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전인교육이란 말이 우리 사회와 교육현장에 최고의 가치처럼 회자된 적이 있었다.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도 전인교육(全人敎育) 아니 전인(全人)이란 말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전인이란 말 대신에 이젠 경쟁과 평가란 말이 지고지순한 패러다임으로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인 보단 경쟁이란 말이 우리 의식을 지배하면서 학교 현장에서 예체능은 찬밥 신세가 되었다. 지.덕.체의 전인에서 지적 평가만이 최고의 덕목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예체능은 그저 구색 맞추기 과목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얼마 전, 체육시간이 없는 관계로 체육대회 준비를 할 시간이 없는 2.3학년 아이들에게 수업 시간을 이용해 연습시간을 주다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때 한 체육교사는 ‘체육도 하나의 교육입니다. 체육대회도 하나의 교육의 모습입니다. 체육교사도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하며 자조적인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체육도 하나의 교육이라고 이야기하는 그 체육교사의 자조적 고백 속엔 우리 교육 현장의 한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본다.
최근 정부와 일부 언론에선 학생 줄세우기도 모자라 학교 줄세우기, 교사 줄세우기, 이를 통한 지역 줄세우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 줄세우기의 결과 아이들이, 학부모들이, 그리고 그들이 얻은 건 무얼까 생각해봤는지 궁금하다.
언뜻 보면 반듯하게 서있는 줄이 그럴듯하게 보인다. 힘 있는 자의 명에 의해 똑바로 줄을 섰을 때 얼마나 보기가 좋겠는가? 어쩌다 반듯한 줄에서 벗어난 자가 있다면 법이란 체벌을 가하면 될 것이고, 한 번 그렇게 하면 나머진 자동적으로 줄을 서게 되리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 획일성이란 평가의 줄서기를 했을 때 아이들의 실력은 더욱 향상되고, 아이들의 창의력은 더욱 왕성해지고, 아이들은 입시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또한 학부모들은 안심하고 웃으면서 박수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교육현장은 더욱 삭막해지고, 교사들은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달달 볶을 것이고, 또 학부모들도 자식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더욱 이런저런 곳에 매달릴 것이고, 이로 인해 아이들은 더 많은 숨막힘을 받을 것이다.
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선 경쟁이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스스로 경쟁력을 기르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살벌한 밀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에 나오는 애벌레처럼 서로를 짓밟고 짓밟히며 한없이 기어오르는 애벌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애벌레들이 동료 애벌레들을 짓밟고 올라서서 보고 싶어 한 것은 무엇인가. 한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이다. 줄무늬 애벌레도 보이지 않은 희망을 보기 위하여 동료들을 짓밟고 무너뜨리며 위에 오르나 그에게 보이는 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경쟁을 뚫고 올라서서 얻은 것은 허망한 뉘우침뿐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스스로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이겨낼 때 한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음을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아름다운 나비가 되고 싶어 한다.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며 꽃과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책들은 스스로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어 후에 나비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하기 보단 그럴듯한 ‘평가’란 이름을 들이대어 싸움터에 몰아내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줄서기 평가에 의해 순번을 메기는 방법이란 책상머리에 앉아 생각하는 것이지 현장에서의 방법은 아니라 본다. 요즘 아이들은 ‘목맨’ 세대이다. 수행평가에 목매이고, 점수에 목매이고, 점수 따기 위한 과외에 목매인다. 아이들의 목매임은 그대로 부보들에게도 전가되어 덩달아 목매이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말로는 창의력 교육이니, 열린 교육이니 하지만 그 모든 것도 점수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 꼴이다. 단적으로 최근 교육부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공개하는 내용을 담은 초 ․ 중등교육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아이들의 시험 성적을 가지고 학교 간, 교사 간, 지역 간에 서열을 매기겠다는 생각이 아닌지 의문이 간다.
얼마 전 모 외국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한 학생과 한 말이 생각난다. 그 학교는 학생의 교사 평가를 하고 있는 학교이다.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교사를 서열화하여 평가를 했는데 일이 있어 상담을 하러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높은 등급을 매겼으면 괜찮은데 좀 낮은 등급을 주었는데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눈도 돌리게 되고 결국은 상담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경쟁을 지나치게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경쟁이 서열적인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는데 문제다. 서로 짓밟고 짓밟히고 하며 서로의 문제점만을 바라보게 하는 평가의 경쟁 방식이 진정으로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인가를 한 번 쯤은 돌아볼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