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0일, 교육부는 교원평가 추진일정을 확정 발표하면서 2008학년도부터 평가를 전면적으로 실시한다고 했다. 헌데 교원평가 추진 일정을 확정 발표하는 시간에 교육부는 ‘교원평가 공청회’를 하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교육부는 공청회가 끝나기도 전에 교원평가 추진일정을 발표하는 성급함과 조급함을 보였다.
공청회도 문제이다. 공청회라 하면 해당 당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터인데 그러지 못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 시도교육청에서 동원된 관료들이고 공청회장에 들어가려는 일부 교사들은 입장을 못하게 막았다 한다.
왜 그들은 당사자들의 의견수렴이 없는 공청회를 개최하고 진행할까. 혹 명분을 쌓기 위한 공청회는 아니었나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큰 병 중의 하나가 ‘빨리빨리 병’이라고 한 적이 있다. 건물 하나를 짓고, 다리 하나를 놓더라도 주변 환경이나 여건을 도외시한 채 빨리 완공을 해야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칭찬받았다. 그렇게 지은 건물과 다리가 뒤에 어떤 문제가 야기될 것인가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훑고 지나갔다. 형식적인 공청회나 의견수렴으로 말이다.
그럼 우리나라의 교육은 어떤가? 우리나라의 교육도 그 조급함과 성급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숱하게 입시정책이 바뀌고, 학생들이 그 정책에 억지춘향으로 춤을 춘 것이 무언가 한 건 이루려는 정책 책임자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조급함 때문은 아니었나 한 번 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번 교원평가 법제화 문제도 이런 조급함의 결과는 아닌지 싶다. 7개월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에 여러 인센티브를 주어 각 지역별로 몇 몇 학교를 시범적으로 실시해놓곤 그걸 바탕으로 법제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빨리빨리의 전형적인 조급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법제화가 너무 이른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에 김신일 교육부장관이 3년 동안의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하는데 과연 무얼 준비했는가. 아이들이 교육받을 환경과 여건이 좋아졌는가 아님 교육에 대한 투자가 많아졌는가? 그 아무것도 없다. 오직 평가라는 목표를 세워놓고 밀고 나가는 추진력만 보여줬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본질로 들어가 보자. 교육부와 일부 단체에서 교원평가를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근본 이유가 ‘교육의 질’을 높여보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라고 본다. 평가를 하면 우리 아이들이 지금보다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교육의 질’이란 게 많은 교과적 지식을 통한 수업기술을 의미한 것은 아닌지 싶다. 혹 그렇다면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는 우를 범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물론 여러 수업기술을 체득하여 수업현장에서 적용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공부 안한다는 비판 또한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기반성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의 모든 교육의 문제점은 교사들에게만 있는 것처럼 비쳐진다. 일부의 사실이 전체인양 일반화되어 매도되고, 자기 밥그릇이나 지키려는 문제의 집단으로 매도된다. 문제는 이러한 것을 교육정책을 총괄적으로 입안하고 책임지는 사람들이 일견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어느 한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현장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가 많은 책임을 져야하겠지만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자들 또한 그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일부 학부모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여러 문제 속에서 교원평가를 해야 함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하나의 방법이고 대안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숱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에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교원들이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교육의 목적을 이야기할 때 지·덕·체를 겸비한 인간다운 인간을 육성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허나 이 말은 구체성이 결여된 추상적인 문구일 뿐이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어떤 인간이 인간다운 인간인지 기준을 두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대성과 맞지 않는다. 또한 인간다운 인간은 본성적 측면이 강한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 교육의 목적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교육의 목적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기 위한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는 한 심리학자의 말은 좀 더 구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길러준다는 것’은 작게는 개인의 생존 문제이고, 크게는 사회, 국가의 생존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기러주기 위해선 어찌해야 하는가. 부모나 교사, 정책당국자들의 트인 눈이 있어야 한다. 그 트인 눈이란 교육에 대한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이다. 농부들도 봄에 씨앗을 뿌리기 전에 일 년의 농사 계획을 세우고 철저히 준비한다. 그래도 흉년을 당할 때가 있다. 하물며 교육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따라서 교육이 국가의 운명을 짊어질 책무를 지니고 있다면 정책담당자는 정책을 세울 때 장기적인 안목에서 세울 필요가 있다. 당장의 현실적인 전시효과나 성과에 집착해서 무리하게 어떤 일을 추진하다 보면 그 정책은 실패하고 만다.
교육을 흔히 백년지대계라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십년지대계 아니 오년지대계 못 된다. 그런 의미에서 교원평가 법제화 문제도 좀 더 심사숙고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평가를 주창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평가가 지식을 전달하고 수업기술 측면에서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겠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 설 수 있는 인간을 육성함에 있어서는 결코 성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