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양배추, 교사와 연필

2010.10.07 16:22:00

얼마 전에 대통령이 배추값이 비싸다고 당신의 식탁엔 ‘양배추 김치를 올리라고 했다’하여 물정모르는 대통령이라고 빈축을 샀다. 그러나 필자는 나라의 큰일을 맡아 하는 대통령이 양배추값이나 시장의 콩나물값을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서민 물가를 걱정하는 의미에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있었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대통령께서 그런 말을 하고 계실 때 만천하에 대고 방송으로 말하지는 않았을테니 측근들은 그런 상황에 대해서 얼른 현재 시장상황을 말씀드리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게 좋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대통령의 그런 상황을 덮어주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신임을 받거나 사랑받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일 듯 하다. 참 당신도 참 고단한 직업을 갖고 계신분이라는 생각이다.

교사들도 그렇다. 학부모와 학생은 물론이고 사회에서 그다지 신임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집단이 되어 버렸다. 가르치려고 학교에 근무하는 게 아니라 학생 체벌이나 하려고 학교에 근무하며 기회 있을 때마다 촌지나 받으며 학교 운영비나 횡령하는 못된 집단처럼 비춰지고 있다. 그리하여 학교 예산을 투명하게 써야 한다는 명분하에 에듀파인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전 교사를 ‘행정실 직원화’하고 있는 것이다. 에듀파인으로 품의를 할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내가 학교에 아이들을 가르치러 온다기 보다 잡무를 처리하러 학교 온다는 느낌이 든다.
 
학교는 학생지도에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교사가 해야 하는 일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일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예를 들면 품의를 할때 대통령의 양배추값 못지 않게 교사가 학생의 공책값, 도화지값, 연필값, 지우개값, 온갖 청소용구값, 학생용책값을 알아야한다. 또, 체험학습 장소의 시설이용료, 관람료, 관광버스 대절료, 등등 심지어 학교 거래 업체의 사업자 등록번호나 통장번호, 주민번호까지 알아야 할 때가 있다. 항, 목 설정이 잘못 됐다고 행정실장으로부터 반려되는 품의서를 받을 때는 ‘내가 행정실 직원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좀 더 자세히 말해서 교사가 현장 체험학습이 필요해서 기획하여 운영한다고 하자. 우선 체험장소의 이용료와 체험학습 날짜를 업체와 논의해 봐야 한다. 이때 교사는 기초생활 수급자에 대한 업체의 배려를 요구하기도 한다. 장소가 선정되면 버스 대절료를 버스업체나 행정실을 통해 알아봐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내부 기안을 하고 학부모 안내장을 만들어서 안내하고 스쿨뱅킹 명단을 작성해서 행정실에 넘겨야한다. 그러면 드디어 행정실에서 움직여 스쿨 뱅킹을 돌리게 된다. 교사는 다시 에듀파인으로 품의서를 작성하여 결재 받은 후 실시 체험학습을 실시 할 수 있게 된다.

이때 행정실에서 하는 일은 버스계약을 해 주고 돈을 지불해 주는 일밖에 없다. 실시 후 체험학습 보고서를 작성해서 우수한 학생에게 시상을 할 경우 전시회를 갖고 우수자를 선정하고 시상품에 대한 품의를 해야 하고 이 때 상품에 대한 가격 등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 가게마다 물건의 가격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학교의 주거래 도매점을 이용해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품의를 한다. 위에 말한 것은 가장 간단한 업무에 해당된다. 운동회를 기획하거나 학예회, 수학여행 등을 기획 할 때의 업무는 정말 말할 수 없이 복잡하고 어렵다.

교사들은 정말 연필 한자루값까지 알고 싶지는 않다. 그것 말고도 학교에서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학생 하나하나의 신상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생활지도를 하고 싶고 교육과정에 대해서 더 많은 시간 연구를 하여 질 높은 학습지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용숙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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