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힐링이 필요해

2014.03.24 17:15:00

업무 때문에 깊은 산속에서 며칠 있었다. 휴대 전화까지 빼앗기고 있었다. 그런데 입소한 다음날 면도를 하다가 벴다. 턱 선을 따라 피가 날 정도였다. 짐이 부담이 되어 전기면도기를 가지고 오지 않고 투박한 일회용 칼날면도기를 사용한 탓이다. 업무 보안 때문에 약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지혈을 하고 버텼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니 상처 부위가 가려워지더니 어느새 나았다. 이번만이 아니다. 어릴 때 큰 상처가 아니면 아예 무시했다. 그러다보면 낫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얇은 종이에 베도 연고를 바르고 밴드로 보호를 한다. 어떨 때는 지나치다싶은데 당사자는 아프다고 호소한다. 물리적 상처만이 아니다. 마음의 상처도 빨리 치유하겠다고 호들갑을 떤다. 이름 하여 힐링(healing)이라고 한다. 너도 나도 힘들다고 힐링에 마음을 기댄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일반인부터 선생님들까지 힐링 캠프에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림그리기, 글쓰기, 명상 등을 통해서 마음을 달래고, 운동, 산책, 등산을 하면서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힐링 관련 기업 마케팅도 활발하다. 힐링 강연으로 인기를 끄는 강사들이 등장했고, 서점에도 힐링 관련 책이 많이 나왔다.

힐링이 인기를 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일까. 힐링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과도하게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행복한 학교생활을 꿈꾸지만, 폭력과 왕따의 덫이 곳곳에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할 수 없고, 설사 취업을 해도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불안하다. 수명 증가로 고령화 사회가 진전되고 있는데, 노후 준비는 미흡하다. 어디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물질은 풍요롭지만, 풍요 속에 삶은 지쳐간다. 정치도, 경제도, 심지어 문화도 우리를 갑갑하게만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하니, 이런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물리적 상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날카로움에 베어 만들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마음의 상처란 우리 스스로 삶에서 필연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의 문제다. 고립의 굴로 들어가지 않고 더불어 산다면 상처는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상처도 물리적 상처처럼 그대로 놓아두면 아무는 속성이 있다. 힐링에 의지하려는 것은 상처를 빨리 극복해야하는 조급함이 있는 느낌이다.

한편으로 우리가 갈등이 많고, 마음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삶에 충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잘하기 위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노력하다보니 힘든 것이다. 배가 항구에 정착해 있다면, 그것은 배로서 어떠한 역할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배는 바다에서 거친 파도를 이겨내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힘들다는 이유로 아무 노력도 안하고 편안한 날을 보낼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삶에는 고통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흔히 고해(苦海)라고 하지 않나.

문제는 그 고해의 성격이다. 남과 비교하여 받는 스트레스는 고해가 아니다. 95점을 받고도 100점을 받은 아이와 비교한다면 백약을 써도 행복해질 수 없다. 좋은 대학, 해외 연수, 대기업 취직의 잣대를 버리지 못하면 아픔은 계속된다. 이는 모두가 많이 얻으려는 욕심이고, 이로 인한 아픔은 치유가 불가능하다.

고해는 아픔이 아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얻는 갈등이다. 그것은 삶의 동력이다. 우리 삶에서 만나는 어려움은 성공의 필수 조건이 된다.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극복 의지가 생기고, 그 과정에 능력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 낸다.

누구나 아플 수가 있다. 그때마다 힐링의 그늘 아래서 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를 엄습하는 아픔은 계속 된다. 이때마다 힐링 캠프에 들어갈 수도 없다. 흔히 말하는 마음의 병은 모두 자신이 만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가 하면, 곧 툴툴 털고 일어서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는 생각이다. 이것이 긍정의 약이다.

살다보면 좀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는 그냥 쉬면 어떨까. 몸도 마음도 놓고, 마음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이만큼 열심히 왔다면, 이제 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다. 잠시 마음을 놓고, 조급한 마음을 버리자. 그리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도 내려놓자. 인정받지 못해 마음이 울적해지면 어린 아이와 다를 바가 없다. 타인에게 인정받기보다 차라리 삶의 주인공인 나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참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사랑하고 격려할 줄 아는 삶이 곧 힐링이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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