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를 보며 따뜻한 소통을 생각한다

2012.12.17 00:21:00

출근길이었다. 산업도로이기 때문에 제법 속도를 내고 있었다. 아침에 욕실에서 꾸물거린 탓에 시간을 조금 줄여보겠다고 1차로를 질주했다. 한참 가는데 저만치 앞쪽에서 2차로를 주행하던 트럭이 흔들리는 듯하더니 내가 진행하는 쪽으로 쏠린다. 순간 놀라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행히 그 트럭은 차로를 변경하지 않았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똑같이 흔들린다. 앞서도 놀랐지만, 이번에는 차가 거의 내 쪽으로 기울어서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뒤에 따라오던 차가 상향등을 켜고 경적을 울린다. 그 차는 급기야 2차로로 와서 내 옆에서 같이 진행한다. 그리고 내 앞으로 아주 위험하게 들어섰다. 내가 조금만 빠르게 갔어도 큰 사고가 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는 앞에서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고 서행을 한다. 놀라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전방에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생각하고 뒤따랐다. 그러다가 다시 속력을 내더니 이번에는 아예 도로에 서버렸다. 순간 놀라서 비상등을 켜고 뒤차에 경고를 하며 아슬아슬하게 섰다. 앞 차는 이 짓을 한 번 더하더니 쏜살같이 가버린다.

아침 출근길에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이었다. 고속도로나 다름없는 산업도로에서는 한 순간의 실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나 하나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생각해 보니 이런 상황이 발생한데는 뜻하지 않은 오해가 발단이 되었다. 내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 바짝 따라오던 것에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바짝 따라가면 앞차가 이렇게 경고 및 보복을 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런 뜻이 없었다.

운전만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 때도 이렇게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학기에도 수업 중에 불편한 학생이 있었다. 수업 중에 집중을 하지 않았다. 몇 번 참았다가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자기를 미워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한다. 참 어이가 없다. 오래 전에 수업 시간에 남들에게는 따뜻하게 말했는데, 자기에게는 인상을 쓰며 혼을 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운전 중에 나에게 위협을 가한 사람이나, 그 여학생은 공통점이 있다. 특정한 상황에 오해를 하고, 불편한 감정을 표출했다. 사실 남으로부터 불신을 받을 때 그 억울함 끝에는 나 자신의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상황도 그와 다를 것이 없어서 그럭저럭 참았다.

그러나 소위 오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누구에게나 합리화되지는 않는다. 오해는 개인의 내면에 호소하는 감정으로 자기 위주 편향적 판단이다. 자신의 감정과 판단은 편견 혹은 선입관이다. 자신의 섣부른 판단이나 감정으로 타인을 보는 것은 위험하다. 이는 자신이 느낀 외계의 자극을 잘못 해석하는 착각이다. 오해와 착각은 일방 통행식 사고다. 일방 통행식 사고는 미움, 불신, 불통을 낳는다.

최근 사회 이슈는 소통이다. 소통을 통해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이름 없는 학자들도 소통을 주제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이와 관련된 서적도 많다. 소통을 위해 대화를 권하고, 마음을 열기를 강조한다.

우리도 소통을 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소통 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가족 간의 소통, 세대 간의 소통, 지역 간의 소통, 계급간의 소통, 이념간의 소통을 이야기 하지만, 소통이 되지 않고 갈등의 골만 깊어 가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소통이라는 목적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소통을 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소통하기로 모였으니 마음을 열라고 하면 그것이 소통인가. 소통은 상대방과 하는 것이다. 소통을 한다고 마음을 열라고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다.

올해는 겨울이 유독 춥다. 겨울 추위에 맨몸으로 서 있는 나무들을 본다. 우리도 나무처럼 숲을 이루고 산다. 숲은 배려의 세상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하늘로 키를 키운다. 절대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저마다 자라서 숲을 이루고 아름다움을 뽐낸다.

나무의 생태를 보며, 소통을 생각한다. 소통은 배려다. 배려하는 마음,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소통의 시작이다. 한해를 정리하느냐 여기저기서 모임을 계획한다. 모임도 결국은 소통을 위한 자리다. 모임에 가면서 차가운 바람에 몸을 의연하게 서 있는 나무를 보라. 추운 겨울에도 고즈넉하게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따뜻한 소통을 생각하라.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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