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글쓰기 교육을 하는가

2013.06.10 14:10:00

국어 교사로 글쓰기 교육에 관심이 많다. 글쓰기는 국어교육의 한 부분이 아니라 마지막 단계라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국어교육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 교육을 간혹 글짓기라고 하기도 하고, 창작과의 차이점을 궁금해 한다. 실제로 과거에 많이 쓰던 표현은 글짓기였다. 특히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한 교육에서는 여전히 글짓기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글짓기는 그 이름에 행위가 명시되어 있다. 즉 글을 짓는 것이다. 집을 짓고, 옷을 짓 듯이 필요한 대상을 새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시, 소설, 노래 가사를 만들어낼 때도 짓는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널리 쓰던 표현이다. 그런데 짓는다는 말에 억지로 하는 느낌이 있다는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글은 새로 만들어내는 것인데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온 대안이 글쓰기다. 이 표현은 글짓기가 억지로 한다는 것에 저항감을 느끼고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글쓰기는 창의적인 행위라는 인식이 심어져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허점이 있다. 우선 글짓기는 한자어로 작문이라고 한다. 이 작문은 여전히 쓰고 있는 표현이다. 교육과정의 편제에도 빠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글짓기라는 표현이 억지로 지어 내는 것이라 거부감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억지로 한다고 글이 써지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을 다듬고, 다시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고통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글쓰기가 통용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글쓰기는 글읽기와 대응한다. 글에 대한 논의는 글읽기와 글쓰기가 자연스럽다. 글읽기를 해야 글쓰기로 갈 수 있다.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글읽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글쓰기는 창작이라는 개념도 안고 갈 수 있다. 흔히 창작이라면 문학적 글을 생산하는 것으로 인식하는데, 글쓰기는 문학 창작보다 그 뜻이 넓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글짓기보다 글쓰기가 더 적절하다. 그래서 글쓰기를 학술 용어로 쓰고 있다.

나는 국어교사로 내 수업의 정체성을 언어를 통한 만남과 성찰에 두고 있다. 언어의 끌림을 통해서 학생들이 만나고 언어를 통해 내면과 대화하면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수업 중에 언어적 경험을 통해 도약과 성장을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그러다보니 글읽기와 글쓰기는 중요한 실천 과제이다.

사토마나부 교수가 좋은 수업의 기준점을 도약(jump)라고 말한다. 배움이란 대상 세계인 사물과 나누는 대화(세계 만들기), 다른 사람과 나누는 대화(동료 만들기), 자기와 나누는 대화(자신 만들기), 이 세 가지 대화적 실천에 의해 이미 알고 있는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가는 여행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배움이란 교사, 동료와 대화를 하고 기타 도구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지고, 급기야 그것이 개인의 경험과 능력의 틀을 넘어서는 발달과 도약의 과정으로 생산된다. 그런데 이 과정이 글쓰기와 묘하게 연결된다. 글쓰기라는 것도 대상과의 만남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 사건,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에도 관심을 갖는다.

학자들이 교육에 대해 여러 가지 정의를 내리고 방법론을 말하지만, 교육의 영원한 소재와 목표는 ‘나’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즉 교육이란 우리 자신의 삶을 응시하는 것이다. 글쓰기도 그렇다. 그것이 독자에게 가기도 하지만 첫 출발은 자아와 대상과의 만남이다. 자아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유 활동이다. 글쓰기는 세상을 이해하는 첫 걸음이며 나를 확인하는 성장의 매개체이다.

그런데 막상 글쓰기를 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아무리 편하게 써도 적지 않은 노력이 든다. 전문가도 글 쓰는 것이 쉽지 않다. 더욱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글을 쓰라고 하는 것은 고문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글을 써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시험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전문 작가의 글을 읽지 않는 세상의 비정한 세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하물며 내 글을 읽어 줄 독자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할까. 글을 쓰는 이유는 생각의 첫 출발이다. 글을 써야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세상과의 만남이 나를 성장하게 한다. 글쓰기는 글읽기와 대응된다고 한 것처럼, 글쓰기를 해야 책도 읽고 공부도 하게 된다. 그리고 글쓰기는 우리의 본능이다. 먹고 입고하는 것처럼, 글쓰기도 높은 단계의 본능에 속한다. 어린 아이도 제일 먼저 언어를 통해서 세상과 만난다. 언어로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세상에 적응해 간다. 언어를 통해 표현하면서 세상에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글을 통해서 내면의 것을 표출하지 못하면 정신적 고통에 갇히게 된다.

우리는 쾌락과 물질만으로 살지 않는다. 타인과 상호 교섭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우리의 삶과 경험의 의미를 언어로 표현하면서 인간다움을 발견하다. 현실적 불행도 짧은 글로 정화가 가능하다. 글쓰기는 삶을 품위 있게 진화하는 훌륭한 도구이다. 지금 삶이 거칠고 힘들어도 글쓰기를 통해서 미래 삶을 긴장시키고 창조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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