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두툼한 손을 보니 마디마디 갈라지고 상처투성이다. 고생한 아버지의 손, 우리 가족을 위한 어버지의 손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려온다.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신발, 흙투성이의 신발을 보도 있자니 신발 사달라고 조르며 때 쓰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나를 아프게 한다.”
아이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글을 써보라고 했다. 우리 아이들이 생각하는 아버진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궁금했다.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점차 무너져 가는 요즘, 아이들에게 비쳐진 아버지의 모습은 아팠다. 자랑스런 아버지, 훌륭한 아버지, 존경하는 아버지의 모습 보다는 희생하는 아버지, 아파도 아파하지 못하고 가족을 위해 애쓰는 아버지, 자식을 말없이 지켜보고 웃음을 짓거나 눈물짓는 아버지, 아이들에게 비쳐진 요즘 아버지의 모습이다.
삶의 환경에 따라, 사는 지역에 따라 아이들에게 비쳐지는 아버지의 모습이 달리 보이겠지만 부유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아버진 아파하는,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새벽잠을 포기하시고 출근을 준비한다. 몸이 아파도 쉬지 못하는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거칠어가는 손을, 지쳐 쓰러져 주무시는 아버지를 그땐 왜 몰랐을까?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가는 나의 아버질 사랑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보다 약한 아버지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아이는 어머니 뒤에 서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무거워 보이고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는가 보다. 그래서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없으면 가족들이 굶어 죽기라도 할까봐 모든 걸 무릎 쓰고 아무리 힘겨운 것도 참고 이겨내시는 아버지, 우리 아버지’ 하며 ‘아버지의 사랑이 조금은 부끄럽고 부족하더라도 자신에게는 큰 사랑’이라고 말한다.
왜, 요즘 아이들에게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안타깝고 슬프게 보일까? 오직 가족을 위해 애쓰는 모습으로만 비칠까? 못 배우고, 못 배워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아버지, 하지만 자식들을 가르치고 먹여 살리기 위해 늘 노심초사하는 아버지가 아이들이 점차 철이 들어가면서 이해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그런 모습이 보민이라는 아이의 글에서 잘 나타났다.
“철없던 시절에는 간섭하시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헌데 이젠…, 아버지가 가엾습니다. 아버진 힘들다고 투정부리지도 못합니다. 힘들다고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실 수 없습니다. 혼자 무거운 짐을 들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납니다. 왜 혼자 힘들어하시는지… 조금만 돌아보면 가족이 옆에 서있는데….”
우리 모두의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도 그랬다. 나도 한 아버지의 지식이고, 두 아이의 아버지이지만 늙으신 부모님이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여우면서도 화가 났었다. 철이 없을 땐 부모는 무조건 자식에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왜 자신의 인생을 좀 더 그럴듯하게 살지 않고 저렇게 자식들에게 매여 사실까 하며 답답해했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이 쓴 글을 읽는 내내 이제 근력도 없고, 작은 미풍에도 아파 병원 신세를 지는 부모님의 얼굴이 맴돌았던 이유가. 그런 한 편으론 아이들의 마음이 참 예쁘게 다가왔다. 항상 생각 없이 행동하고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작은 샘물 같은 사랑을 졸졸졸 흐르게 하는 아이들이 기특해지기도 했다.
사랑은 흐르는 시냇물과 같다.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흐르는 시냇물처럼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어떤 환경에도 마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식들은 그 시냇물을 목마를 때마다 떠 마시면서도 간혹 시냇물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지내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자신이 그 시냇물이 되었을 때에야 어릴 때 마셨던 그 물이 자신을 사랑하던 뜨거운 피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곤 눈물 한 줌, 한숨 한 줌을 빈 하늘에 뿌리며 이 세상에 없는 존재들을 그리워한다.
아버지. 갈수록 힘들어지는 아버지의 역할.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 새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가족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고 남몰래 소주 한 잔에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있는 우리 시대의 남자, 아버지.
자신이 설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아버지들이 많지만 아이들의 글을 통해 아버지란 존재가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무관심하고 혼자만 소외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가족들은, 아니 자식들은 아버지란 존재를 연민으로 바라보면서도 사랑이라는 시선을 놓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버지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왜 그럴까? 술 냄새에 찌든 아버지를 보면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온다. 왜 그럴까? 힘없이 걷고 있는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저리게 아파온다. 왜 그럴까? 그건 바로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진영이라는 아이가 쓴 글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프다는 것은 부모이기 때문에, 자식이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잘났든 못났든 딸들에게 아버진 여전히 든든한 기둥이고, 사랑하는 마음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