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 때 그 일 선생님만 모르시죠?" 졸업식이 끝나고 마지막 종례를 위해 교실로 들어섰을 때 평소 명랑한 성격의 제욱이가 뜬금 없이 외치는 말이다. 그 한 마디로 교실 안에는 야릇한 호기심이 감돌았다. 2학기가 조금 지났을 무렵의 일이었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점심을 먹고 아이들의 자율학습을 감독하기 위해 교단의 담임용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멀쩡하던 의자가 내려앉으며 나는 그만 의자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교실 안은 웃음바다가 됐고 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되는 자율학습에 짜증이 난 아이들이 장난을 친 것이다. 의자 다리를 감쪽같이 부러뜨린 다음 투명테이프로 살짝 붙여 놓았던 모양이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야!"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내가 범인을 잡기 위해 호통을 치자 녀석들은 일제히 침묵. 어르고 달래고 해도 약속이나 한 듯 묵비권이었다. 결국 제풀에 지쳐 다시 의자를 구해 놓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되고 말았다. 그렇게 잊혀진 그 사건이 졸업식날 다시 상기된 것이다. "그래, 범인이 누구니?" "원식이요." 정말 뜻밖이었다. 평소에 내성적이고 얌전해서 그런 짓궂은 장난을 하
청소년기의 독서는 그 사람의 인격을 형성시킬 뿐만 아니라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굳이 나폴레옹이나 빌게이츠, 안중근 의사처럼 유명 인사가 아닌, 우리 주변의 성공한 사람들만 보아도 어렸을 적부터 지독한 독서광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책과 멀어진 요즘 아이들에게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독서를 권장해야 하며, 그 손쉬운 방법의 하나가 바로 정부의 '학교도서관 활성화 종합방안'의 실천이다. 이를 위해선 지금처럼 낡은 책을 빌려주는 단순한 도서대여점으로 전락한 도서관을, 하루 빨리 원래의 목적을 수행하는 교육의 장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우선 일선 중고등학교의 낙후된 도서관이나 도서실을 시급히 현대화하고 도서 구입비를 대폭 확충하여 청소년들이 언제 어디서든 보고싶은 책을 맘껏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어 교사 대신 독서교육과 정보화 교육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사서 교사가 각급 학교에 배치되어야함은 물론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교육부나 지방교육청에서도 학교도서관과 독서교육에 많은 관심을 보내오고, 예산지원 또한 아끼지 않고 있어 학교 독서교육의 앞날이 밝은 편이다. 현행 제7차 교육과정의 역점 부분이 바로 자율과 창의력이고, 이러한 자율과 창의력
새벽 안개가 걷히자 아침 공기가 유난히 상쾌하다. 차에서 내려 교정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에서 인사하는 학생들의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선생님, 안녕 하세요?" 한 녀석이 나를 보자마자 깍듯하게 예의를 갖춰 꾸벅 인사를 한다. "어, 말봉이, 오늘도 일찍 왔네." "선생님, 저도요." "오, 그래 광재도 일찍 왔구나. 참 부지런도 하지." 비록 짧은 거리지만 이렇게 교무실로 걸어가는 동안 어림잡아 십 여명 정도의 학생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받는다. 수업 시작 전과, 후에도 단체로 인사를 받는다. 교실을 나와 복도를 지나면서 또다시 여러 명의 학생들로부터 인사를 받는다. 퇴근 후에는 아파트단지 이웃들과 또 공손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인사 복이 터졌다. 이렇듯 하루 동안 내가 받는 인사의 횟수는 어림잡아 수백 번은 될 것 같다. 세상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경과 기림을 받는 직업이 또 있을까. 아마 고위 공직자나 대기업 회장이라면 모를까, 이렇듯 하루 동안 수백 번의 정중한 인사를 받는 직업은 선생님말고는 없는 것 같다. 날이면 날마다 아이들에게 수많은 인사를 받으며, 나는 문득 내가 과연 이런 극진한 인사를 받아도 되는지 자문해 본다. 요즘은 교직을 단순
우르르 썰물처럼 아이들이 빠져나간 텅빈 교실에서 나는 삐뚤빼뚤 흐트러진 책걸상 사이를 오가며 휴지를 줍는다. 뭐가 그리 급했던지 영어 단어를 외웠던 연습장이며 책갈피에 곱게 끼워져 있어야할 여자 친구의 스냅사진까지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다. 흐트러진 책상의 줄을 맞추고 사진을 녀석의 서랍에 곱게 넣어준다. 복도를 지나가시던 선생님이 "아이들 시키시지 왜 손수 하세요" 한다. '에구, 그러면 편한 것을 전들 모르나요.' 몇 번 아이들을 시켜봤지만 힘만 들뿐 차라리 내가 하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이 났다. 비질도 제대로 못하는 고등학생들이 있다면 믿을는지. 하늘을 향해 빗자루를 꿰차기만 하니 먼지가 제대로 쓸릴 리가 없다. 잔소리도 하루 이틀이지, 그래서 아예 아이들을 내보내고 차라리 손수 하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빈 교실에 남아 바닥을 쓸고 휴지를 줍고 하는 것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 아이들의 성격도 덤으로 파악할 수 있으니 차라리 일거양득이다. 매사 건성건성하고 낙천적인 P는 서랍이며 사물함도 성격만큼 자유분방하다. 반면 꼼꼼하고 야무진 K의 책상 서랍은 꼼꼼하단 소릴 듣는 내가 놀랄 정도로 정갈하다. 남자 녀석이 화장비누에 핸드로션까지 참
선생 노릇하기 힘들다는 푸념이 어제오늘은 아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 것 같다. 물론 여기에는 사교육의 발달과 사회 구조의 변화에도 한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매스컴과 인터넷의 발달로 생각된다. 매체가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지식의 생산과 전수의 대부분을 학교가 담당했다. 학교에 가야만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배울 수 있고 인간적 교류도 가능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정보통신의 발달로 이러한 학교의 순기능이 서서히 약화되고 있다. 제도교육의 위기가 오고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는 곳이면 거의 무한대로 신지식을 보고 배울 수 있다. 굳이 루브르 박물관을 가지 않더라도 안방에 앉아서 간단한 키보드 조작만으로도 모나리자를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서 언어의 한계만 극복한다면 전 세계를 마음껏 누비며 지식욕을 채울 수도 있다. 반면, 학교는 이러한 변화를 따라잡기에는 현실적으로 벅차다. 신지식을 창출하고 전수하는 일에 이미 뒤쳐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래도 초등교나 중학교가 외형적으로나 커리큘럼 상 예전과 비교할 때 적지 않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교는 아직도 낡은
