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따뜻한 이야기 <솔뫼골 밤꽃 도둑>

2007.01.06 09:11:00

 


전쟁의 아픔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전쟁의 비극을 이야기하면 얼마나 이해를 할까? 실제 전쟁마저 무슨 한 편의 영화처럼 보여주는 현실 속에서 어린 세대에게 전쟁을 이해하라는 자체가 어쩌면 비현실적인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전쟁의 상흔은 아직도 우리 현실 속에 존재하며 지금도 그 전쟁의 아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과 북녘 땅 고향을 가지 못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 그리고 대를 이어 옹기를 구웠지만 팔리지 않은 항아리를 바라보며 옹기장이를 그만 둔 옹기장이의 삶과 가슴마다 아픈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밝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을 그린 책이 있다. 손호경의 <솔뫼골 밤꽃 도둑>이다.

이 책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상처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5학년인 재우의 시선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재우의 할아버지 고향은 북녘이다. 전쟁 때 남으로 피난 와 감나무 과수원을 하면서 고향에 있는 할머니와 가족들을 그리워한다. 재우 아버진 농사짓기 싫어 서울 생활을 하다 재우의 교통사고와 함께 귀농을 하지만 마음을 잡지 못하고 늘 재우 할아버지와 다툰다. 땅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봤자 소득도 없는 땅을 팔자는 아들과 끝까지 땅을 지키고 있다 북의 가족들을 만나면 땅을 나누어주겠다는 할아버지. 재우는 그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습을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지만 여전히 삼자의 입장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다시 홀로 서울로 떠나고 할아버진 재우에게 방학을 하면 금강산에 가자고 한다. 그리고 연을 만들어 북녘 땅 할머니에게 편지를 띄운다. 그 연에 재우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이렇게 편지를 쓴다.

“해주 모실 마을의 황분이 할머니 보세요.
우리 할아버지의 성함은 김종태랍니다.
할아버지가 가족들을 무척 보고 싶어 하세요.
교향소식도 궁금하시고요.
이 편지를 보시거든 답장해 주세요."

연은 하늘 높이 날아가 손톱만 해졌을 때 연과 얼레를 잇고 있던 실이 끊어진다. 연은 하늘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어 저 멀리 북으로, 북으로 날아간다. 연이 날아간 까마득한 하늘을 바라보던 할아버지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할아버지의 회한과 비원이 가득 담겨 있는 눈물이다.

연을 날리며 가족을 그리워하던 비원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진 금강산엘 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이 이야기엔 전쟁의 또 다른 아픔을 겪고 살아가는 인물이 등장한다. 아이들 사이에서 밤꽃 도둑으로 불리는 외다리 할아버지이다. 베트남 전쟁 때 다리 하나를 잃은 외다리 할아버진 사람들 눈을 피해서 밤꽃이 어우러진 솔뫼골의 한 바위굴에서 혼자 산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일그러진 감자 덩어리 같았다. 분명 사람인데 눈과 코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얼굴이 없다는 밤꽃 도둑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할아버진 베트남 전쟁 때 다리만 잃은 게 아니다. 전쟁을 통해 얻은 병으로 얼굴과 팔이 문둥병 환자처럼 문드러져 사람들 앞에 나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외다리 할아버진 사람들 눈을 피해 바위굴에 살며 먹을 것이 생기면 땅 속에 무조건 묻어두었다. 그래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전쟁 때의 습관이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런 외다리 할아버지에게 엄마가 없는 옹기장이 딸인 밀실이와 농약을 먹어 말이 어둔한 두전이와 재우가 친구가 된다. 그러나 이 또한 얼마 오래가지 못한다. 동네 어른들에게 발각되어 쫓겨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의외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허지만 그 상처들을 안고도 질기고 강한 야생초처럼 꽃을 피운다. 이 이야기 속의 인물들인 재우 할아버지도, 외다리 할아버지도, 옹기장이인 밀실이 아버지도 야생초와 같은 인물들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간 엄마를 남몰래 눈물로 그리워하면서도 겉으론 활달한 채 하는 밀실이도 아름다운 한 떨기 야생초이다.

그런 면에서 손호경의 <솔뫼골 밤꽃 도둑>은 우리 주변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작가의 따스한 시각이 아이들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동화이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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