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을수록 맛난 음식, 책

2006.07.27 10:21:00

“선생님, 무슨 책 읽어요?”
“책 한 권만 추천해주세요?”

반에서 아침독서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이 종종 하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딱히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망설이곤 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책과 내가 좋아하는 책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책을 선택할 때 가장 우선시 하는 것은 재미이다. ‘무슨 책 읽어요.’ ‘추천해주세요.’ 하고 물을 땐 ‘무슨 책이 재미있어요?’ 하는 물음과 같다. 그런데 그 재미가 문제다. 내가 느끼는 재미와 아이들이 느끼는 재미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무겁지도 않고 의미성도 있는 책을 권하며 ‘이 책 되게 재미있다. 한 번 읽어 봐.’ 하면 아이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책을 들고 간다.

며칠 전 종례 시간에 아이들에게 책을 몇 권이나 읽었는가 물어 보았다. 3월부터 시작한 독서를 마무리할 즈음 주로 어떤 책을 읽고 얼마나 읽었나 확인하기 위해서다.

“1학기 동안 열심히 책 읽느라 애썼다. 이번에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에겐 상품과 상장을 줄까 한다. 누가 책을 가장 많이 읽은 것 같아?”
“민정이요.”
“아니에요. 혜영이가 젤 많이 읽었을 거예요?”
“그래. 그럼 열 권 이상 읽은 사람 손 들어볼래.”

열 권 이상 읽은 사람 손을 들어 보라 했더니 여섯 명 정도 손을 든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라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들이 손을 든 모습을 보고 한 녀석이 “만화책은 안 되나요?” 하고 묻는다.

“만화책은 당연히 안 되지. 그리고 인터넷 소설류의 연애 소설도 안 돼. 혹 그런 사람 있는 건 아니겠지?”
“선생님! 전 있는데요. 그럼 안 되나요?”
“그건 제욀 시켜야겠다. 안 읽는 것보단 낫지만 그렇게 책을 읽다보면 다른 책은 재미없어서 못 보게 돼. 아침 독서의 취지에도 안 맞고. 그럼 다시 한 번 손들어 봐.”

이번엔 두 명 정도가 손을 든다. 다섯 권 이상 읽은 사람 손 들어보라 했더니 12명이나 된다. 이 정도만 돼도 성공적이다. 사실 2학년에 올라와서 1학년 1년 동안 2권 이상의 책을 읽은 사람 손들어보라 할 때 2명밖에 안되었다. 그렇다면 올 1학기 동안 아이들의 독서 성적은 아주 우수한 편이 아니겠는가.

열심히 책과 함께 한 아이들이 대견스럽고 예쁘기 그지없다. 처음 책 읽자고 했을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아이들도 많았는데 믿고 따라준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데 내가 한 일은 거의 없다. 아침에 책 한 권 들고 교실에 들어가 책을 펴들고 읽는 것과 아이들이 책을 원할 때 이런 저런 책을 권하여 준 것, 즉 책을 읽을 수 있게 멍석을 깔아준 것밖에 없다. 그렇게 멍석을 깔아주니까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재미나게 논다. 물론 멍석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하는 몇 몇 아이들이 있을 땐 그때그때 잡아주었지만.

실제로 고등학교 2학년이나 되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다 보면 여러모로 어려움이 따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소홀히 해지려는 내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거기서 손을 놓아버리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스스로 다잡지 않으면 아이들은 따라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힘을 주는 게 책을 빌리러 오는 아이들이다. 그러면서 ‘책을 읽으니까 너무 좋아요’ 하며 웃음 짓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한 권, 두 권 읽어가고 책 목록에 기록할 때마다 아이들 못지않게 나의 마음도 기쁜 물결이 인다.

책은 음식물과 같다. 책을 한 권 더 읽는다고 인생이 금방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또 지식이 빠른 시간에 많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씹고 씹다보면 입안에 단물이 나듯 언젠간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에도 단물이 날 거라 생각한다. 재미있는 장면을 읽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 지금의 아이들, 그 아이들이 장성하여 엄마가 됐을 때 자신의 아이들에게 책의 맛을 이야기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왜, 책은 씹을수록 맛난 음식이니까.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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