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하자마자 책상에서 읽을 책을 들고 교실로 향합니다. 좀 이른 시간이라 아이들의 소란스런 목소리가 복도를 울립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은 무슨 할 말이 많은지 종일 종알대고 웃습니다. 가끔 듣기 거북한 소리도 들립니다. 저희들끼린 익숙한 표현이지만 좋은 말들은 아니어서 '이쁜 말 쓰면 더 이쁠텐데…'하며 지나가면 '죄송하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교실에 들어서니 책상 위에 앉아 있는 아이, 끼리끼리 모여 앉아 잡담을 나누고 아이 등 시끄럽습니다. 그런 모습은 다반사니 별 신경을 안 쓰는데 눈에 거슬리게 들어오는 풍경이 있습니다.
전날 외부기관에서 시험을 봤는데 아이들이 자신의 책상과 의자만 챙겨 앉아 있는 것입니다. 아직 등교하지 않은 아이들 책상은 교실 뒤쪽에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고, 그 아이의 책상이 놓일 자리는 텅 빈 채 오지 않은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 화가 납니다.
실장을 찾으니 아직 등교 전입니다. 그래서 부실장과 책상 위에 앉아 떠든 아이 몇 명을 불러 장구를 치는 열채로 손바닥 한 대씩을 때렸습니다. 반을 맡은 후 매를 든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매를 들자 아이들이 놀라는 표정입니다. 아이들을 정리시킨 후 한 마디 했습니다.
"학기 초에도 너희들에게 이야기 했듯이 선생님은 너희들이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지금 모습 보거라. 자기 책상만 가지고 와서 앉고 오지 않은 친구의 책상은 저렇게 내팽개쳐져 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아라. 너희들이 좀 늦게 등교했는데 너희 책상이 팽개쳐진 채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무거운 분위기에 눌려선지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몇 마디 더 하고 책을 폈습니다. 아이들도 주섬주섬 책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읽기 시작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자니 처음 담임을 맡고 나서 아이들을 때렸던 기억이 납니다.
오래 전의 이야기지만 난 아직도 그때의 마음을 잊지 못합니다. 3월 중순쯤 대학 입시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준비할 쯤 몇몇 아이들이 지각과 결과를 자주한 적이 있습니다. 몇 번 말로 타일러도 그때뿐 개선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먼지 털이개로 엉덩이 대여섯 대씩 때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을 때리다 말고 난 화장실로 내빼야 했습니다.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때리면서도 '내가 왜 이 아이들을 때려야 하지. 말로 할 수 있었는데…'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더니 결국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감정을 달래야 했습니다. 생각하면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때 아이들은 웃으며 맞았는데 선생이란 사람은 울컥했다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영 아귀가 맞지 않습니다.
그 뒤 아이들의 반응에 난 감동 아닌 감동을 받았습니다. 엉덩이 몇 대씩 맞았던 아이들이 교무실로 찾아와선 자기들 때리느라 어깨가 아팠을 거라나 하며 어깨를 주무르고, 음료수를 사 가지고 와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잘 할게요. 선생님 마음 푸세요" 위로를 하더니 급기야 짓궂은 한 녀석이 "에이, 선생님 울었죠? 우린 웃었는데… 어떻게 때리는 선생님이 울어요"하며 깔깔거리고 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그 아이들의 행동이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아무리 저희들을 때린 선생의 진정성을 알았다 해도 맞고 나선 그렇게 애교를 떨고 오히려 위로해주는 녀석들을 말입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매를 들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도 아이들에게 처음 만나 한 말이 "너희들에게 매를 대지 않겠다."입니다. 이렇게 말을 해놓으면 어떤 녀석은 그걸 이용하려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늘 그런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가끔 아이들은 매를 대서라도 잡아야 한다는 소리를 듣곤 합니다. 필요할 때도 있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매를 들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아주 단순한 것이지만 난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 아이들을 때리지 않습니다. 가끔 화를 내긴 하지만 말로 설득하고 설득합니다.
내가 내 아이들에게 매를 들지 않은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그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말로 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고 믿음이 없다면 여러 번 매를 들었을 겁니다. 내가 내 자식들은 사랑하고 믿어서 안 때리는데 남의 자식이라고 때린다는 게 어쩐지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불가피하게 매를 드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미리 약속을 한 경우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평소 내 생각 때문입니다. 힘에 의해 말을 듣는 것은 결국 자율적인 인간이 아니라 타율적인 인간을 만든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알아서 행동하는 사람만이 자율적인 인간이 되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평소 믿음 때문입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들이 벽에 부딪칠 때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지나고 나면 옳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오늘 손바닥 한 대씩 때렸지만 마음이 개운치 못합니다. 그건 10초만 더 생각하고 조용히 말로 했어도 해결되었을 문제인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출근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비는 게 있습니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게 하고,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을 미워하지 않게 해달고 빕니다. 미움 대신 사랑하는 맘을 달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