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으로 사는 내가 좋다

2013.01.07 13:35:00

나는 내가 좋다. 실없는 소리 같지만, 나의 모든 것이 좋다. 이름부터 ‘재열’은 부르기 쉽다. 받침이 앞 음절에는 없고, 뒤 음절에만 있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공평하고, 깔끔하다. 이런 구조의 단어는 ‘희망, 사랑, 하늘, 구름, 가을, 바람, 자연’처럼 의미도 좋은 것만 있다. 흔한 이름 같지만 막상 만나기 어렵다. 어릴 때는 아명으로 좋았는데, 지금은 중년에도 딱 맞는 이름이다.

생일도 자랑하고 싶다. 내 생일은 5월 15일이다. 이 날은 세종대왕 탄신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날을 스승의 날로 기억한다. 이날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은 세종대왕 이야말로 겨레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감히 비교하기 부끄럽지만 겨레의 스승인 세종대왕과 생일이 같다는 것이 한없이 자랑스럽다. 나는 국어 선생으로 우리말 바로 쓰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이 모두 운명 같은 기분이다.

숫자에 관련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전화번호다. 집은 1316이다. 이 번호와 관련하여 휴대전화를 만들 때 1319를 받았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이 번호에는 청소년의 나이가 연상된다. 내가 고등학교에 줄곧 근무했기 때문에 묘한 의미가 있다.

직업이 선생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세상에 직업이 없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속에 스승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오랫동안 교직 생활을 했으니 내 실수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이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큰 과오 없이 교단에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제법 많은 제자들의 스승으로 살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가르치는 과목이 국어인 것도 천만 다행이다. 영어, 수학, 체육, 음악 등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르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학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공부도 많이 했다. 문학은 가르치는데 자신이 있다. 문학을 통해 삶의 모습을 안내하는 것도 즐겁다. 고답적이고, 관념적인 학문보다는 삶의 진정성이 담긴 문학을 강의하는 것이 행복하다.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하니 이것도 복이다.



등산을 좋아하지만, 푹 빠지지 않는 것이 좋다. 산에 건강을 챙기러 가기도 하지만, 명상을 즐기는 취미가 좋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다가 힘에 부치면 무리를 하지 않고 내려온다. 등산을 적당히 하는 것처럼 나는 한 가지 일에 푹 빠지지 않는다. 적당히 힘에 부치면 물러난다. 이를 두고 내 성격이 끈기가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사실 끈기라는 것이 좋은 것으로 발전할 때도 있는데 쓸데없는 고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도 보면 끈기와 성실을 혼동하고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타인과 공감하기 어렵고 객관성이 떨어지는 흠이 있다. 적당히 물러나는 것은 내가 어느 한쪽에 고정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단호한 철학이 없거나 자신이 없을 때 자존심을 접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한다.

나도 한때는 자존심을 소중히 했다. 그 자존심은 불의에 대항하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존심은 궁벽한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간혹 타인을 이해하는 걸림돌이었다. 자존심을 감추는 것이 힘들었지만, 사람들과의 더 큰 관계를 위해 과감히 휴지처럼 구겨버렸다.

자존심을 버리고나니 남들이 물러 터졌다고 하는데, 오히려 적당히 져 주는 생각도 배웠다. 져 주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배려가 된다. 이 세상은 많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배려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려는 삶의 중요한 가치이다. 져 주면 건강한 생각으로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수필을 쓰고 있는 내 모습도 매력적이다. 수필을 쓰면서 사물을 따뜻하게 보고, 세상을 풍요롭게 보는 모습이 좋다. 살다보면 뜻하지 않은 고난과 슬픔을 만난다. 그때는 나를 어둡고 쓸쓸하게 만들었던 상심에 대한 기억을 언어로 표현하면서 삶의 뒤안길로 흘려보낸다. 주름진 생활과 아픔도 이른 봄 향기 같은 언어로 엮다보면 평온이 찾아온다.

나는 요행을 바라지 않고 묵묵히 산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부족한 것에 눈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채우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쉽게 정을 준다. 나는 돈도 없고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한없이 평범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더욱 좋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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