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곧은 교직 외길 58년, 청석 류창렬 첫 서예전 성료

2025.05.13 14:14:25

가족들이 공모전 수상작 모아 봉정
주옥같은 작품에 관람객 이어져

청석(淸石) 류창렬 서예전을 관람했다. 류창렬(柳昌烈). 1935년생이다. 그 이름만 대면 경기도 교육계에서 웬만한 분이면 다 안다. 경기도교육계에서 1955년부터 43년간 봉직하다 경기도율곡교육연수원장으로 퇴임(1998년)한 분이다. 이후 고등교육에서 15년간 활동했다. 올곧은 교직 외길을 58년간 걸어온 분이다. 현직에서 그를 만난 사람은 그의 품성과 연수 때의 그의 특강을 뇌리에 간직하고 있다. 그는 후배들의 사표(師表)다.

 

까마득한 교직 후배인 e리포터가 그를 만났다. 서예전(5.8∼5.11)이 열리고 있는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 2층 4전시실. 그의 첫인상은 꼿꼿한 자세와 언행의 품격. 이분이 90세 맞나 싶다. 필자의 눈에는 청춘으로 보인다. 60세가 넘어 ‘시조’와 인연을 맺더니 80세가 넘어서 ‘서예’와 인연을 맺어 여기까지 이르렀다.

 

전시된 작품은 무려 76점. 여기 있는 작품이 모두 입선작(수상작)이라니 그 수준이 놀랍기만 하다. 때마침 그의 스승인 초민(艸民) 박용설(朴龍卨) 작가(한국서예가협회 자문위원)도 전시장을 찾았다. 스승 앞에서 전시된 자신의 작품을 하나하나 설명하는데 이건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수년간 부단히 공부하고 수련하고 무아지경에 이른 경지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여기 있는 것 모두 한문(漢文)이다. 혹시 너무 어려워 보통 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렵지 않을까? 아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천자문(千字文) 병품 작품이 보인다. 가도(賈島)의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 한영(韓嬰)의 한시외전(韓詩外傳), 나옹선사의 청산가(靑山歌), 성삼문의 절명시(絶命詩), 남이(南怡)장군의 북정가(北征歌),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오언시(五言詩), 율곡(栗谷)의 화석정(花石亭), 이백(李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 시도 보인다. 그는 자신의 작품 중 가도(賈島)의 시가 마음에 들어 팜플렛 표지사진으로 했다고 했다.

 

그가 90세에 첫 서예전을 갖게 된 사연이 궁금하다. 코로나 19로 집안에 갇혀 지내면서 소일거리가 붓글씨였다고 한다. 우연히 서예 공모전 광고를 보고 작품을 응모했다. 입선작 전시회 후 작품과 상장, 도록이 우송되어 왔는데 그렇게 모인 것이 70여 개. 가족들이 작품이 골방에 쌓인 것을 보고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전시회를 강권해 부끄럽지만 허락했다고 한다. 자식들이 아버지의 작품을 전시회에 봉정한 것. 

 

 

그러기에 이번 서예전은 특별한 주제가 없다. 대회 응모작이자 입선작을 모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시(漢詩)를 보면서 내용이 감동적인 것을 서예로 표현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 서예를 하면서 먹물을 묻힌 붓이 펴졌다 오므라들었다 하는 쾌감에 매료되었다. 그것이 희열로 다가온다”며 “서예 활동은 정서적 건강에 도움을 주고 작품 활동을 서 있는 자세로 하기에 신체적 건강도 도모해 준다”고 이로움을 말한다.

 

하나의 작품은 어떻게 탄생할까? 필자의 우문에 그의 스승이 조언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에 와 닿는 문구를 보고 감흥이 왔을때 그 의미와 내용을 외워서 쓰는 것이다. 타인의 작품을 보고 쓰는 것이 아니다. 가슴 속에 응축되어 나온 것이 작품이다. 서체별로 글씨 크기가 다르다. 글씨뿐 아니라 공간(행간) 구성도 아름답게 해야 한다”고 했다. 초민 스승은 전시 작품 중 '최치원의 추야우중(秋夜雨中)' 작품을 칭찬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자연친화적 내용이 많다. 작품을 쓸 때 중점을 두는 것은 글의 내용, 결구, 행간 간격이라고 한다. 요즘 사회가 복잡하여 ‘멍때리기’가 유행인데 서예를 하면 정서적 안정감을 가져오고 인내력도 길러진다고 한다. 서예 입문자에게 주는 조언은 “먼저 글씨의 기본을 터득하라. 반복해 써라”를 강조한다.

 

 

그는 “젊어서 늑막염을 앓고 현직에서도 재발되어 장수하지 못 하리라 생각해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건강에 자신이 없어 몸조심을 하며 살아왔다”며 “지금도 걷기운동을 꾸준히 하고 공원 놀이터에서 근력운동을 하는 것이 건강 비결”이라고 소개한다.

 

그의 가치관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고 인생관은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라. 천만년 사는 것이 아니므로 욕심을 버려라”이다. 그는 경기도율곡교육연수원장 때 정년 2년 반을 남기고 후배에게 길을 터 주기 위해 명퇴한 비화도 소개한다.

 

교직 후배들에게는 교직 사명감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연수원장 시절 특강 때 “힘들고 어려운 일은 능력 있는 자의 몫이다. 일이 많다고 불평 말고 내가 인정을 받고 있음에 오히려 기뻐하라. 제자들의 영육을 기르는 것은 오직 교육자뿐이다. 나 아닌 사람이 나보다 잘되길 바라는 것은 오로지 부모와 스승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역시 영원한 교육자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yyg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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