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처 유청산'이라는데

2014.03.27 18:17:00

50대 후반 교직자의 자취생활 소회

고향인 수원과 수원 인근에서만 근무하다가 먼 곳에 발령을 받았다. 먼 곳이라야 의정부다. 그런데 한수이북이라는 어감상 그렇게 멀게 느껴진다. 자가용으로는 70분 정도 걸리지만 대중교통으로는 2시간 잡아야 한다. 억지 통근도 가능하겠지만 교육청 관사에 입주하였다.

원거리 통근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감안한 것이다. 교툥비도 그렇지만 출퇴근 거리가 멀면 출근해서는 퇴근 걱정, 퇴근해서는 그 다음 날 출근 걱정이다. 새벽밥을 먹어야 하니 아내가 불편하다. 저녁식사 시간이 늦어 금방 취침에 들어가야 한다.

오늘 아침 식사. 반찬가짓수를 세어보니 다섯가지다. 김치, 계란 후라이, 튀각, 멸치고추졸임, 김 등. 아내가 챙겨준 것이다. 자취하면서 점심은 지정된 식당에서 가정식 백반을 먹고 아침과 저녁은 관사에서 혼자 먹는다. 자취를 하니 좋은 점도 있고 불편한 점도 있다.


좋은 점은 충분한 수면시간 확보. 보통 밤 10시에 취침하여 6시에 기상하니 8시간이 확보된다. 처음엔 저녁식사 후 할 일을 못 찾아 무료하게 있었으나 적응하기로 맘을 먹었다. 중고 TV를 구입하여 시청하니 시간이 잘 간다. 때론 신문을 샅샅이 훑기도 한다.

리포터로서 글을 써야 하는데 그 작업을 할 수 없다. 필자의 경우, 글을 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인격완성의 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리포터 활동을 10여년 하다보니 글을 쓰면 마음이 편해진다. 누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하였는데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린다.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자아를 스스로 돌아 볼 수 있다는 것. 퇴근 후 대화 상대가 없으니 묵상의 시간을 갖게 된다. 현재의 내가 누구이고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으며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교단에 있을 때 국어교사라 말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어느 요일을 묵언의 날로 정해 실천한 것이 떠오른다.

가장 불편한 점은 설거지다. 밥은 전기압력 밥솥이 해 주는데 뒷정리가 귀찮다. 찬물에 묻혀가며 밥그릇을 씻어야 하는 것이다. 주부들은 이것을 날마다 하니 그들의 수고를 인정하게 된다. 또 한가지는 아침 저녁 반찬이 똑 같은 것. 반찬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데 능력 부족이다.

필자를 아는 사람들은 보이스카우트 생활을 하여서 취사가 익숙한 줄 알지만 그게 아니다. 아내가 차려 준 상만 받다보니 음식 조리가 어설픈 것이다. 이 생활에 적응하려면 요리 몇 가지는 능숙하게 할 줄 알아야겠다. 자취하는 남성들이 건강을 지키려면 요리학원 수강은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와 안부 전화를 나누긴 하지만 대화 상대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 부부가 소소한 일상사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가사일을 의논하여 결정해야 하는데 주말부부는 그게 어렵다. 대학 다니는 자식들도 뿔쁠이 헤어져 자취생활을 하니 이게 신세대 가족 풍속도인가?

누구는 농담으로  말한다. 나이 들어서 주말부부가 되려면 평소 덕을 쌓았어야 되는 거라고 위로한다. 부부 권태기라는 말이 있지만 맞벌이는 권태기를 맞이할 겨를이 없다. 서로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겨우 한다는 것이 방학 때 떠나는 1박2일 여행 정도다.

자취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은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는 것이다. 이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제 중고 컴퓨터를 구입하고자 한다. TV에서는 뉴스 정도만 듣고 인터넷을 통해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 한다. 근무시간에 쓰지 못한 글은 퇴근 후 쓰려 한다. 얼마 전 글쓰기 특강에서 말한 것처럼 기사를 쓰면서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고 인생을 배우려 한다.

50대 후반에 자취생활이라고 불평만 해서는 안 된다. 교장에서의 전직 내가 희망한 것이다. 인생도처 유청산(人生到處  有靑山)이라는 말이 있다. 어느 곳에 가나 청산이 있고 그 청산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 행복 누가 그냥 가져다 주지 않는다. 내가 만들어 누려야 한다. 행복을 주위에 전파까지 하면 더욱 좋고.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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