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초임지 대지초교의 추억

2013.12.30 14:05:00

흔히들 첫사랑은 못 잊는다고 한다. 교육자에게 있어서 첫 발령지는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중간에 거쳐간 학교의 추억은 희미해도 초임지 학교 모습, 학생들과의 생활, 교직원 모습, 학부모의 얼굴, 지역사회의 모습은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1977년 3월 대지초교가 첫부임지다. 그 당시 주소는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죽전리. 지금은 일대가 아파트 숲으로 덮였지만 그 때만 해도 농촌시골이었다. 학교앞까지 교통이 안 좋아 수원-광주 간 시외버스가 하루 4회 정도 운행하였다. 출퇴근은 풍덕천에서 하차, 약 2km의 비포장 도로를 도보로 걸었다. 차량 한 대만 지나가도 먼지가 온몸에 감쌌다.

학교규모는 6학급에 학생수는 250명 정도. 교감선생님도 담임을 맡았다. 교대 졸업 당시 400명 중 성적 순위가 두 자리여서 수원 발령을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기대에 어긋나 첫부임지 초기, 적응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데 도시 아이들 기준으로 대했던 것이다. 햇병아리 교사의 시행착오는 아이들의 순수함, 교직선배님들의 가르침, 학부모의 따뜻한 사랑으로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가장 괴로웠던 일은 숙직. 3일에 한 번씩 당직이 돌아오는데 식사 해결이 문제였다. 당일 저녁과 그 다음 날 아침과 점심 도시락이 해결이 안 되었다. 다행이 이런 어려운 사정을 아는 학부모님께서 가끔 도시락을 챙겨 주셨다. 담임이 가장 좋아하는 멸치 고추조림이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지금도 그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첫해 3학년 담임 시 반성할 점 하나. 어린이들을 농촌 수준으로 판단하고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데 일정 수준에 따라오지 못하면 체벌을 하였다. 말보다 체벌이 앞서는 것은 능력이 부족한 교사의 특성이다. 교장 선생님의 꾸지람을 듣고 점차 변하기는 했지만 어린이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것은 반성해야 한다.

4학년 담임 시절. 우리반이 용인군체육대회 개회식에 참석 입장상을 받았다. 방과후 운동장에서 행진을 3주 정도 연습했을 것이다. 행진곡 음악을 틀어 놓고 오와 열 맞추기, 사열대를 향하여 ‘우로 봐’ 연습을 했다. 시가행진 시 곳곳에 심사위원들이 있어 우리 반은 시종일관 긴장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시골 조그마한 학교에서 영광의 교육장상을 수상한 것이다.




여자 배구부를 창단하여 배구지도도 했다. 우리반 여학생들이 선수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이다. 지도함에 있어 대지초교 졸업생 선배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실력을 쌓으려고 신갈초교에 가서 연습게임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창단 1년이라 대회 출전에서 좋은 결과를 미처 보지 못하고 수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어린이들과 한마음이 되어 토요일 오후 시냇물에서 물고기를 잡아 천렵을 끓여 먹던 추억이 새롭다. 조를 구성해 취사도구와 천렵 재료를 준비하였다. 그 당시 만해도 하천이 오염이 안 되어 잡은 물고기를 끓여 먹었다. 연료는 마른 나뭇가지다. 벌거숭이에 그물로 물고기를 잡아 솥에 고추장과 야채 등 재료를 넣고 연기를 마시며 국 끓이는 장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잊혀지지 않는 학부모 두 분. 손주를 키운 전일이 할머니다. 찐고구마와 감자, 김이 무럭무럭나는 옥수수를 가져와 교직원의 입을 즐겁게 해 주셨다. 손주에 대한 사랑과 시골 인심을 맛 본 것이다. 그리고 윤례 어머님. 가정방문을 갔는데 선생님 드릴 것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고 마당에 노니는 닭 한마리를 움켜 잡는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다.

잊을 수 없는 가을운동회. 청백대항이 아니라 마을대항이다. 이러다 보니 마을 주민들이 총 출동이다. 먹을 것을 경운기와 리어카로 실어 나른다. 경기에 참가하는 어린이들도 모두 마을 대표다. 응원도 불이 붙는다. 운동회가 아니라 온동네 마을 축제다. 대지초교의 한마음 잔치가 되었다. 멋진 아이디어를 내 주신 당시 교장선생님이 고맙다.

초임지에서 3, 4, 5학년 담임을 하였다. 같은 어린이들을 3년 동안 가르친 것이다.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집이 있는 수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지금도 그들과 연락을 주고 받는데 2011년 스승의 날에는 제자들과 함께 EBS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대지초교 제자들, 지금 40대 후반이 되었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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