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사람들은 이 날을 '스승의 날'이라고 한다. 아니 사실은 이 나라의 학교가, 교사가 몸 잔뜩 움츠리고 세상의 말들에 귀동냥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입방아를 찧게 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 날은 학교에만 국한되지는 않은가 봅니다. 대부분의 유치원, 태권도학원, 심지어 일반 사설학원도 대부분 휴무일로 잡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날은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불편한 날'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아침 일찍 일어나 산행을 준비하는데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졸업한 아이들이 보내온 문자들입니다. 작년에 졸업한 아이들로부터 4, 5년 전에 졸업한 아이들까지 직장에 나가기 전에 문자를 보내온 것 같았습니다. 어떤 녀석은 새벽 1시에 보낸 녀석도 있고, 전화를 건 녀석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소식은 늘 반갑습니다. 아이들의 문자나 전화를 받을 때면 학교 다닐 적에 가장 밝은 모습의 얼굴들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그런 아이의 얼굴을 상상하면 즐거워집니다.
그렇다고 항상 좋은 소식만 듣는 건 아닙니다. "공부하기 힘들어요", "회사 일이 힘들어 그만둘까 망설이고 있어요" 등의 소식을 들으면 학교 밖의 상담자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자기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기쁘기 한량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도 난 참 기쁩니다. 스물 여명의 아이들에게서 아침 일찍 안부 인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 멀리 떨어져서 바쁘게 자기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잊지 않고 생각을 해주는 게 기쁩니다. 몇몇 아이들이 보낸 문자를 보면 보고 싶다는 마음과 자주 연락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이 내게 보낸 온 글(문자) 몇 개를 소개해 봅니다.
"선생님, 저 ○○에요. 저에게 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하구 평생 못 잊을 거예요. ㅠㅠ 언제 한 번 찾아뵐게요. 찾아가면 저 반갑게 맞이해 주셔야 해요. 알았죠?"
얼마 전에 학교를 자퇴한 아이에게서 새벽에 온 문자입니다. 1학년 때의 우리 반 아이였다가 2학년에 올라와선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자퇴서를 낸 아이입니다. 정이 참 많이 든 아이입니다.
"선생님 잘 계시죠? 찾아뵙고 인사 못 드려 죄송해요. 조만간 한 번 찾아뵐게요. 이쁜이가..."
학교 다닐 때 '이쁜이'라고 불렀던 아이가 보낸 글입니다. 지금은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아이입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죄송해요. 찾아뵈어야 하는데 요즘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그래도 조만간 찾아뵐게요. 감사하구요."
올 해 대학을 졸업하고 이름 있는 대기업에 한 달 전에 취업한 아이가 보내온 글입니다. 면접 보는 날 떨지 않게 기도해달라며 문자를 보내기도 한 아이인데, 합격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연락한다며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스승의 날인데도 찾아뵙지도 못하고 죄송해요. 곧 학교 한 번 갈게요. 저 가면 맛있는 거 사 주세요. 히히히. 고등학교 시절 너무 그리워요. 슬기가..."
졸업하고 취업을 나간 아이인데, 너무 힘들어 얼마 전에 생산직에서 사무직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지금은 무척 만족하고 있는 아이입니다. 공부는 잘 한 편은 아니었지만, 늘 맑고 밝은 미소를 항상 띠고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쁨을 주는 아이였지요.
“선생님 찾아뵙지 못해 죄송해요. 우리 쌤 건강하시고요. 싸랑해염. 형선"
1년 동안 재수하다 이번에 대학에 간 아이입니다. 볼이 통통해 복실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죠. 요즘 시험 기간이라며 공부하기 힘들다고 가끔 엄살 전화를 웃으며 하는 아이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문자들이 즐거운 아침을 만들어 줍니다. 문자 한 통과 전화 한 통이 오늘 산행 길에 즐거운 안내자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자 선물은 불법이 아니겠지요? 세상은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색깔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주변에 많은 티끌이 많음을 압니다. 저도 그 하나의 티끌이 될 수 있음을 알고요. 하지만 좀 더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려하는 모습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