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장 내시경을 했다. 늘 해 왔듯이 이번에도 수면내시경을 선택했다. 수면제를 넣기 위해 혈관에 바늘을 꽂았는데 조금 따끔했지만 구역질을 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여기며 팔을 내어 주었다. 그러면서 수면되는 과정을 최대한 기억해야지 했는데 눈을 뜨니 이미 상황이 종료되어 버렸다. 내가 언제 잠들었을까를 더듬어 봐도 하낱도 기억나지 않았다. 순간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사람이 죽을 때도 이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래 전에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 동백분재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날더러 꽃이 피었다고 보라고 했다. 과연 동백꽃이 도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예쁜 꽃을 옆에 두고 근처에 붙어있는 잎 하나, 낙엽이 되어있는 거기에 왠지 눈이 갔다. 어쩌다 낙엽이 되었나 생각하며 손으로 건드렸더니 툭 떨어져 버렸다. 아주 살짝 건드렸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떨어져 버리는 낙엽을 보면서 우리네 죽음을 생각해 보았다. 인간도 삶을 다하고 자연사할 때는 이 낙엽처럼 생명이 끊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러나 아직 푸른 잎은 손으로 건드려도 떨어지지 않을 뿐더러 힘으로 떼려 해도 쉽지 않다.그리고 외력에 의해 어쩔 수없이 떨어질 때는
어느 듯 나이가 들면서 신체 곳곳에서 의도치 않게 탈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평소 나의 건강관리가 다른 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알리고자 한다. 2002년 겨울, 김장하느라 분주히 움직이다 아파트 다용도실에서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래서 오른쪽 손목을 접질렀는데 그 때만 해도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그냥 두었다. 그것이 10년이 훨씬 지나도 계속 불편하게 남을 줄은 그때는 몰랐었다. 그러다가 2014년부터 요가를 배우게 되었다. 지난번 접지른 손목이 불편하여 짚는 동작은 왼쪽으로 더 많이 지탱하며 해야 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아픈 손목이 평소보다 힘을 많이 받게 됨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러한 상태로 운동을 해도 괜찮을까 싶었지만 요가의 묘한 매력을 느끼면서 계속 해 왔다. 그런데 작년 가을 즈음 시큰거리던 증상이 많이 줄어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좋아져 지금은 거의 증상이 없어졌다. 또 2007년에 골프를 하다 생긴 일도 있다. 처음 골프를 시작하면서 개인레슨을 받았는데 매일 빠지지 않고 연습을 하고 휴일에도 열심히 공을 날렸다. 그런데 서너달 하고나서부터 팔이 아프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엘보가 왔다고 했다. 갑자기 무리하게
본인은 초등학교 교감이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상당수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예정이지만 기간제 교사는 제외됐다. 그래서 기간제교사연합회는 지금 시위 중이다. 기간제 교사들의 논리는 똑같이 담임과 업무를 하는데 신분의 차이가 있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편의점이나 식당 등에서도 똑같은 영업과 판매를 하는데 업주와 알바의 신분 차이가 있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똑같은 물건이라도 백화점과 일반 매장의 가격이 다르고 똑같은 주유소라도 지역과 상황에 따라 기름값이 다른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니 촛불이라도 켜야 하지 않는가? 그들은 정규직 교사가 밀어내기 한 교과수업이나 행정업무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으며 정규직 교사들이 과중한 업무를 떠넘기지만 고용 불안정성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교사들의 인적관리와 담임배정 및 각종 교육활동 조직을 하는 것은 교감의 역할이다. 우리학교에도 여러 기간제 교사가 있고 각자 맡은 업무가 있지만 똑같이 희망에 의한 담임여부와 희망에 의한 업무분장을 한다. 오히려 기간제이기에 비중 있고 힘드는 일은 못 주고 부담 없고 가벼운 일을 주려하고 있다. 그들이 들으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정규직보다는
교직 경력 30년이 훨씬 넘어 교감 승진을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어려운 승진이 교감 승진이라고 누군가 말했었다. 그나마 나는 뜻을 이뤘지만 수많은 교사들은 중도에 포기한다. 한 학교에 교사는 많지만 교감은 대부분 한명이니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막상 발령을 받고 보니 쏟아지는 업무에 치여 축하와 성취감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9월1일 부임을 하자마자 며칠 안 돼 종합감사가 나왔고 이어서 수학여행 인솔 책임자로 다녀오니 학교폭력 민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적응은 고사하고 직원 이름도 다 몰랐을 때였다. 월중행사에 빼곡히 적혀있는 일정과 행사를 일일이 챙겨야 하고 총각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여교사인 우리 학교에서 번갈아가면서 휴직과 복직, 산가와 병가를 거듭한 덕분에 교감 4개월 만에 터득한 인사업무가 제법 노련하게 됐다. 교사 때보다 많지 않은 초라한 월급 매일매일 쏟아지는 수십 건의 공문을 살펴야 되고 공문 건수 못지않게 교육청의 액티브 쪽지를 처리해야 했다. 식사 후 양치질도, 화장실도 미뤄야 할 때가 많았다. 교감이 됐다고 다 알게 되는 것이 아닌지라 한 건 한 건 생길 때마다 인사실무편람에서 찾아 공부하고, 고참 교감에게 물어물어 해결하다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