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수업⑫] 질문수업의 시작은 다시 ‘읽기’

2026.10.08 14:07:25

"영 점 일은 영 점 영일의 10배다." 수학 시간에 아이가 교과서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다. 입으로는 '영 점 일'이라고 말하지만, 머릿속에는 이미 '0.1'이라는 숫자가 그림처럼 새겨진다. 소리와 문자와 이미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글자만 읽는 일이 아니다. 문자를 읽고, 수식을 읽고, 그 너머의 이미지를 읽어 내는 종합적인 사고 활동이다.

 

문학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장면을 떠올린다. 주인공의 얼굴, 골목의 냄새, 바람 부는 들판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그 상상의 나래는 때로 세상의 어떤 기술로도 구현할 수 없을 만큼 넓어진다.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실망하곤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스크린 속 장면이 내가 그려 낸 장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책을 읽은 독자가 백 명이라면, 그 머릿속에는 백 개의 서로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그 차이는 저마다 살아온 경험과 기억이 글과 만나 빚어낸 것이기에, 어느 하나도 틀린 장면이 아니다.

 

영상은 이미 완성된 이미지를 건네지만, 글은 재료만 건넨다. 그 재료로 장면을 짓는 일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심리학자 파이비오(A. Paivio)의 이중부호화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정보를 언어와 이미지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함께 저장할 때 더 잘 이해하고 오래 기억한다. 읽기는 언어를 이미지로 바꾸는 가장 활발한 두뇌 활동이다. 모든 정보가 영상으로 쏟아지는 시대에, 스스로 장면을 구성하는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자산이다.

 

상상력을 채우는 연습

 

눈으로만 읽을 때보다 소리 내어 읽을 때 머릿속 장면은 더 선명해진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 다시 듣는 세 겹의 경험이 겹치기 때문이다. 캐나다 워털루대학의 매클라우드(C. MacLeod) 연구팀은 소리 내어 읽은 단어가 눈으로만 읽은 단어보다 더 잘 기억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이를 '산출 효과'라 불렀다. 특히 자기 목소리로 직접 읽을 때 그 효과가 가장 컸다. 소리 내어 읽기는 저학년의 전유물이 아니다. 수식을 소리 내어 읽으면 기호가 뜻을 가진 문장이 되고,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 글자에 숨어 있던 리듬과 감정이 살아난다. 소리는 문자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소리 내어 읽고 장면을 떠올렸다면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갈 차례다. 바로 질문을 더하는 것이다. "영 점 일은 영 점 영일의 10배다"를 읽은 아이에게 묻는다. "왜 10배일까? 0.1과 0.01은 네 머릿속에서 어떻게 다르게 보이니?" 이 질문 하나가 숫자를 외우는 공부를 자릿값의 원리를 깨닫는 공부로 바꾸어 놓는다. 소설 한 장면을 읽은 아이에게도 묻는다. "무엇이 보였니? 친구가 떠올린 장면과 어떻게 다르니? 작가는 왜 이 장면을 넣었을까?”

 

질문은 떠올린 이미지를 붙잡아 생각으로 바꾼다. 막연하던 상상이 질문을 만나면 이해가 되고, 친구의 상상과 비교되면 대화가 된다. 아이는 글을 읽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과 대화하는 사람이 된다. 읽기가 상상을 채운다면, 질문은 그 상상을 배움으로 바꾼다.

 

교실에서 활용 가능 전략짜기

 

첫째, 짝과 번갈아 소리 내어 읽고 함께 질문 만들기다. 짝과 한 문장씩 번갈아 가며 소리 내어 읽고, 한 문단이 끝나면 함께 질문을 만든다. 질문은 소리 내어 읽은 글을 머릿속에 다시 생생하게 살려 낸다. 더불어 짝과 함께하니 재미가 더해진다.

둘째, 읽고 눈 감고 떠올리기다. 짧은 장면을 소리 내어 읽은 뒤 10초 동안 눈을 감고 장면을 그려 보게 한다. 그리고 "무엇이 보였니?"를 나눈다. 같은 글에서 저마다 다른 장면이 나온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놀라고, 그 놀라움이 새로운 질문이 된다.

셋째, 수학 문장 소리 내어 읽기다. 식과 문장제를 소리 내어 읽고 "이 식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묻는다. 수학도 읽는 언어라는 것을 아이들이 몸으로 알게 된다.

 

인공지능이 무엇이든 즉석에서 영상으로 만들어 주는 시대다. 그러나 아이 머릿속에서 자생적으로 장면이 자라나는 내면의 경험은 어떤 기술도 대신할 수 없다. 소리 내어 읽고, 마음으로 떠올리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교실. 질문수업의 진정한 출발점은 바로 그 소박하고도 강력한 '읽기'의 본질에 있다.

양경윤

창원한들초 수석교사

'질문수업 어떻게

시작할까' 저자

양경윤 경남 창원한들초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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