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여름날이면 더위를 피해 정자나무 아래에 시원한 그늘을 찾곤 했다. 그곳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평상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 역시 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평상에서 어린 시절의 뜨거운 여름날을 보내곤 했다. 때로는 더위와 피곤함에 지쳐 평상에 누워 오수를 즐기곤 했다.
저녁 무렵이면 평상에서 마을 사람들끼리의 자연스런 만남도 이루어졌다. 마을 사람들의 관심사를 논하는 사랑방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정자 나무에 펼쳐진 평상은 대개 나무로 만들어졌다. 그 나무에는 가지의 그루터기가 붙어 있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옹이다. 잠을 자거나 눕기라도 하면 등에 걸려 아프기까지 했다.
옹이는 굵은 가지에서 뻗어나간 가는 가지의 자국이다. 그러면 옹이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나무는 자라면 곁가지가 자라게 마련이다. 그러다가 나무는 부피생장을 하면서 그 부분은 눌리어가게 되고 함께 자란 곁가지는 계속 파묻혀 자라게 된다. 옹이는 자신의 분신을 지켜내기 위한 아픔의 상처인 셈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 아픔이 얼마나 깊었기에 그리도 단단한 지. 나무에 박힌 옹이는 마치 무쇠같다.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의 응어리가 굳어진 것이리라. 그때문에 사실 옹이가 있는 나무는 목재로 인기가 별로 없다. 가슴에 단 훈장처럼 턱하니 흠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고급목재로서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옹이도 그 나름대로 인정받을 때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주택의 대들보나 기둥으로 쓰일 때였다. 어릴 적, 이웃 집을 찾아 가보면 옹이가 박힌 대들보나를 종종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우리 선조들은 옹이가 있는 나무를 대들보나 기둥으로 사용했을까? 보기 좋고 튼실은 나무들이 많을 텐데 말이다.
대들보나 기둥으로 사용하는 나무는 아무리 건조를 잘한다고 해도 몇 년이 지나면 갈라지게 마련이다. 잦은 습도의 변화로 인해 나무에도 수분 변화가 생겨 갈라짐과 뒤틀림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에 나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갈라지는 특성이 있다. 급기야 나무에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때 옹이가 큰 역할을 담당한다. 그 옹이의 단단함이 나무의 갈라짐 현상을 멈추게 한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충격과 변화에도 꿋꿋하게 자신을 지키고 있는 것이 바로 옹이였다. 옹이가 박힌 나무가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 셈이다. '등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듯이 옹이가 박힌 나무가 우리들의 집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만큼 옹이가 많은 나무는 대들보로서의 효용가치가 높았던 것이다. 비록 겉보기엔 흉했지만 그 가치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근래에는 이런 옹이의 가치를 인정한 탓일까? 통나무집을 선호하는 건축물에는 멋스러움 때문인지 인기가 높다고 한다. 어머니의 불룩한 뱃살이 때로는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는 것처럼.
학교 현장에도 마찬가지다.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요즘도 인문계 학교이니 전문계(실업계) 학교니 출신학교를 따지면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듯하다. 학업 성적이 떨어진다고 해서, 혹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은 모났다고 낙인을 찍곤 하는 것이다.
곧 있으면,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고등학교 진로 선택의 시기가 다가온다. 매년 겪는 일이지만, 전문계(실업계) 학교가 신입생 모집에 많은 어려움을 겪곤 한다. 많은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이 실업계 학교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을 갖고 있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직접 해당 학교를 방문해서 시설과 교육과정을 살펴보고 그 내면과 속사정을 알아보면 어떨까? 겉모습만 보고 지레 짐작하여 판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하여 학생의 진로를 선택하기보다는 막무가내식으로 전문계 학교는 절대 안된다고 강변하곤 한다.
가정에서 혹은 학교에서 고통과 아픔을 겪은 학생들이 참 많다. 우리 학급의 경우를 보자. 노래를 잘 부르는 00는 중학교 때 학업 성적이 부진하다고 해서 좌절과 아픔을 겪은 친구다. 칭찬다운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단다. 그만큼 자괴감에 빠져 사는 친구다. 그는 얼마 전 파주지역에서 열린 문화 축제 노래자랑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그의 꿈은 가수다. 학업 부진에 대한 옹이가 노래로 발현되었는 지도 모른다. 그의 노래는 그만큼 힘이 있었고 폭발적이었다.
부모의 사업 실패로 방과후에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00라는 친구도 있다.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의 꿈은 일류 항공정비사가 되는 것. 그는 텔레비젼에 나오는 맥가이버처럼, 고장난 물품이 그에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새로운 것으로 변신한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조부모의 슬하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00라는 친구도 있다. 그의 꿈은 그래픽 디자이너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가슴에 간직한 옹이를 단단히 추스르며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학생들이다. 그들이 처한 어려운 환경과 여건은 옹이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는 큰 버팀목이 되고 지혜가 될 지 모른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호감'이니 '비호감'이니 하는 말들을 자주 한다. 이 또한 외모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한 경우다. 옹이도 큰 상처때문에 남들에게는 비호감으로 보일지 모른다. 자기의 분신을 지키기 위한 나름대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바라보기보다는 그 흉터로 인해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이다.
사실 호감형이라 해서 인간성 또한 비례하지 않는다. 비록 비호감형이기는 하지만 옹이처럼 내면의 성실함을 갖고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손 마디마디에 옹이처럼 굳은 살이 박혀 있다. 또한 가슴에 참고 살아온 아픔도 서려 있다. 어쩌면 그들이 있었기에 이 사회에서 이렇게 발전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고통과 아픔을 겪어본 자만이 진정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포용할 수 있는 법이다. 누구나 각자의 가슴에 아프고 흉한 상처를 하나씩 갖고 살지 않던가. 그 아픔의 흔적이야 말로 멋진 미래를 위한 영광의 상처일 수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겉모습의 화려함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겉모습만 보고 지레 판단하거나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져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상대방의 아픔과 상처가 있다면 그를 감싸주고 안아주어야 할 일이다. 아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옹이가 단단히 굳어지는 것처럼, 때로는 인내와 열정과 사랑도 필요하다.
나에게도 흉하고 거친 옹이가 있다. 그 옹이를 가만히 들여다 본다. 볼품없는 흉한 모습이지만, 아픔을 겪어낸 그 위대함이 언젠가 빛을 볼 수 있으리라. 삶에 옹이가 있기에 내 인생은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