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에 아이들의 세뱃돈은 줄지 않았다
1월 초. 고3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이라도 한 듯 자율학습에 임하는 아이들의 마음 자세가 여느 때와 달랐다. 자율학습 감독을 하면서 느낀 바, 어떤 때는 교사인 나 자신이 이 정적을 깰 수 있다는 생각에 교실 문을 여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런데 설 명절 연휴가 지나고 난 뒤, 자율학습에 임하는 아이들의 자세가 예전과 같지 않았다. 교실 분위기 또한 왠지 어수선하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명절 후유증 때문일 것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심지어 자율학습 시간, 내 눈치를 살피는 아이들이 많아진 것이었다.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아이들 몰래 동정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지난 목요일 자율학습 3교시였다. 아이들의 동정을 살피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 명의 아이들이 내가 없는 틈을 이용해 책상 위에 새로 산 MP3 플레이어와 휴대전화를 꺼내놓고 사용법을 익히고 있었다. 한 녀석은 내가 옆에 서 있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그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인기척을 내자 그제야 녀석은 깜짝 놀라 휴대폰을 치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녀석이 가진 휴대폰이 왠지 모르게 비싸 보이기까지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녀석은 설 명절 때 받은 세뱃돈으로 새로운 휴대폰을 구입했다고 하였다.
문득 최근 계속되는 불경기가 아이들의 세뱃돈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가 궁금해 졌다. 내심 예년보다 아이들의 세뱃돈도 많이 감소했으리라 생각했다. 우선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답변해 줄 것을 주문하고 난 뒤 질문을 하였다.
우선 받은 세뱃돈 액수는 평균 10만 원 정도였으며 30만 원 이상의 세뱃돈을 받은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겨우 몇만 원 정도의 세뱃돈을 받은 아이들도 있어 대조를 이루었다. 부모님으로부터 각각 세뱃돈을 받은 아이들보다 부모님 공동명의로 세뱃돈을 받은 아이들이 더 많았다. 전자의 경우, 부모 대부분이 맞벌이를 하는 경우였다.
중요한 사실은 대부분 아이들이 전년도에 비교하여 같은 액수의 돈을 받았거나 더 많은 액수를 받았다고 답변하여 경기 불황이 아이들의 세뱃돈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받은 세뱃돈의 유형도 다양하였다. 대부분이 세뱃돈으로 현금을 받았으며 두 명의 학생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뱃돈을 수표를 받았다며 그때 당시의 이상한 기분을 이야기해 아이들로부터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그리고 일부 학생의 경우, 씀씀이가 심하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상품권으로 세뱃돈을 대신한 경우도 있었다. 또한, 학용품과 책을 받은 아이들도 있었으며 세뱃돈 대신 덕담을 준 부모도 있었다. 건강과 대학 합격 관련의 덕담(德談)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아이들은 받은 세뱃돈으로 무엇을 했을까? 대부분은 자신이 평소 사고 싶은 물건(휴대폰, MP3, 의류, 화장품, 액세서리 등)을 사는데 세뱃돈을 사용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한 명의 아이가 세뱃돈의 절반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냈다고 하여 친구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설 명절이 십 여일 지난 지금 아이들 주머니에 남아있는 세뱃돈이 궁금해 졌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받은 세뱃돈 절반가량을 지출하였으며 심지어 어떤 아이는 다시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다며 계획 없는 지출을 후회하고 있었다. 반면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을 한 아이도 있었다.
‘쉽게 번 돈, 쉽게 나간다’라는 말처럼 아이들은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받은 세뱃돈을 자신이 평소 사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지출한 것 같았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부모가 간섭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돈으로 하고 싶은 일을 했는데 웬 참견을 하느냐의 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요즘처럼 어려운 경기 불황에도 아이들의 돈 씀씀이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아이들에게 절제하는 능력과 돈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세뱃돈은 설날이면 세배를 받은 사람이 세배를 한 사람에게 주는 돈이 아니라 사랑과 정성이 담긴 선물이라 생각하고 아이들이 소중하게 여기고 아낄 줄 아는 마음 자세를 갖게 해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