 기후변화, 교육 생태계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불확실성과 급속한 변화가 혼재하는 사회에서 교육 패러다임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다. 

 

유, 초·중등과 대학 교육은 톱니바퀴, 재정 효율 배분 필요

교육교부금의 효율적 배분과 사용 또한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유,초·중등 부문과는  달리 고등교육 재정 지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턱 없이 못 미치는 상황이다. 교육교부금법을 개정해 대학도 일정 부분 배정을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유,초·중등 교육계는 모두 함구한다. 자신들의 몫을 대학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속내다. 유,초·중등 교육과 대학 교육은 별도로 분리된 것이 아닌 맞물린 톱니바퀴인데도 말이다.

 

 

특히 전국 유,초·중등생 수가 사상 최초로 600만 명 이하로 줄어드는데도, 17개 시·도교육청 아래 180개 지역교육지원청과 200여 개의 직속기관은 건재하다. 자원과 인력 재배분이 필요한 대목 아닌가. 교육부의 ‘2021 교육기본통계’를 보면 유,초·중등생 수는 5만 명 감소했는데 전체 교직원은 2000명 늘었다. 그런데 학생 실력은 갈수록 추락한다. 중학교 수학은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13.4%, 고교 수학은 13.5%로 역대 가장 높았다. 중·고교 영어도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2017년보다 배 이상 늘었다(교육부, ‘2020년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교육부는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추락하자 다급해진 듯 8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학교에서 과외를 시키겠단다. 코로나19 여파로 학습 결손과 학력 격차가 심해진 초·중·고교생에게 방과 후에 수개월씩 보충지도를 한다는 것이다. 뒤늦게나마 학생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지만, 지금까지 뭐하다 이제 와서 ‘정성’을 보이는지 안타깝다.   

 

이젠 유,초·중등 교육계도 담대해져야 한다. 교육감 성향에 따라 교육교부금의 용도 비중이 달라지고, 기득권 지키기에 매몰돼 비효율적인 예산 배정을 즐기는 건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다. 예산을 적재적소에 사용함으로써 가성비를 높여야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머리를 맞대고 교육교부금의 효율적 배정을 재설계해야 한다. 고등교육은 돈 가뭄에 아우성인데 초·중등은 ‘현금 살포’까지 하면 제대로 된 교육인가. 아이들이 뭘 배우겠나. 

 

영국의 처칠은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기득권, 현재의 이념이 소모적 싸움을 벌이는 교육계가 곱씹어봐야 할 말이다. 물고기는 물을 만나야 성장하고 여러 물길을 헤엄쳐야 대양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 교육계가 아이들의 물길을 막는 건 아닌가. 물길을 터줘야 한다. ‘물 만난 물고기’ 교육이 필요하다. 지방재정교육교부금의 적정성, 다시 논의해 보길 바란다. ‘교무국(敎無國)’의 나라가 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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