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교육감 선거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번에도 시·도교육감 선거는 보수와 진보진영의 건곤일척이 예상되는데 양쪽 모두 단일화에 진통이다. 문득 현장에서는 교육감의 권한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기를 쓰는가 하는 의문에 부딪히게 된다. 일단 교육감은 막대한 규모의 예산 편성 권한을 갖는다. 대한민국 총 예산이 429조원인데 비해 경기도교육청 단일 예산이 약 14조 3700억 원임을 감안하면 가히 욕심을 낼만한 자리다. 이념·포퓰리즘에 현혹되면 안 돼 각종 조례안 작성과 규칙 제정, 교육기관의 설치·이전 및 폐지와 교육과정 운영의 권한도 갖는다. 아울러 소속 국가공무원의 인사관리를 총괄한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그 누가 무소불위의 교육감 자리를 쉽게 포기할 것인가. 물론 교육을 올바르게 잡아나가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을 터다. 하지만 권력의 주도권을 잡아보겠다는 의도가 더 많은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래야 자신에 충성을 한 측근들에게 한 자리씩 내어주고 지지해준 단체에게도 보답할 기회를 갖게 된다. 나아가 4년 동안 예산권과 인사권을 쥐고 흔들며 교육계를 길들일 수 있고 이슈만 잘 잡으면 정치권에서의 러브콜도 받을 수 있다. 이래서 인간 오욕칠정 가운데 권력욕
최근 자주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 국경을 초월한 무한경쟁시대가 그것이다. 현재 우리는 10년 전만 해도 생각지 못한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드론’, ‘무인자동차’, ‘스마트시티’로 특징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미래예측 전문가들은 앞으로 ‘보험계리사’, ‘수학자’, ‘통계학자’, ‘데이터분석가’가 유망할 것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나노’, ‘바이오’, ‘인포테크(IT)’, ‘대체에너지 산업’, ‘감시공학’, ‘의료제약’, ‘신사회공학’, ‘뷰티션’, ‘헬스케어’, ‘방송통신융합’과 같은 첨단기술과 인지기술(Cognitive Skills)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했다. ‘혁신, 인권’으로 교육본질 호도 사실 한국 대학의 수급전망 보고서에서도 기계, 전기, 전자, 건축, 화공, 교통, 운송 등 이공계열 학과의 초과수요가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결론은 가공할 미래를 위해 변화를 스캔하고 분석할 줄 알아야 하며, 아울러 자연과학 특히 수학과 ICT 기술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장 교육과 정책은 어떤가. 다가올 미래를 위해 준비돼 있는가. 한 마디로 ‘아니오’이다. 아이들의 꿈
지난해 시간들을 되감아 보면 무슨 사건들이 그렇게 많았는지 참담하다. 인류문화가 진보하면 인간의 이성도 진화해야하는데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부패지수 56점, OECD 34개국 중 최하위권(27위)으로 확인 된다.박근혜 대통령도 “부정부패의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스스로 무능에 중독됐다. 한 해의 사건들을 보라. 외교관의 성추행, 강남역 묻지마 살인, 신안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아버지에 의한 토막 살인, 엘씨티 비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시작일 뿐이다. 게다가 어느 중학교 교장의 음란물 사건까지, 참 다채롭다.인간 답지 않은 사람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도대체 저들을 방치한 담임은 누구였는가. 더욱이 뻔뻔한 공직자들을 볼 때는 그 부모와 담임의 종아리를 치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다. 그러다가도 기초생활수급자가 폐지를 팔아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는 것을 보면 분노도 눈물로 변한다. 도대체 자본과 권력이 뭐란 말인가.문제는 교육이다. 참나무처럼 활활 타올라야 할 교육이 좀체 타지 않는 게 화근이다. 두드리고 치고 담금질해 훌륭한 연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불도 약하고 장인도 정신을 잃었다. 대충대충. 설렁설
교사로 임용된다는 것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일처럼 힘들다. 대학 4년 동안 치열하게 공부를 해야 하고 임용고시를 치러야 한다. 정말이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이상으로 힘겨운 과정을 겪는다. 그럼에도 왜 많은 이들이 교직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교직이 성직이어서일까, 아니면 안정된 전문직이고 방학 때 쉴 수도 있어서일까. 아무튼 수많은 고급 인력들이 교사가 되고자 온갖 고난의 과정을 감수하며 피 말리는 노력을 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거나 아니면 실패의 운명을 맞는다. 생각할수록 눈물겨운 희비의 엇갈림이다. 따라서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교사는 참으로 선택받은 행운아들이다. 그런 참신한 인재들이 해마다 교직에 유입되는데 교직 사회는 왜 생명력이 없는가. 대부분의 경우처럼 신임교사는 설렘 속에 연수를 받고 정장 차림의 출근을 한다. 긴장과 떨림으로 학교를 안내받고 배정된 담임과 업무를 맡는다.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아이들도 하나같이 예쁘기만 하다. 그러나 그 기대와 꿈은 언제부터 무너지는가. 신임교사들은 나름의 설렘과 각오로 출발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비빌 언덕이 없다는 것이다. 선배교사들이 신임교사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