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해야 점수 올려요?”
“무슨 말?”
“수능 봐야 하는데 점수가 안 나와서요. 점수 올리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네?”
“너희들 이제야 점수 생각나니. 평소에 좀 하지. 그런데 그런 방법이 어디 있어.”
“그래도 선생님은 무슨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을 거 아네요. 그것 좀 알려 주세요. 네~.”
수업을 하러 들어가자마자 아이들이 대뜸 하는 질문이 수능점수 올리는 방법 좀 알려달라고 한다. 마음이 급했나 보았다. 아이들이 그런 질문을 하는 덴 이유가 있다. 녀석들은 모두 1학기 수시를 통해 대학을 가려고 했던 아이들이다. 그래서 몇 몇 아이를 빼곤 평소에 수능 공부를 하면서도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헌데 이번 1학기 수시시험에 떨어지고 나자 급한 마음에 점수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얼마 전엔 이런 일이 있었다.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가자 한 아이가 훌쩍거리며 울고 있었다. 한참을 울었는지 눈이 빨개져 있었다. 아이들에게 왜 우냐고 묻자 잘 모른다며 도리질을 한다. 아이의 마음을 잠시 진정시키고 수업을 한 다음 그 아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 왜 그래? 너희 담임선생님한테 혼났니?”
“아뇨. 아무 것도 아니에요.”
“너 그냥 이유 없이 우는 애 아니잖아. 혹 시험 때문에 그러니?”
시험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녀석이 또다시 눈물을 흘리며 모기만한 소리로 ‘네.’ 한다.
“너 수능 시험 압박감 때문에 우는 구나. 그렇지.”
“그냥 가슴이 답답해요. 공부해도 점수도 안 나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직 시간 있잖아. 그러니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점수 오를 수 있어.”
“그럴까요. 하면 오르겠죠?”
“그럼. 작년 너희 선배도 수능 한 달 전부터 점수 올라 숙대 갔잖아. 그러니 힘 내.”
수능 접수가 시작되면서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시험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겉으론 항상 웃고 그래도 그 마음은 불안하고 초조하여 어떤 아이는 신경성 위궤양에 걸렸다고 하고, 어떤 아이는 잠이 잘 안 온다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고 3 때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당시엔 왜 그랬는지 몰랐지만 난 밤 8시 이후엔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저녁을 먹고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면 정확하게 7시 59분까진 공부하는 것들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그러나 8시가 되면 그때부턴 머리가 멍해지고 안개가 가물거리며 비몽사몽 상태에 빠져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공부하는데 난 비몽사몽 상태에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그 마음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별짓 다해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정확히 열 시가 되면 머리가 환해지며 맑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때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낮엔 수업 후 쉬는 시간을 이용해 부족한 공부를 했었다. 그땐 그 이유를 생각지도 않다가 몇 십 년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그것이 매스컴에서 이야기하는 고 3병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나에게 그 답답했던 마음을 호소하는 걸 보니 안타까웠다. 가고 싶은 대학은 저만치 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 되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학교 시험처럼 수능이 단시일에 공부해서 부쩍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가끔 아이들이 수능 점수를 올리기 위한 방법을 물을 때면 주로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문제를 잘 풀기 위해선 평소 다양한 독서를 통해 많은 배경지식을 쌓아라. 문제 유형을 파악해라. 그리고 감각을 익혀라. 수능은 일종의 종합적인 것을 요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가 톱니바퀴처럼 움직일 때 좋은 점수를 올릴 수 있다고 이야기 해준다.
그러면서 하나의 비유를 들곤 했다. 농구를 예를 들며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농구 이론이 해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실제 경기에 나서 골을 많이 넣을 수 없다. 즉 아무리 많은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점수를 올리는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골을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터득해야 한다. 그게 바로 문제유형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문제 푸는 감각을 익혀야 한다. 이게 아주 중요하다. 농구 천제라 하는 허재 선수도 열흘 동안 농구공을 잡지 않은 상태에서 게임에 나섰을 때 슛 성공률은 아주 낫다. 공에 대한 감각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수능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선 꾸준히 많은 문제를 풀어 문제에 대한 감각을 익혀야 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가 잘 어우러지면 시험을 잘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건 금방 점수를 올리는 방법이다. 아이들의 답답한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그런 방법이 있겠는가. 그래서 겨우 해줄 수 있는 말이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생각해보고, 아직 두 달 이상의 시간이 남았으니 그때까지 열심히 하면 원하는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뿐이다.
아이들을 보며 생각해본다. 무엇이 저 아이들을 저리 불안하게 하고 초조하게 하는가 하고 말이다.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성공이라는 이름의 입시경쟁에 내몰리는 아이들. 경쟁에서 낙오하면 인생의 실패자가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 그래서 성공하기 위해 동료를 짓밟고 올라서야 하는 애벌레처럼 위로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 그 현실에 맞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과 부대끼며 아이들보다 더 불안해하며 함께 가야 하는 어른들.
지금 이 아이들의 모습이 언제까지 이렇게 지속될 것인가 반문해본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반문해본다. 숱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나와 우리의 욕심 때문은 아닌지. 채우고 가지려는 마음만 가득하고 비우고 나누려는 마음은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닌지 우문에 우답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