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를 보듬는 마음이 아름답다

2014.08.21 19:36:00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대수가 2천만대를 넘을 것이라는 보도다. 인구 5천만의 국가에서 2천만대면 꽤 많다는 의미다. 안전행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 차량 당 인구수는 2.59 명이라고 한다. 바꿔서 말하면 2.59명당 차가 1대씩 있다는 것이다. 2014년도 상반기에만도 84만대정도가 등록을 했다. 그러니까 한해에 150만대정도 팔린다는 얘기다. 이 통계도 결국은 인구 비례해 꽤 많이 팔리는 의미다.

이렇게 자동차가 많다보니 차량 관련 문화도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초보운전 스티커가 그렇다. 과거에는 이 문구가 얌전했다. 간단하게 초보운전이라고 붙이고 다녔다. 그런데 요즘 여러 유형이 보인다. 이 중에 ‘저도 제가 무서워요’라고 애원하는 어투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무섭다’는 표현은 운전이 서툴다는 뜻이다. 이러한 고백은 차량이 홍수를 이루는 길 위에서 자신이 보호받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즉 자신이 운전이 서투니 조심해서 가라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얌전하게 보호하지 못한다. 일부 사람들은 초보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힘들어 할 때 욕설을 섞어가며 멸시한다. 일부 차는 가까이 가서 안전을 위협을 하고, 경고음을 크게 울려서 겁을 주기도 한다. 운전하는 사람이 여자일 때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진다. 위기에 처한 초본운전자들은 급기야 ‘거침없이 직진 중’, 혹은 ‘배 째라’, ‘대책 없음’ 등 강한 저항감의 표현을 한다. 초보 운전자들이 보호를 받기를 원했지만, 위협을 받는 상황이 만들어지자 거칠어진 것이다. 보호 받지 못할 바엔 차라리 ‘그래 초보다’라고 당당히 외치며 대응하겠다는 정서다.

차 뒤 유리창에 붙이는 스티커 알림문이 다양해진 것도 달라진 현상이다. 가장 많은 것이 ‘아이가 타고 있어요’이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쌍둥이가 타고 있어요’,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 ‘공주님이 타고 있어요’라는 애교 섞인 문구까지 있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는 무슨 뜻일까. 아이가 타고 있으니, 상대 운전자들이 조심스럽게 가라는 뜻일까. 빵빵거리지 말고 피해가라는 뜻일까. 이 스티커에는 이런 의도와 다른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바로 교통사고 났을 때 차 안에 아이들이 있으니 꼭 구해달라는 메시지다.

이 문화의 뿌리는 미국이다. 1980년대 북미 지역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다. 부부가 심한 사망하는 사고였다. 그런데 이 차에는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 당시 사고가 크게 나 차 안에 있던 아이는 구조요원에게 발견되지 못했다. 이후 찌그러진 차량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좌석 아래에 비참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이 일이 있고 아이를 태운 차량은 ‘Baby on board’라는 노란색 스티커를 부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체구가 작다. 교통사고 발생했을 때 찌그러진 차에 가려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이 스티커로 아이가 차량에 있다는 것을 구조 요원에게 알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이가 타고 있어요’뿐만 아니라, ‘Baby on board’, ‘Baby in car’ 등의 스티커를 사용하고 있다. 어법으로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가 타고 있다는 의미를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이 스티커를 모두 유리창에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고가 나면 유리창은 산산조각이 나 스티커를 알아볼 수 없다. 아이가 타고 있는 의도를 분명히 알리려면, 유리창이 아닌 차량 본체에 부착해야 한다.

‘임신부가 타고 있어요’라는 스티커도 많이 본다. 임신부이기 때문에 운전하기 불편하다는 의미이다. 당연히 배려를 부탁하는 의미다.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인 차에 욕설을 하듯, 이런 차를 보면 더욱 못살고 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웃지 못 할 문구가 마구 나온다. ‘노총각이 타고 있어요’부터 ‘무서운 형님들이 타고 있어요’ 등이 보인다.

‘초보운전’이나 ‘아이가 타고 있어요’ 등의 차량 스티커는 결국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오히려 무시하고 위협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에 와서 여러 말을 남겼는데, 그 중에 ‘도움을 간청하는 이 밀쳐내지 말라’는 말이 깊게 남아 있다. 약자를 무시하는 문화는 미개 문화이다. 인간관계에 사람을 대할 때 화초를 대하듯 하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화초보다 더 민감한 존재이다. 삶의 길목에서 약한 사람의 손만 잡아줘도 내 삶이 아름다워진다. 운전이 서툰 사람들에게 잔뜩 힘을 주고 내가 얻는 것은 품위 없는 삶뿐이다. 차량 2천만대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은 운전 솜씨가 아니다. 사람들끼리 오가면서 불편을 감수하는 마음,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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