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교육이다.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 준 것이 교육임에는 이견이 없다. 하물며 교육입국(敎育立國)이라는 성어까지 나왔을까. 그래서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교육을 살리자며 갖가지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해 왔다. 물론 정책을 어떤 방향에서, 어떤 철학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관점에서 그것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교육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을 떠나서 국민으로서 교육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이 많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요즘 대통령의 교육에 대한 언급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얼마 전 6․ 25전쟁을 북침이냐 남침이냐에 대한 용어 혼선으로 인해 학생들을 상대로 한 엉터리 여론조사로 인하여 교육계에 소란이 있었다. 질문을 엉터리로 하니까 답변도 혼란스럽게 나온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 대통령은 현장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듯이 말했고, 교육부에서는 부랴부랴 일선 학교에 전쟁 도발 주체에 대한 바른 인식 교육을 강화하라는 공문을 보내는 등의 법석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그리고 뒤이어 국사 과목을 수학능력시험에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자는 대통령과 기자와 간담회에서 나온 발언으로 인해 국사의 수능 반영 논란은 일거에 정리(?)될 듯하다.
필자는 직접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신분은 아니라 하여도 개인적으로 국사 과목의 수능 지정은 옳다고 본다. 물론 국사 이외 교과목 교사들의 수업시수 문제 등에 있어서 찬반 논란이 있고, 수능 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의 시각도 있음을 인정한다. 매사 모든 교육 문제를 대학입시와 관련지어서 해결하다 보면 교육이 가진 본류를 잊어버린 채 곁가지만 다루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는 개연성도 있다.
문제는 이런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교육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생각만이 옳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해서 그것을 관철시킬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을 받아 들여서 토론을 하고 모아서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올바른 답이 나올 것 아니겠는가. 그러한 과정이 빠진 채 벌어지는 대통령의 교육에 대한 발언은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내포한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이라는 말이 있다. 왕조시대에 임금이 직접 모든 정사(政事)를 친히 보고 살핀다는 의미다. 가끔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여염집의 사소한 일들까지 친히 챙겨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다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언뜻 들어보면 만기친람식 행위는 적극적인 통치행위로서 바람직해 보이지만 현대와 같은 시기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은 행정이 체계를 갖춰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무시된 채 한 사람의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움직인다면 그 조직은 죽은 조직이다. 이해 당사자의 대화와 토론, 의견수렴 없이 일사분란하게 한 사람이 결정하는 곳은 개인회사다.
물론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답답해 보여서 가볍게 한 마디 했을 수 있다고 치더라도 교육현장에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고 천금의 무게로 다가온다. 예상치 않게 생길수도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내린 결론 한 마디의 파급력은 크다. 일묵여뢰(一默如雷)처럼 한 번의 침묵이 우레와 같은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교육의 경우는 1~2년 후에 그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한참 후에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서 더 그런 것이다.
차라리 대통령이 교육문화수석이나 교육부 장관에게 얘기해서 이러저러한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견수렴을 하고 연구 결과를 가져오라고 했어야 옳았다. 관료들이 모두다 대통령 입만 쳐다보면서 회의 시간에 열심히 받아 적기를 하는 모습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관료들을 복지부동하게 만들고, 창의성은 사라질 것이다. 외국의 경우는 흉금을 털어놓고 각종 정책에 대해서 토의를 해서 나름 합리적인 정책을 결정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여럿이 모여서 숙의해도 정책에 오류가 생길 수 있는데, 하물며 한 사람이 신이 아닌 다음에야 교육문제를 그렇게 쉽게 결정해서야 되겠는가.
학교 또한 마찬가지다. 교장 한 사람의 말로써 모든 것이 결정되는 의사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해진 위임전결 규정과 민주적인 의사결정이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학교 정책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절차적 정당성과 함께 합리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때 올바른 교육정책이 실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