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종례 시간 어떤 인사말 쓰세요?

2006.04.11 21:58:00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지도 한 달 반이 지나고 있습니다. 새 학기의 분주함도 어느 정도 가라앉고 학교에선 어느 새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분주합니다. 교정엔 화사한 벚꽃들이 아이들을 유혹해 점심시간이면 사진을 찍으며 학창시절의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는 모습이 예뻐 보입니다.

처음 아이들과 만나면 일 년 동안 학급운영과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하고 조회와 종례 때의 인사말을 정합니다. 인사말을 정한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나 몇 십 년 동안 무의식적으로 사용해온 인사말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존의 인사말,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를 버리고 새로운 인사말을 만들어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학급에서 쓰고자 하는 인사말을 이야기할 때의 아이들 반응이 참으로 묘합니다.

“앞으로 우리 반에서 쓸 인사말은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사랑합니다.’로 할까 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아이들의 표정을 살펴보자 ‘어, 저건 또 뭐야.’, ‘사랑은 뭘 사랑해.’, ‘그냥 하지 뭘 바꾸겠다는 거야.’ 등 다양합니다. 그러한 표정은 담임을 맡고 새로운(아이들이 평상시 쓰는 것이 아닌) 인사말을 정한다고 할 때 마다 나타나는 반응들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계속 말을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만 줄기차게 해왔다. 차렷, 경례는 일제의 잔재인데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고, 또 감사하는 마음도 없으면서 매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만 되뇌고 있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라 생각한다. 어때 너희들은 인사하면서 한 번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사한 적이 있니?”

그러자 아이들은 쑥덕거릴 뿐 아무 말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말을 하게 된 이유를 간단히 설명을 하자 아이들은 처음보다 좀 진지해지는 표정을 짓습니다.

“선생님이 너희에게 ‘사랑합니다.’ 인사를 하라고 하는 것은 선생님에게 하라는 말도 아니고, 선생님을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야. 너희들 자신을 사랑하라는 소리이지. 그리고 친구들에게 하라는 소리야.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살까? 일 년에 스무 번, 오십 번? 우리는 늘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와 친구와 함께 생활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지. 왜 그럴까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한 번 들어 볼래?”
“네.”

아이들이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소리로 겨우 대답을 합니다.

“먼저 사랑한다는 말이 익숙지 않아서 그래. 가장 흔한 말이지만 가장 사용하기 어려운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야. 선생님도 사랑한다는 말이 익숙지 않아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못하는 경우가 있더라. 처음 쓰는 말은 어색하지만 자주 쓰다 보면 익숙해져서 자연스러워질 때가 있을 거야. 옷도 처음 입으면 어색할 때가 있잖아. 사랑한다는 말도 그럴 거야.”
“그래도. 쑥스럽잖아요.”
“물론 쑥스럽지. 야, 선생님도 너희들에게 매번 이런 이야기 할 때마다 쑥스럽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자고 하는 건 내 자신에게 하는 소리이기도 하단다. 나도 내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서지. 너희들은 너희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니?”

그러자 여기저기서 ‘아니오.’ ‘네.’ 하면서 웃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대부분 아이들은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생각도 안 해봤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들도 바쁜 생활에 찌들어 살다보면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살아갑니다. 이런저런 생활에 삶이 분주하다 보면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생각들을 잊고 지내기가 쉽기 때문이죠.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소리야.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할 때 남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지. 나도 마찬가지야. 사랑합니다를 자꾸 하다보면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가족도 너희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생기게 되 거든. 자 그럼 지금부터 연습 한 번 해보자.”

몇 몇 아이들에게 돌아가면서 “바르게 합시다. 인사합시다. 사랑합니다.”를 시켜보자 처음엔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습관의 무서움이죠. 처음 연습할 때의 인사말을 보면 “바르게...합시다. 경례. 감사합니다.”, “바르게 합시다. 인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등등 다양합니다. 아이들의 틀린 인사말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고 ‘사랑합니다.’라는 말의 어색함도 그 웃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물론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말은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그런 거야 1주일 지나면 사라집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우리 반은 ‘사랑합니다.’라는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립니다. 처음의 어색했던 말투나 쑥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끔 다른 반 아이들이 인사하는 소리를 듣고는 사랑합니다가 뭐야 하는 반응을 보이면 아이들은 웃으며 ‘야 뭐긴 뭐야. 우리 반 인사말이지.’ 하곤 ‘부럽지?’ 약을 올리기도 합니다.

말을 하다 보면 마음도 바뀌고 행동도 바뀐다고 합니다. ‘미워 미워’ 하면 미워지게 되고, ‘싫어 싫어’ 하게 되면 하는 일이 싫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좋아 좋아’ 하면 좋아하게 되고, ‘사랑해 사랑해’ 하고 말하게 되면 자신과 남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말을 통해 자신을, 그리고 나 아닌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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