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여우 구미호. 꼬리 아홉이 달린 구미호. 전통 설화인 구미호를 소재로 한 이성강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천년여우 여우비>가 영상 못지않은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글로 독자 앞에 선을 보였다.
<천년여우 여우비>는 열한 살짜리 소녀 여우 여우비의 모험과 인간인 금이와의 애틋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구미호 사냥꾼에게 어미 여우 구미호를 잃은 여우비는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요요’들을 구해주고 한 집에 살게 된다. 그러다 조금씩 새로운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는 중에 외계인 요요는 부서진 우주선을 다시 조립하여 시험비행에 나서다 ‘말썽요요’의 엉뚱한 실수로 우주선은 망가지게 된다. 그리고 말썽요요는 사라져 버린다.
여우비와 동료 요요들 ‘말썽요요’를 찾아 나서게 되고, 여우비는 처음으로 인간인 금이를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야릇한 감정에 빠진다. 인간이 아닌 여우비는 그게 사춘기 때 느끼는 순수한 마음인 줄 모른다.
여우비는 금이에 대한 그리움을 떨치지 못하고 금이가 있는 학교에 간다. 그 학교는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이 왕따를 벗어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학교다.
“내 이름은 여우비야. 나이는 백 살…… 아니, 열한 살이고, 저기 숲 속에서 요요들이랑…… 아니, 엄마랑 단둘이 살아.”
열한 살의 귀여운 여자 아이로 변신한 여우비는 아이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한다.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잠을 자면서 여우비는 금이에 대한 마음이 더욱 깊어짐을 느낀다. 그리곤 자신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마음을 구릉영혼에게 고백한다.
“나… 누군가를 정말로 좋아하나봐…. 좋아하는데 다가갈 수 없는 게 내 맘을 너무 아프게 해. 왜냐면 그 애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난 결코 사람이 될 수 없을 테니까.”
그런 여우비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구릉영혼은 여우비에게 사랑의 영혼을 가지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준다. 그것도 푸른 영혼을. 그러면서 푸른 영혼의 빛은 가장 진실한 순간에 나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영혼을 갖는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생명이 사라짐을 의미하기에 여우비는 갈등하고 아파한다.
그러는 중에 금이와 여우비의 순수한 사랑은 무르익는다. 하지만 사랑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서로 간에 오해도 생기게 마련이다. 또 삼자에 의한 외부의 시련도 다가온다. 구미호 사냥꾼이다. 구미호 사냥꾼은 끊임없이 여우비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다.
사냥꾼에 발각된 여우비. 금이는 여우비를 살려내기 위해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서도 여우비를 절벽 위로 밀어 올린다. 여우비는 그런 금이를 살려내기 위해 영혼을 가두는 호수로 몸을 던지고 자신의 영혼을 바친다.
인간인 금이는 구미호인 여우비를 살려내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우비 또한 인간인 금이를 살려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둘은 마음과 행동을 통해서 보여준다.
사실 요즘 우리주변에 진실한 사랑이 어디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정말 금이와 여우비의 사랑처럼 서로의 목숨마저 던질 만큼 순수하고 진정성이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추천의 글을 쓴 정호승 시인의 말은 이 책의 의미를 말해준다.
“이 책 속에는 샘물처럼 맑디맑은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잇습니다. 그것도 여우 소녀인 여우비와 사람인 금이와의 진실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여우와 인간이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묻는 독자가 있다면 먼저 이 책을 읽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진실이 없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영혼이 진실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천년여우 여우비>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실한 사랑을 지닌다는 것이 그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푸른 영혼을 꿈꾸는 샘물 같은 소녀의 별빛 같은 첫사랑을 이야기한 <천년여우 여우비>는 전통 설화를 빌려온 일종의 판타지 소설이라 볼 수 있다. 판타지가 있는 이 수채화 같은 소설을 읽다 보면 마음이 절로 맑아짐을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여우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글이 더욱 다가오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사랑에서 그 순수성을 찾기가 힘들어서 그런 건 아닌가 싶다.
사춘기 무렵 누구나 한 번쯤은 가슴 떨리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보기만 해도 얼굴이 발개지고 가슴이 떨렸던 경험. 그 순수했던 경험을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특히 여성이라면 귀엽고 깜찍한 여우비의 그 맑은 떨림이 더욱 반가우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