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즐거움의 멘토가 된 아이들

2006.09.26 13:21:00

"선생님, 선생님은 체포되었습니다."
"엉, 무슨 체포?"
"선생님은 산길을 타고 왔으니 지금 저희들과 학생부실로 가야겠습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도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도망치면 가중 처벌 됩니다."

아침 출근길에 있었던 한 장면이다. 날이 선선해지면서 난 산길을 타고 출근을 한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관계로 요즘은 걸어서 출근한다. 등산객이 많이 다니는 산길을 따라 오며 교문으로 바로 가는 것보다 조금 시간이 더 걸리지만 부러 산길을 택해 오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 아니 몇 분이나 흙을 밟을 기회가 있을까. 도로는 모두 아스팔트 아니면 시멘트로 포장되어 야외로 나가지 않으면 흙을 밟아보기는커녕 구경하기도 쉽지 않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야 할 존재들이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는 흙으로부터 멀어졌다.

흙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은 자연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명의 상징처럼 우뚝우뚝 솟은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매일매일 지내다 보면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모른 채 숨가쁘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낸다. 내가 산길을 택해 출근과 퇴근을 하는 이유는 그 숨가쁜 하루를 시작하고 정리함에 있어 조그마한 마음의 여유라도 찾아볼까 해서이다.

소나무가 기다랗게 나 있는 오솔길을 걸으며 시나브로 움직이는 자연의 변화를 바라보다 보면 잃었던 내 자신을 찾기도 하고, 잃어버린 추억도 다시 살리기도 한다. 또 흙을 밟는 느낌을 가죽신 너머로 느껴보는 재미도 괜찮다 할까.

오늘 한 손에 책을 들고 가쁜 걸음으로 야트막한 산을 막 내려오자 선도부 아이 두 명이 웃으며 내게 체포령을 내린 것이다. 그것도 제법 형사 흉내를 내며 하는 말하는 폼이 그럴 듯하다. 그런데 체포령을 내리는 아이들은 뭐가 재미있는지 연신 싱글거린다.

"너희들 선생님 체포하니 그리 좋니?"
"헤헤. 그럼요. 도망가면 안 돼요. 알았죠?"

"생각해 보구. 근데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잡았니?"
"아까 다른 선생님 한 분 잡았죠. 근데 저희에게 귀여운 꿀밤 하나 주고 가셨어요."

"그래. 그런데 선도 서면서 땅바닥엔 왜 앉아 있어?"
"힘들어서요. 다리도 아프고요."

"그럼 그늘에 가서 있으면 되잖아. 아니다 너희들이 산속에 들어가 있어라. 잠복근무하는 거야. 그럼 샛길로 오는 아이들 다 잡을 수 있잖아."
"에이 선생님두. 그럼 우리도 잡히는 거잖아요."

"너희가 너희를 어떻게 잡아. 못 잡잖아. 암튼 수고해라. 나 갈란다."
"어어, 선생님 그냥 가시면 안 되는데… 호호호. 안녕히 가세요."

아이들의 인사말을 뒤로 들으며 걷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평소 잘 따르던 아이들과의 짧은 아침 대화가 하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가득 채워주는 듯했다. 교무실로 걸어가며 '너희들이 오늘 날 즐겁게 해주는구나'하는 마음이 들어 절로 웃음이 인다.

그렇게 하루를 열고 오후 수업 시간, 날 체포했던 그 아이 반에 들어가 몇 명이 산길 타고 오더냐고 묻자 여섯 명을 붙잡았다고 한다. 지각을 한 아이들이 정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몰래 눈을 피해 옆길로 오자 선도부 아이들이 그 아이들을 적발하기 위해 지켜서고 있다 장난기가 발동하여 나까지 잡은 것이다. 그런데 녀석이 한 술 더 뜨며 한 마디 한다.

"선생님 내일도 산타고 오면 또 잡을 거예요."
"그럼 선생님은 지상이 아닌 공중으로 와야겠네."

"그래도 소용없을 걸요. 하늘에 그물 쳐 놨거든요. 수연이와 나의 눈 그물. 헤헤헤."
"그럼 큰일이네. 바다도 없어 헤엄칠 수도 없고. 그래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을 걸. 낼 잘 감시해."

아이와 가벼운 이야기에 오후의 졸림에 겨웠던 아이들의 눈이 또렷해진다. 무슨 이야긴가 해서다. 아이들과 대화는 재밌다.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고를 떠나서 아이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은 하루의 활력소가 된다. 오늘 하루는 선생님을 체포했던 두 아이로부터 작은 즐거움을 얻게 되었으니 오늘은 그 아이들이 나에게 즐거움의 멘토가 되었다고 해야할까보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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