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들이 펼치는 '4월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2006.04.14 22:25:00


봄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고궁과 공원으로 봄나들이 갔습니다. 초목들도 부활절을 알았다는 듯이 여기서 툭 저기서 툭, 마치 꽃이 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모처럼 나온 나들이에 아이들도 종달새처럼 입이 벌어져 다물 줄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저절로 봄노래가 됩니다.

누가 뭐래도 봄은 소생, 재생, 부활의 계절입니다. 죽은 것만 같은 나뭇가지에서 움이 돋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면,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마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작은 풀꽃들 또한 경이롭기 짝이 없습니다. 온갖 봄꽃들이 한껏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요즘은 마치 무슨 꽃잔치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봄꽃 중에는 유난히 흰색 계통이 많습니다. 백목련, 벚꽃, 배꽃, 사과꽃, 앵두꽃, 살구꽃, 복사꽃, 조팝나무, 은방울꽃, 너도바람꽃, 솜다리(에델바이스), 하얀민들레, 하얀제비꽃, 하얀팬지, 라일락, 난초, 아네모네, 오렌지….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듣자니, 벌과 나비는 흰색을 잘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럼 화려한 때때옷을 입은 다른 꽃들에 비해 흰색 옷을 차려입은 봄꽃들은 손해가 아닐까요?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흰색 꽃들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네요. 그것은 다름 아닌 향기…. 흰색 꽃들은 대부분 자기만의 특유한 향기로 벌 나비를 부른다네요.

외모의 화려함 대신 내면의 향기로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흰꽃, 그래서 그런지 자꾸만 흰색 꽃들에게 눈이 가고 마음이 갑니다. 사람도 화려한 외모보다는 내면의 향기를 머금은 사람에게 더 끌리듯이 말입니다.

흰꽃은 눈부시지 않아서 좋습니다. '은은한 아름다움, 소박한 아름다움'이 선남선녀 같고, 갑남을녀 같아 더 친근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화려한 색깔의 꽃들이 눈부신 햇빛이라면 흰옷을 입은 봄꽃들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빛이요, 달빛입니다. 그 ‘수줍은 웃음과 부끄러움의 미학’이 우리네 백의민족과 닮았습니다.

또한 흰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계절이 아직도 겨울인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합니다. 남산제비꽃은 탐스러운 한 떨기 눈송이 같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함박눈을 연상하게 하고, 돌단풍은 잔설을 닮았습니다.

지금은 봄의 절정입니다. 하얀 꽃눈이 곳곳에 소담스럽게 내려 마치 화이트 크리스마스 같은 느낌을 줍니다. 모두들 그렇게 손톱 끝에 꽃물들이고 첫눈 오기 소망한 소녀처럼 기다린 봄이라서 그럴까요? 봄꽃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도 성탄절 기분처럼 자꾸만 가슴이 울렁울렁거립니다. 한 떨기 꽃눈으로 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은 매화의 아름답고 슬픈 전설을 들려 드립니다.

옛날 옛날 어느 산골에 질그릇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던 청년 하나가 살고 있었답니다. 그 청년에게는 정혼을 약속한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으나, 혼례 사흘 전에 그만 그 처녀는 병으로 죽고 말았다네요.

청년의 슬픔과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답니다. 정혼녀의 무덤가에서 날마다 슬피 울던 청년은 무덤가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돋아나는 것을 보고, 이 매화나무가 죽은 정혼녀의 넋이라고 생각하여 자기 집으로 옮겨다 심고는, 이 꽃을 가꾸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고 합니다.

정혼녀가 죽은 후부터는 어쩐 일인지 같은 솜씨로 만드는 질그릇인데도 그 모양이 예전 같지 않다며 사람들이 사가지 않아 고생은 점점 심해졌답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청년은 백발이 되고, 매화나무에도 여러 번 꽃이 피고 지고 했답니다. "내가 죽으면 넌 누가 돌봐 줄까? 내가 없으면 네가 어떻게 될까?" 청년은 사랑했던 여인을 대하듯 말하며 몹시 슬퍼했답니다. 청년은 이제 늙어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손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동네사람들은 그 집 대문이 잠겨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무슨 곡절이 생기질 않았나 싶어 그 집으로 갔답니다. 그러나 방에는 아무도 없고 그가 앉았던 자리에 예쁘게 만들어진 질그릇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동네사람들이 그릇 뚜껑을 열자, 그 속에서 한 마리 새가 날아갔습니다.

휘파람새였습니다. 그가 죽어 휘파람새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휘파람새가 매화나무에 앉아 있는 그림은 이생에서 못다 이룬 사랑을 뜻한다고 하네요. 동시에 영원한 사랑을 소망하는 것이라고도 하고요.
김형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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