반 아이 중에 매일 지각하는 학생이 있다. 여러 번 주의를 주었지만 소용이 없다. 참다못해 하루는 조용히 불러 타일렀다. "네가 늦게 오면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본단다. 네가 할 일을 누군가가 대신해야 되기 때문이야." 그러나 타이를 때 뿐, 지각하는 버릇은 여전했다. 다른 아이들 보기에도 미안하고 참으로 난감했다. 하는 수 없이 상담실로 불러 따끔한 꾸중과 함께 종아리를 때렸다. 녀석은 맞으면서도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하고 언짢았다. 다음 날부터 녀석과 눈 마주치는 것이 거북스러웠다. 평소 화를 내지 않고 잘 대해주던 선생님이 종아리를 쳤으니, 제 딴에는 꽤나 서운했던 모양이다. 좀더 설득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체벌부터 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도 그 녀석을 피하게 됐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러던 중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난 그만 감기에 걸리게 됐다. 편도선이 부어 목이 몹시 아파 수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아파도 진도는 나가야 되기 때문에 힘들게 수업을 하며 그렇게 며칠째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 날도 여느 날처럼 지친 몸으로 늦게까지 남아 잡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녀석이 불쑥 교무실로 들어왔다. 손에
'주5일 근무제'의 막이 올랐다. 학교도 비록 월1회지만 내년부터 실시한다는 교육부의 발표가 있었다. 이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지만 분명한 것은 '주5일 근무제'가 시대의 대세라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국제 사회에서 노동 시간이 가장 길고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진 바다. '주5일 수업제'가 실시됨으로써 학교 현장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우선 가장 큰 수혜자인 학생과 교사는 주말을 유익하고 생산적으로 보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금보다 삶의 질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과 세계에 대해 눈을 넓힐 수 있는 독서와 탐구 활동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토의·토론 등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고 이를 조직화시킬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여행을 통해서 가족과의 유대도 돈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삶을 체험하고, 자신을 충전하는 일은 학생들의 인격 형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교사도 시간적 여유가 생김에 따라 수업의 내실화를 위한 다양한 연구와 각종 연수에 참여해 자기계발을 통한 자아 실현도 가능해 질 것이다. 이것은 교사의 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말은 기막히게 잘 하는데 막상 글을 써보라면 난색을 표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물론 말솜씨와 글 솜씨가 모두 훌륭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또 어떤 사람은 말솜씨와 글 솜씨는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도 한다. 이 같은 오해는 학교 교육의 부실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본인의 노력 부족과 독서의 부재에서 오는 현상이 대부분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작문을 지도하다보면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글쓰기 공포증의 하나인 'Paper Phobia'를 심하게 겪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백지를 앞에 놓고 글을 쓰려고 하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 지는 증상이다. 이 같은 글쓰기 공포증은 각 대학들이 앞다투어 논술 시험을 입시의 주요 전형 자료로 삼으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 논술의 또 다른 변형 형태인 구술 시험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는 생각처럼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중에는 수많은 글쓰기 교재들이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모두 간단한 방법들이다. 두괄식 문단의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대개의 글들은 서 너 개의 문단들로 구성된다. 각 문단의 첫머리에 자기가 하고 싶은 요지의 문장을 쓰면 된다. 나머지 문장은 첫 문장에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보면 현재 중고교 수업일수가 약 220일 범위로 고정돼 있다. 이것을 대폭 완화 조정해 지역 및 학교 단위별로 자유로이 교육계획에 의거 융통성 있게 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수업일수, 교육과정, 교육정책의 수립에 있어 교사들과 사전에 논의해야 한다. 교육과정 전반에서 교사들의 민주적 참여는 긍정적인 교육 패러다임을 형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획기적인 수업방식과 암기식 시험을 개선하는 동시에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중·고교 교육제도와 수업일수가 매우 경직돼 있어 이 같은 제도 개선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일정한 날짜를 정해 자녀와 서점 쇼핑하기, 요리 함께 해먹기, 시골 일손 돕기, 복지원이나 고아원을 방문해 봉사하기, 부모와 함께 여행하기 등등. 이러한 것들도 반드시 수업일수 이수로 인정해야 한다. 대학에서 특기적성이 뛰어난 신입생을 선발하려 해도 그 특기를 다양하게 기를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학교엔 없다. 영화, 연극, 사물놀이처럼 많은 시간을 교외에서 지도 받아야 하는 특기자를 선발하려 해도 이것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수업일수와 학교성적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시·도교육청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