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수학 공부

2005.11.05 21:05:00


"야호, 9개다!"
"서효야, 아홉 개가 쓰러졌으면 남은 것 몇 개지?"
"예, 선생님. 한 개입니다."
"그럼 합하면 몇 개일까?
"예, 선생님. 열 개입니다."
"옳지. 그 다음엔 누구 차례니?"

볼링 핀을 쓰러뜨린 서효의 즐거운 목소리가 조용한 학교를 뒤흔듭니다. '10을 가르기와 모으기'를 공부하는 1학년 아이들의 수학 시간입니다. 재미있는 놀이로 수학을 즐겁게 배우게 하려고 도입된 수학 교육과정. 아직도 구체물이 없으면 얼른 답을 구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으니 되도록이면 놀이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 주어 수학에 대한 거부감을 덜어 주고 싶었습니다.

산골 분교이다 보니 학습 준비물을 대부분 학교에서 구입하는 것에 의지합니다. 아이들에게 학습 준비물을 예고하여 준비하는 것은 재활용품 정도이니, 자료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저학년일수록 구체물이 있어야 이해가 빠르기 때문에 자료 없는 수업은 곧 학습 결손으로 이어집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겐 공부란 재미있다는 잠재의식이 뿌리내리게 하는 일이 글자 하나를 익히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성취의 기쁨을 느끼고 자기와 다른 친구들의 생각을 받아들여 가며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가는 기쁨을 누리게 하는 일이 교육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학년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자료를 주지 않고 생각하기를 강요하는 일만큼 무모한 일은 없답니다. 발달 단계를 넘는 문제를 주입식으로 가르쳐서 앵무새처럼 외우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 한 자리수의 덧셈도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구구단을 외우게 하는 어른들을 보면 답답합니다. 입으로는 줄줄 외울지 몰라도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공부하기를 좋아합니다. 놀이 속에 은연 중에 알아야 할 내용을 끼어 넣어서 '앎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먹기 싫어하는 양파를 모양이 보이지 않게 갈아서 요리해 먹이는 것처럼.

교과서에 나온 볼링 놀이를 우리 분교의 실정에 맞게 아이디어를 짜냈습니다. 재활용품으로 모아놓은 요구르트 빈병은 볼링 핀으로, 탁구공은 볼링 공으로 대체하니 그럴 듯한 놀이가 됩니다.

빈 요구르트 병 10개를 세워놓고 탁구공을 같은 거리에서 손가락으로 튕겨서 넘어뜨린 개수와 쓰러뜨린 개수를 합하면 열이 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수학 공부도 하고 시합을 붙여서 놀이를 하니 참 즐거워합니다.

두 편으로 나누어 게임을 하면 더 즐겁겠지요? 아이들의 즐거운 생활 공부로도 훌륭한 자료가 됩니다. 입으로 불게 하면 폐활량도 커지게 됩니다. 2학년 공부를 마친 나라도 함께 어울리며 좋아합니다. 작년에도 혼자 1학년이었으니 여럿이 어울리는 놀이를 많이 못 해본 나라입니다. 아팠던 진우까지 나와서 한결 즐거워진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를 들으니 제 웃음소리가 더 큽니다.

수학을 놀이처럼 배우며 수 개념을 체득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놀이를 하며 공부하는 일이 통합교육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자라게 하는 공부, 차례를 기다리며 상대편의 승리도 축하해 줄 수 있는 아량까지 배운다면 도덕 시간이 되니까요.

수 개념을 익히게 하는 시간의 양만큼 아이들에게 형성되는 개념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짐을 생각하며 내 눈에는 온갖 사물이 학습자료로 보이곤 합니다. 버릴 게 없다는 말이 더 옳습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잡동사니 쓰레기일지 몰라도 잘 들여다보면 학습 자료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으니까요.

이제 돌이켜 보니 내 자신이 왜 그렇게 수학을 힘들어했는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시절에 초등학교를 다니며 교실에 있는 거라곤 칠판과 분필이었고 그나마 교실조차 부족해서 오전 반, 오후 반으로 나누어 학교에 갔고 한 학급에 50명씩 공부하는 교실에는 내 책상조차 부족했던 60년대의 교실.

읽고 쓰고 받아쓰기 하는 일이 반복되던 가난한 교실에서 분필 하나에 의지해서 목이 아프게 가르쳤을 은사님들의 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복사기는커녕 종이도 귀한 시절이니 칠판에 가득 시험문제를 써 놓고 그걸 베껴 날마다 시험을 보느라 가운데 손가락은 군살까지 생겼던 시절.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가르쳐 주신 선생님 덕분에 공부하는 일이, 책을 보는 일이 즐겁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새 책으로 공부해 본 기억은 단 한 번도 없고 실험을 해 본 기억조차 없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해야 한다고 여겼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다달이 내는 납부금을 제 때에 한 번도 못 내서 늘 가난한 부모님을 아프게 했던 그 때였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학교에만 오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알림장에 준비물을 사 오라고 쓰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학생 수가 적으니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큽니다. 똑같은 크기의 교실에서 30~40명이 공부한다면 아이들의 사물함도 제대로 놓을 공간이 없는데, 우리 아이들은 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여유있게 살아갑니다.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최신형 컴퓨터와 피아노, 바이올린을 비롯하여 자잘한 학습 용구까지 늘 갖추어진 교실에서 자신의 그림이 몇 장씩 붙어 있는 자랑판을 보며 자신감을 키워가는 시골 학교의 장점.

값비싼 학습 자료 대신 재활용품을 이용한 학습 자료로 학습 효과를 얻고 성취동기를 불어넣으며 놀이처럼 즐거운 수학의 원리를 몸으로 배우는 동안 즐거워하던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오늘 일기를 적습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