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저는 아이들과 함께 곧잘 자전거를 타고 안양천에 갑니다. 보통 오목교에서 출발하여 안양천을 끼고 페달을 밟아 한강까지 달려갑니다.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선유도, 또는 여의도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곤 합니다.
운동 삼아 찾아간 안양천과 한강이었지만, 어떤 날은 거의 운동을 못하고 올 때가 있습니다. 오늘 같은 날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어쩌면 이번 주가 겨울철새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듯싶어 자꾸만 저도 모르게 자전거를 타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철새를 지켜보면서 상념에 잠깁니다. 저 철새들은 왜 이곳 안양천까지 찾아왔을까? 추운 겨울에, 그것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또한 서울에서도 수질이 가장 나쁘다는 안양천에… 알고 온 것일까요? 모르고 온 것일까요?
어쨌든 죽음의 하천이라 불리던 안양천에 철새가 날아왔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큼 안양천이 맑아졌다는 증거이니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섭니다. 아직도 맑고 푸르기보다는 탁하고 시커먼 안양천, 곳곳에서 폐수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이런 곳에서 겨울을 난 철새들이 과연 건강할까요? 혹시 몸 안에 중금속이 과다하게 축적된 것을 아닐까요? 무사히 고향에까지 날아갈 수는 있을까요?
자연은 언제나 우리의 교과서요, 큰 스승입니다. 겨울철새를 보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봄을 오게 한 주역이라고, 봄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한번쯤 큰소리 칠 만도 한데, 겨울이 지나자 미련없이 떠나가는 겨울철새의 삶을 보면서 우리 인간들이 한 수 배워야 할 듯합니다. 어떻게 하면 텃새의 삶도 아닌, 여름철새의 삶도 아닌 겨울철새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도 자꾸만 겨울철새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들은 겨울철새의 삶이 신기한 모양입니다. 먹을 것이 많은 따뜻한 계절을 놔두고 왜 하필 먹을 것도 별로 없고 춥기만 한 겨울에 찾아왔다가 이제야 추위도 물러서고 먹을거리도 풍성해질만해지자 다시 추운 곳으로 떠나는 겨울철새의 거룩한 삶을 누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겨울철새와 닮은 한 사람을 꼽으라면 충무공 이순신입니다. 임진왜란과 충무공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임금과 대신들은 백성들을 내버려둔 채 의주까지 도망을 갔습니다. 여차하면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까지 갔을 것입니다. 텃새와 여름철새와 같은 삶이지요.
그러나 충무공은 달랐습니다. 그는 정말 겨울철새와 같은 삶을 살다갔습니다. 혁혁한 공로로 민심까지 얻은 충무공이 마음만 먹었으면 임금도 폐하고 조정도 갈아 치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임진왜란이라는 춥고 기나긴 겨울이 지나자 미련 없이 떠났습니다. 충무공의 죽음을 놓고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의견이 분분하지만, 제 생각에는 임금과 조정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킨 충무공의 삶이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겨울철새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가 자꾸만 입안에서 맴돕니다. 그리고 한동안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이해찬 전 총리와 최연희 의원도 스쳐 지나갑니다.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유방백세(流芳百世)와 유취만년(遺臭萬年)"이라는 한자 성어를 마음에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겨울철새와 같은 이들이 우리 사회에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추워도 춥지 않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