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하늘말라리처럼 살아보련?"

2005.12.18 09:05:00


"다른 나리꽃들은 땅을 보면서 피는데 하늘말나리는 하늘을 보면서 피어. 소희 너를 닮았어."

일곱 살에 어머니를 잃은 소년 바우,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시골로 내려온 도시 소녀 미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개가를 한 어머니 대신 할머니 손에서 자란 소희라는 세 아이의 성장기를 다룬 장편 동화 '너도 하늘말라리야'는 청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장편동화입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부모 세대도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춘기를 지나는 청소년이라면 당연히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책입니다. 마치 옆집에 사는 아이의 이야기를, 마음 아프게 살아가는 이웃집 아저씨 이야기를,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 사촌 아주머니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호흡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소희의 아픔이, 바우의 말하지 않는 행동이, 미르의 반힝이 그대로 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교실에서 손을 들고 발표를 해 본적 없는 유년, 고개를 숙이고 말을 잊고 살았던 10대의 나날들, 가슴 속에 응얼이진 까닭모를 울분을 눈물로 삭이던 청소년기의 방황이 그림처럼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 아이들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한 낯설지 않은 풍경이 거울처럼 보이는 이 작품을 보며 경제적으로 풍요해졌다고 자부하는 이 시대에도 가정의 아픔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 아픔은 결국 어버이의 몫이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늘말나리처럼 눈물을 삼키고 혼자 설 수 있도록 이겨내는 것은 결국 아이들 자신이라는 것을 아프게 그리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원만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배부른 투정을 부릴 아이들은 자신의 행복한 조건에 감사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아픔을 지닌 채 그렇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가정결손이라는 아픈 상처를 지닌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책 속의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자신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울고 견디며 성장통의 터널을 빠져나오는데 좋은 친구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인생의 진정한 믜미가 무엇인지 돌아보며 앞만 보고 달려가는 부모님들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성장해 가는지 보여주는 작가와 눈높이를 함께 하고서 한 번쯤 자녀들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때문입니다.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위만 바라보고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현실,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여 보다 더 높이, 남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에 가치를 두는 세상이 되어버린 오늘 우리들의 단면이 그대로 찍혀있습니다.

어느 한 대목도 화사하게 웃을 수 없게 만들며 긴 호흡이 필요한 책이라서 아이들이 읽고 재미있다고는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책입니다. 다른 사람의 체험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아픔을 공유함으로써 느끼는 위안도 있고 내가 가진 행복의 조건을 감사할 줄 알게 하면서도 아픔을 가진 친구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비밀스런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쯤이면, 아이들은 몇 년쯤 일찍 성숙해 있음을 발견하리라 믿습니다.

사람들은 기쁨보다 슬픔을 통해서 더 아름답게 정화되어 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 책은 선물합니다. 몸은 땅에 뿌리내리면서도 정신과 의지만은 하늘을 우러르며 열심히 살아가는 소희의 모습을 하늘말라리로 설정해 놓고 결국에는 모든 아이들이 소희처럼 아픔 속에서도 자신만의 향기를 피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가의 빼어난 심리묘사에 탄복을 하게 됩니다.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까지 추가한다면 우리 나라 산천에 피는 들꽃들이 아무데서나 등장하여 신선한 앎의 기쁨까지 얻는 시골 풍경도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특히 왕자나 공주를 배경으로 하거나 급격한 반전, 환타지, 몽상적인 서양 동화의 번역물에 익숙한 청소년들이라면 끝까지 읽어내는 데 힘들어 합니다. 어른들의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세밀한 심리묘사와 구성의 탄탄함은 우리 나라 창작동화가 열어가야 할 본보기로서도 매우 훌륭한 작품입니다.

더구나 빠른 경제발전과 믈질 중심의 뒤안길에 버리고 온 가치관들을 하나하나 다시 주워 담기 위해 돌아가는 시간이 달려온 시간의 몇 배가 걸릴 지 모르는 우리 사회의 아픈 상처들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요즈음.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가 '가정'이라는 설정, 사춘기 소녀의 내밀한 심리묘사와 변화를 겪는 정신 세계를 다룬 성장소설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일부 내용이 초등 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행간을 읽어내는 훈련을 하게 하는 문학 작품의 기본에 충실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시골 학교이건 도시 아이들이건 간에 가정결손과 가족해체의 위기를 겪는 모습이 날마다 지면을 장식하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상처를 숨기지 않고 바깥 세상으로 드러내며 아파하는 제자들과 자식들의 눈물을 바라보게 만든 작가 이금이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한번 '동화는 문학의 전형'임을 느끼며 선생님과 부모님,아이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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