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치유 지상상담소⑤] 중학교 교사지만, 중1 딸은 모르겠어요

2025.07.03 14:45:55

 

저는 중1 딸을 둔 40대 중반의 중학교 교사입니다. 교사로서 점점 교육하기 힘들어지는 학생들을 보며 ‘내 아이는 바르게 잘 키워야지’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제 딸이 어릴 땐 제가 하자는 대로 잘 따라 왔습니다. 학교에서도 늘 선생님들께 좋은 평가를 받았고 저 역시 교사로서 교사 마음을 잘 알기에 되도록 선생님께 무리한 연락을 하거나 부담드리지 않으려 신경도 많이 썼습니다. 남편은 일반 회사를 다니며 아이랑 놀아주거나 다른 걸 함께 해주고 교육은 주로 제가 맡아서 했어요. 저는 딸에게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거나 완벽해야 한다고 요구한 건 아니지만 제가 학교에서 늘 학생들을 접하다 보니 적어도 평균적인 중학생들 수준만큼은 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긴 합니다. 또는 적어도 저런 행동은 하면 안 된다 정도지요. 그래서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늘 미리 행동거지를 고쳐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됐는지 중학교 들어가서부터 아이와 갈등이 심해졌어요. 얼마 전엔 저보고 “엄마는 내가 그렇게 다 맘에 안드냐?”라고 소리를 질러서 정말 놀랐어요. 제 눈에야 예쁘지만 그래도 밖에 나가서 혹여라도 흠잡히는 일이 없도록 미리 주의를 준 것 뿐인데 말이죠. 어릴 때는 공부도 시키는 대로 잘 따라오더니 중학생이 되고는 제가 공부 이야기 밖에 안 한다고 불만을 쏟아내는데 저는 그저 기본만 잘 하라고 강조했던터라 답답합니다. 이러다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될까 걱정입니다.

(사연자: 박선정(가명) 교사)

 

선생님의 사연을 읽으며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도 자녀를 잘 키우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해오신 선생님 입장에서는 정작 자녀가 중학생이 되니 갈등이 심해지는 상황에 많이 당황스럽고 속도 상하실 것 같습니다.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일반적인 부모님들께서 자녀를 양육하실 때 막연한 기준을 염두에 두고 자녀에게 잘할 것을 기대한다면, 교사인 부모님들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실 속 아이들의 ‘평균적인’ 수행 수준을 알고 계시다 보니 내가 자녀에게 기대하는 것이 많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선생님의 사연에서도 보면 특별히 높은 기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지만 ‘기본만큼은 해야한다’, ‘적어도 저런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말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자녀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거나 통제를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 다 맘에 안드냐?”는 말은 단순한 사춘기의 짜증이라기 보다 오랜 시간 마음속에 쌓아온 의문일 수 있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늘 부족한 사람인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 말이죠. 아이가 어릴 때부터 미리 행동거지를 고쳐주려고 하셨다는 말씀과 밖에 나가서 혹여라도 흠 잡히는 일이 없도록 미리 주의를 주었다는 말씀 속에서 아이는 엄마에게서 인정받는 말보다는 늘 무언가를 더 고쳐야 한다거나 지금의 상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수 있습니다.

 

아동기는 관계지향적 시기

아이가 어릴 때 부모님을 잘 따랐던 이유는 자신의 주 양육자이자 태어나서 처음 만난 존재인 엄마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본능적인 욕구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동기의 뇌는 기본적으로 관계지향적입니다. 진화적으로 인간은 생존을 위해 타인과의 관계를 잘 맺어야 했고 특히 아동기는 주 양육자와의 애착(attachment) 관계 안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이 시기 부모의 표정, 말투, 반응을 민감하게 읽고 이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조정합니다. 즉, 부모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내 행동에 어떤 피드백을 주는지가 아이의 신경망과 정서조절 체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런 관계적 피드백은 단순히 성격형성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발달과도 밀접하게 연결이 됩니다.

 

충동조절, 인지적 유연성, 감정조절, 자기통제력을 담당하는 뇌의 핵심 영역인 전전두엽은 안정된 관계 속에서 긍정적 피드백을 받으며 성장할 때 발달이 촉진되지만, 지속적으로 긴장, 통제, 평가 속에 놓이면 불안, 회피, 혹은 반항을 보일 수 있습니다. 즉, 아이가 어릴 때 선생님의 지시와 요구를 잘 따랐던 것은 본능적으로 ‘안전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태어나서 처음 만난 엄마를 만족시키고 엄마에게서 인정을 받는 것은 아이에게 중요한 일이니까요.

 

감정표현이 폭발하는 사춘기

사춘기에 접어들면 아이들의 뇌는 두 번째 폭발적인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뇌는 전전두엽 피질과 변연계(limbic system)간의 재조정이 활발히 이루어지는데 특히 정서와 충동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성숙하는 속도가 전전두엽 피질보다 앞서기 때문에 이 시기 아이들은 감정적인 반응을 크게 보이고, 충동적이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늘어나게 됩니다. 동시에 정체성 탐색과 심리적 독립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면서 부모와 심리적 거리를 확보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자 하는 욕구가 증가하게 됩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아이의 이런 변화가 지시에 대한 반항이나 이전과 다른 낯선 모습으로 여겨져 걱정도 되고 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오히려 건강한 것으로 봅니다. 잘 발달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 주신 사연을 보면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오셨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때로 관계란 불편함과 갈등을 경험하고 실수를 하며 그 과정을 잘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더 단단해지고 개인을 성장시키기도 합니다.

 

짧은 사연글에 다 담지 못한 선생님의 노력과 일상 속 경험들이 훨씬 많겠지만 그래도 조심스레 조언을 드려봅니다. ‘어떻게 하면 아무런 흠결없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것인가?’가 아닌 ‘우리 아이가 나와 건강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잘 살아나갈 수 있게 도와줄 것인가?’라는 목표를 세워보시면 어떨까요?

 

아이의 모습 그대로를 봐야

높은 기준을 세우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지만, 학교에서 오랜 시간 아이들을 만나면서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이 하지 말아야 할 행동, 혹은 보였으면 좋은 행동,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지’ 등과 같은 무의식적인 기준점 때문에 어쩌면 스스로도 모르게 모든 면에서 부족함 없는 아이로 키우려고 많은 것을 요구했을 수 있습니다. 공부나 성적, 친구 관계와 같은 주제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질문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에게 그동안 어떤 방식의 칭찬과 피드백을 줬는지 점검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마도 지금까지는 행동 수정을 위한 조건형 칭찬이 주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잘했어, 그런데 다음엔 이렇게 하면 더 좋겠다” 내지는 잘한 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이 고쳐야 할 부분에 대한 피드백만 주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평가와 조건이 없는 인정, 존재 자체에 대한 칭찬과 피드백을 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엄마는 너가 그냥 좋아”와 같은 말들 말이죠. 어쩌면 그동안 사랑을 많이 표현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붙는 말들과 사랑을 표현하면 아이 입장에서는 내가 그 조건을 충족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쏟으신 관심과 애정을 이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전달해 보면 어떨까요? 중학교에서 많은 제자를 만나오면서 선생님 마음 안에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고 있던 불안을 잠시 내려놓고, 중요한 발달 시기에 놓인 아이와 새로운 관계 맺기를 해보실 때입니다. 자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되, 자녀의 실수를 미리 고쳐주기보다는 실수한 자녀가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옆에서 함께 있어 주는 그런 엄마 말이죠.

조아라 이온심리상담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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