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기의 삶이 행복하길 소망한다. 어린이든,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아니면 노인이든 각자 인생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굳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소환하지 않아도 인류의 역사는 ‘행복 추구’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교사는 인식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쉽지 않다. 교육은 인류 역사에서 오랜 보수성을 간직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가 갇힌 일상에서 벗어나려면 절대적으로 ‘주도적인 자세’를 지녀야 한다. 같은 일을 해도 남보다 보람을 느끼는 교사에게는 ‘본심’이 자리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한다. ‘자신을 위해’라고 다짐하기 여기엔 ‘이왕 하는 거, 즐기자’는 마음가짐이 자리한다. 좀 극단적으로 말해 ‘학생을 위하기보다 자신을 위해’라는 생각이 마음을 점령하고 있다. 교사는 의도적으로라도 즐거워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에게 기운이 전파된다. 일반적으로 ‘학생을 위해’라는 다짐에는 희생과 부담이 따른다. ‘자신을 위해’라는 다짐은 다르다. 자신을 위해 꾸미고, 즐기고, 베푸는 데는 간섭과 통제가 있을 리 없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학교는 매일 같은 일상이 반
“아이들이 줄었는데 교사도 줄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흔히들 단순한 경제 논리에 의해 교육을 평가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대답은 ‘No’이다. 단도직입적으로 교사가 하루 동안 학급 아이들의 이름을 얼마나 불러줄 수 있을까? 학생은 하루에 한 번이라도 선생님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결론은 지금의 교사 1인당 학생 수로는 불가능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통계 교육통계를 보자. 초등학교를 예로 들어본다. 2000년 기준으로 초등학교의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28.7명이었다. 지금은 서서히 줄어들어 2019년에는 14.6명이 됐다. 수치상으로 큰 변화다. 그런데 실제는 어떤가. 도서벽지 같은 특수한 환경이 아니라면 15명으로 구성된 학급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수업을 담당하지 않는 교사 군(群)까지 포함해 작성한 통계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OECD 국가 평균에 근접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하지만 OECD 국가들은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계산할 때 수업을 하는 교사만 포함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OECD 교육지표라는 것을 따로 만든다. 이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