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의실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사회생활을 하다가 다시 배움의 길로 들어선 성인 학생과 외국인 학생들이 대학의 새로운 구성원이 되고 있다. 내가 맡았던 강의실도 절반가량은 사회생활을 경험한 학생들이었다. 자녀가 결혼할 나이가 된 학생도 여럿 있었다. 자녀의 결혼을 축하하는 떡을 가져와 함께 나누는 날이면, 강의실에는 수업 이야기와 더불어 살아온 날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을 다시 책상 앞에 앉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가정과 일터에서 이미 많은 역할을 감당해 온 이들이 낯선 전공 용어를 익히고, 과제를 준비하고, 시험을 치르는 수고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은 인간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애정과 소속 욕구, 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로 설명한다. 그 가운데 자아실현은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펼쳐 가려는 욕구이다. 배움으로 하나를 이루면 다음 가능성이 보이고, 어제보다 성장한 자신을 만나면 또 다른 도전을 꿈꾸게 된다. 내게 성인 학생들의 학구열은 이러한 성장의 욕구가 삶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해가 일찍 저무는 겨울날의 수업이었다. 창밖에는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고, 온종일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지치고 허기도 느낄 시간이었다. 과제를 발표하던 한 학생이 갑자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숨을 고르던 학생은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수 있게 된 자신이 대견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 마음은 잔잔한 파도처럼 교실에 번졌다. 함께 듣던 학생들도 눈물을 찍어 내고 있었다. 각자가 견뎌 온 역경들과 다시 공부를 시작하며 느꼈던 두려움이 그 눈물에 포개졌을 것이다. 그날의 발표는 과제를 평가하는 시간을 넘어,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고 자존감이 자라고, 그 성장을 함께 기뻐하는 순간을 만나 서로의 수고를 알아주는 시간이 되었다.
학생들의 배움은 강의실 밖에서도 이어졌다. 재학 중 결혼하고 출산해 아이를 돌보면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는 학생이 있었다. 임신중독증으로 고생하면서 공부를 이어 가던 학생도, 육아를 하면서 한번씩 영유아 어린이가 동행하기도 하여 이밴트가 연출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야간에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들,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운영자도 있었고 다른 과목을 전공한 박사 수료 학부생도, 중등학교에서 다른과 교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다시 시작한 학부생도 있었다. 또 음악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한 첼리스트도 있었고 피아노를 잘치는학생도 있어 나이팅게일 선서식에 축하무대로 연주하여 감성공간으로 만들어가기도 했던 다학제적 재능으로 갖추어진 학생들이었다.
출석부의 이름 하나 하나에는 지금 공부하고 있는 전공 외에도 저마다의 또 다른 달란트가 숨겨져 있었다. 그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마음을 나누는 일은 잊지 않았다. 삶은 달걀을 자주 가져와 함께 먹자고 건네는 큰언니역 학생이 있었고, 산마루에 집을 지어 자연 속에 살면서 꼭 교수님을 모시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다. 그 정겨운 말과 손길 덕분에 강의실은 서로의 안부를 살피고 힘을 보태는 자리가 되었다.
이제 국가고시까지 석 달 남짓이다. 긴 학업의 길을 걸어온 학생들에게 마지막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국가고시를 치르고 취업이라는 또 하나의 관문을 지나면, 오랫동안 꿈꾸던 자리에서 전문인으로 일할 기회를 맞게 될 것이다. 물론 그 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남은 시간에도 꾸준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까지 걸어온 과정은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나는 그들의 배움을 산에 오르는 일에 비유해 본다.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면 잠시 숨을 고르고, 힘을 회복하고, 다음 길을 준비할 베이스캠프가 필요하다. 학생들에게는 가족의 지지, 형제자매처럼 끈끈한 동료의 우정, 그리고 사제 간의 신뢰가 그러한 베이스캠프였다. 지칠 때 붙잡아 주는 손길과 “함께 가자”는 말이 있었기에 다시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교사란 학생이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차리도록 돕고, 작은 성취를 다음 도전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일이다. 때로는 설명 한 번보다 믿어 주는 눈빛이, 평가 한 줄보다 수고를 알아주는 말이 학생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무엇보다 여기까지 온 힘은 학생들 자신에게 있다.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 자기 삶을 새롭게 가꾸고 싶다는 의지, 어려움 속에서도 학업을 이어 온 꾸준함이 오늘의 그들을 만들었다. 주변의 응원은 그 힘이 꺼지지 않도록 함께 지켜 준 것이다.
배움에는 정해진 시기가 없다. 살아온 시간은 늦게 시작한 공부의 걸림돌이 아니라, 배운 것을 깊이 이해하고 타인의 삶을 헤아리게 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젊은 날의 꿈을 되찾는 공부이고, 누군가에게는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여는 공부이다.
국가고시를 앞두고 오늘도 책상 앞을 지키는 여러분을 응원한다. 지금까지 견뎌 온 날들과 함께 나눈 마음을 믿고 남은 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다. 마침내 바라던 고지에 올라, 면허증과 함께 전문가로서의 따뜻한 돌봄의 에너지로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