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아이 떡하나 더 주고 이쁜아이 매한대 더 친다'는 말이 있다. 나름대로 해석해 보면 자식을 키우다가 미운 짓 하며 말썽부리는 아이에게는 떡이나 하나 더 주어서 달래어 사랑을 표현하고 이쁜 아이에게는 매한대 더 쳐서 될성부른 나무로 바르고 크게 자라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미운아이나 이쁜 아이나 모두를 사랑하되 그에 대한 기대치가 다르고 표현 방법을 달리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솔직한 마음으로 미운 아이도 있고 이쁜 아이도 있다. 학부모님이 들으면 질겁을 하겠지만 교사도 사람인지라 미운 아이는 정말 밉다. 그런데 사랑과 미움도 제 몸에서 난다는 말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제 할 탓으로 사랑 받는 것도 미움 받는 것도 제가 하기 나름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교사의 눈에 밉게 비치는 아이들의 유형은 비슷하다. 공부를 못해서, 못생겨서, 가난해서 아이를 미워하는 교사는 하나도 없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보면 미운 아이는 친구를 이유없이 괴롭히고 항상 싸움을 일으키는 아이, 또 수업시간에 떠들어서 수업 분위기를 망치면서 제가 해야 할 학습과제를 하지 않는 아이, 게다다 교사가 야단을 치면 심하게 반항하며 덤비는 아이 등이다. 또 예쁜 아이는 수업태도가 바르고 성실한 아이,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 아이, 능력은 조금 부족해도 무엇이든 해보려고 노력하는 아이 등이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통제의 대드라인이 있다. 교사는 이 통제의 끊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 통제의 끊을 놓치는 순간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교사의 통제권을 벗어난 교실은 더 이상 교실이 아니다. 교실붕괴 현상은 교사의 통제권이 무너지는 순간 일어난다. 교권이 무너진 교실은 더 이상 학생이 즐겁게 생활하며 교사로부터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교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가 몇몇의 아이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교실에서는 더 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이는 교사나 학생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교사는 교사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학생은 힘센 아이들에게 피해를 받을 뿐만 아니라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잃고 만다.
그래서 교사들은 보이지 않는 대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그런 교사의 권위에 도전을 해 오는 학생이 있다. 우리 교사들은 그런 학생을 어떻게 통제하고 지도해야 할까?
교사의 권위는 학생을 지도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의적 권력이며 힘이고 더 나아가 책임이기도 하다. 우리 교사들은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미운 놈 떡하나 더 주고 이쁜 놈 매한대 더 친다’ 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자녀 교육법처럼 행동이 바르지 않고 자꾸만 엇나가는 아이에게는 따스한 사랑으로, 매사 바르고 성실하며 모범이 되는 아이에게는 질책과 더블어 격려로서 아이들을 통제하고 지도해 나가 보자. 그래도 말을 듣지 않는 미운 아이는 이쁜 아이라 생각하고 매를 한대 쳐야 할까? 아니면 아예 푸짐한 떡시루처럼 더 큰 사랑이 필요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