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밥 빨리 먹고 컴퓨터실에 가서 타자연습 하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마구 소리친다.
“선생님 오늘 점심시간에는 놀게 해주신다고 어제 약속 하셨잖아요."
“내일이 어린이 날인데 우리를 이렇게 혹사 시키다니 너무해요.”
“맞아요. 놀게 해주세요.”
“내가 그랬니? 깜빡 했구나.”
전교조가 조사한 내용에 의하면 서울지역 초등학생이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공부한다고 한다. 특히 강남지역 초등학생의 공부시간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는데 53%가 학원을 4개 이상 다니고 5군데 이상 다니는 어린이도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36%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대도시만 그런 게 아니다. 학원에 한두 군데만 다니는 시골 아이들도 거의 비슷하다.
우리 반 아이들도 정말 바쁘다. 수업시간에 하는 정규 교육과정공부 이외에 할일이 너무 많다. 한자공부를 해서 한자급수를 따야한다. 또 컴퓨터 공부도 해서 워드 급수도 따야 하는데 재량시간이나 실과시간에만 공부해서는 실력이 전혀 늘지 않으니 집에서나 쉬는 시간에 틈틈이 해야 한다. 영어도 일주일에 2시간 공부해서는 대도시 아이들을 따라 갈수 없으니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또 학교나 학원이 끝나고 집에서는 학교 숙제도 해야 하고 학원에서 내준 숙제도 해야 하고 일기도 써야한다. 심지어는 아이들이 공부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기도 한다. 야단을 치면 학원 숙제 안 해가면 혼나기 때문에 그런다고 했다. 숙제는 집에서 하는 것이라고 강조를 하면 집에서는 학교 숙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한다.
우리반 소희는 7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학교에서 1교시 수업 시간 전 8시부터 컴퓨터 특기적성 수업이 있기 때문에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출근하시는 아빠차를 얻어 타고 학교에 도착한다. 8시부터 컴퓨터 특기적성 수업을 8시 40분까지 하고 교실에 들어오면 학교방송으로 “발고 맑은 우리노래‘가 나오는데 듣고 따라 부르기를 한다.
잠시 후 1교시를 시작하는데 대부분 1,2교시 블럭 수업을 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따로 없고 화장실 가고 싶을 때는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갔다 온다. 12,교시 수업 마치고는 중간체육 시간이라서 강당에 모여야 한다. 3,4교시 수업을 마치고는 청소를 하고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자마자 컴퓨터를 하거나, 한자 공부를 해야 한다. 5,6교시까지 학교 수업을 마치면 선생님이 과제 점검을 하고 매일 한자 두자씩 외우기 시험을 본다.
학교 공부가 모두 끝나면 3시 30분. 교문에는 벌써부터 학원차가 대기하고 있다. 피아노 학원과 인재스쿨 등, 학원 2개를 돌아서 집에 오면 7시가 넘는다. 저녁을 먹고 눈높이 수학을 공부하고, 학원과제와 학교 과제를 하고 일기를 쓰면 10시가 훨씬 넘는다. 또 화요일과 목요일은 과학영재 교실에도 가야 하기 때문에 더 바쁘다. 다음주에는 한자급수 시험이 있어서 한자 공부도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학교 운동장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텅 비어 있다. 가끔 아이들이 놀기도 하는데 그것은 간혹 학원차를 기다리거나 데리러 오시는 부모님이 늦게 올 때 아이들이 잠시 철봉에 매달려 보거나 회전그네를 돌려 보는 거다.
오늘은 어린이날 전날이다. 학부모회에서 어린이들 선물을 가지고 학교를 방문 하셨다. 내가 준비한 선물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약소한 피자한판.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아이들 말대로 오늘 점심시간에는 놀게 해줘야겠다. 오늘은 운동장도 심심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