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1·2학년 30분’ 등 소요 시간 명시
학생 개별 수준에 맞춰 분량 조절해야
“우리 아이는 어제 수학 숙제를 40분 넘게 하고 있더라고요.”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첫 학부모회의에서 들은 말이다. 한 학부모가 “아이가 긴 시간 숙제 때문에 책상에 앉아 있다”며 운을 떼자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다른 학부모도 “우리 아이도 오늘 독일어 숙제를 1시간이나 했다”고 말하며 동조했다. 이 날 학부모들은 숙제를 너무 많이 내준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담임교사에게 그 이유를 따져 물었다.
사실 ‘숙제’는 초등학교와 김나지움 저학년 때 학부모회의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숙제가 너무 많다는 말이 자주 나오고, 불만과 문제제기가 이어지지만 결국 개인차로 귀결된다. 소요 시간은 숙제의 많고 적음 이전에 개인차가 많기 때문에 답이 있는 토론은 아니다. 매번 ‘그 학년에 맞는 적절한 숙제를 내주고 있다’는 담임교사의 의중을 확인하는 정도에서 끝이 난다.
교사 입장에서도 언제나 정확하게 아이들에게 숙제를 부과하고 있다. 초등학교 1,2학년이라면 평균 30분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분량과 난이도의 숙제를 내준다. 시간이 더 걸린다면 오히려 아이가 숙제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주의를 기울여 보라고 부모들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이처럼 독일 학부모들이 숙제의 양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교사도 적정량의 숙제를 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숙제가 학생들의 휴식권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학원을 간다거나 과외를 받을 일이 없는 독일 학생들에게는 숙제가 방과 후 공부의 전부인 경우가 많아 숙제의 양이 휴식에 직결되는 것이다. 법령에서도 교사가 임의로 과중한 숙제를 부과할 수 없도록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
노드라인베스트팔렌 주 학교법은 “숙제는 개별 학생의 수준에 적절해야 하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숙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내야하며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은 금지한다”고 규정돼 있다. 성인들의 주말근무도 엄격히 제한하는 독일의 ‘휴식권’에 대한 개념이 학생들에게도 적용된 것이다.
분량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초등학교 1, 2학년은 30분, 3, 4학년은 40분, 5, 6학년은 90분, 7~10학년은 1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분량이어야 한다”며 “적절한 숙제의 양을 위해 담임교사는 담당교사와 의견을 교환하며 조절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학부모들은 이런 법규를 근거로 과중한 숙제가 아이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문제 삼는 것이다. 결국 개인차가 있을 뿐 교사가 학년에 맞는 적당한 양의 숙제를 내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의제기가 계속되는 이유는 “숙제는 ‘개별 학생’의 수준에 적절해야 하며”라는 학교법의 문구 때문이다.
법대로라면 교사는 개별 학생의 능력에 맞는 숙제를 차별화해서 부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에서도 한 사람의 교사가 30명 가까이 되는 학생을 통솔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은 보통 아이들의 수준을 하향평준화해서 숙제의 수준과 분량을 조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