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아니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2006.03.21 10:40:00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도 1학년 담임교사입니다. 지난 번 아이들도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보다 몇 배는 악동이로군요. 올해 아이들이 말띠라서 그런지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저를 '용용 죽겠지'하며 놀리는 것만 같습니다.

지난 3월 1일. 다음날 입학식 때 만날 아이들의 이름과 번호를 외우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제가 입학하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가슴이 설레고 괜스레 마음이 부풀어 올라 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올해는 아이들과 어떤 추억을 어떻게 만들어볼까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보았습니다.

요즘의 고 1학생은 철부지 어린아이 같습니다. 조선시대 같으면 장가를 갔을 나이이고, 일제시대라면 독립운동을 할 나이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서 그런지 천방지축, 제멋대로입니다. 운동선수로 치면 기본기가 되어 있지 않다고나 할까요?

수업시간에 자연스럽게 떠드는 것은 예사이고(떠드는 것을 지적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는 아이도 있습니다. 중학교 때는 지적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느냐는 듯이), 마음대로 물을 마시거나 말없이 화장실에 다녀오기도 하고, 수업준비나 자세도 부족하고, 중학교 때의 앨범을 학교에 가져와 둘러서서 보며 킥킥거리고, 청소할 줄도 모르고(시늉만 하거나 내가 교실에 있으면 복도에서 서성거리고 복도로 나가면 교실 가서 수다 떨고)….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방치한 것은 아닐 텐데, 어째서 해가 갈수록 아이들은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어느 분야에서 십년을 일하면 보통 '문리가 난다'고들 하지요. 속된 말로 '잔뼈가 굵었다'고도 하고, '이력이 난다, 도통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표현도 쓰지요. 그런데 왜 교육 현장은 해가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점점 힘들어지는 것일까요?

솔직히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적응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요즘 아이들의 변화 속도는 빠르답니다. 요즘 아이들의 눈높이를 따라 맞추려면 현기증이 다 날 지경입니다.

등교 및 하교 시간, 수업시간, 성적 산출 방법, 교칙, 규칙 등…. 입학하자마자, 중학교 생활과 다른 점을 설명하고, 학교 내 건물 위치 및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안내와 설명을 일일이 하느라 입이 아팠습니다.

거기에 고교 1학년 담임교사는 사진, 환경조사서, 자기소개서, 건강기록부, 진로상담기록부, 주민등록등본…. 걷는 것과 새로 작성해야 하는 것, 입력해야 하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하루하루가 갑니다. 그나마 아이들이 제출물을 제때 내주어야 하는데, 꼭 몇몇이 늦게 내는 바람에 일을 매듭짓지 못하고 책상 위에는 서류가 쌓여 갑니다.

입학 후 다음날인가요? 1번에서 10번까지 청소 당번을 정해주고 청소 후 검사를 맡으러 오라고 했습니다. 학부모 한 분이 오셨기에 면담 중이었는데, 청소 다했다며 왔기에, 면담을 끝내고 교실로 올라가 보았더니 책상 위의 의자도 내려놓지 않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다행히 한 명이 남아 있어 그 학생과 함께 둘이서 의자를 내리며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이번 주, 교실 청소와 환경미화를 하자고 했더니, 나가서 저녁 먹고 축구하다가 늦게 돌아오는 아이들, 시간표 하나 만드는데 3일 이상이 걸리는 아이들(할 줄 모르는 것인지, 성의가 없는 것인지), 쉬는 시간이나 자율학습 시간에는 이어폰 꽂고 음악 듣느라 바쁘고, 열심히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내거나 게임에 열중인 아이들, 보름을 이 아이들과 보내면서 덜컥 겁이 납니다. 이런 아이들과 어떻게 일년을 보낼 수 있을까?

나도 너희들이 만난 선생님 가운데 가장 좋은 선생님이 되려 노력할 테니 너희들도 좋은 학생이 되도록 노력해다오. 인간적으로 호소해보고, 일일이 면담하며 잘해보자고 약속까지 받았는데, 아직 학기초인데, 긴장감으로 팽팽할 3월 초가 올해는 수학여행 다녀온 후 분위기 같다고 선생님들이 말합니다.

기대가 커서 실망이 컸을까요? 진심을 몰라주는 아이들을 보니 갑자기 기운이 빠지고 맥이 풀립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실의하고 좌절하고 사람 때문에 상처를 입고 힘들어합니다.

교사도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을 때, 아니 앞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갈 때 심한 상처를 받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아직 이 아이들은 미완성이니까, 지금부터 가꾸어 가야 하니까 어깨가 더욱 무거워집니다.

아이들과 줄다리기하는 3월이 빨리 갔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가도, 선생님 힘드시죠? 제가 뭐 도와 드릴 일 없을까요? 하면서 남는 날도 아닌데 늦게까지 남아서 묵묵히 도와주는 꽃보다 아름다운 몇몇 아이들이 있어서 그래도 힘을 얻습니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과 씨름, 아니 싸움 중입니다. 승패를 가르는 경기가 아니라 모두가 승리하는 선한 싸움이기에 젖 먹던 힘까지 내봅니다.
김형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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